전력

[보쿠아카] 나를 봐줘 아카아시

별골짜기 2016. 3. 18. 22:02

보쿠아카

나를 봐줘 아카아시

아카른 전력 60(주제:부상)

 

 

 

 

작전명. <나를 봐줘 아카아시>

 

코노하는 철없는 주장을 보았다. 보쿠토는 바닥에 주저앉아 팔짱을 끼고 있었다. 장난감 코너에서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사주지 않아 고집을 부리는 어린아이 같은 자세를 취한 그의 눈이 향한 곳은 1학년 후배의 훈련을 봐주고 있는 아카아시였다. 보쿠토와 같은 윙스파이커 포지션의 1학년 후배는 아카아시와 토스를 맞춰보고 있었다. 가볍게 뛰어오른 1학년 후배가 아카아시의 토스를 받아 있는 힘껏 공을 내리쳤다. ! 격한 소리를 내며 네트 너머에 박힌 공이 풀쩍 뛰어올라 튕겨나갔다.

 

파워가 너어어무 약하잖아. 자세도 어어엄청 어정쩡해. 보쿠토가 투덜거렸다. 두 사람의 타이밍이나 호흡이 제법 괜찮지만 보쿠토의 마음에 차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쪽이 1학년 후배인지, 아카아시인지, 둘 다인지 모를 심통이 난 얼굴로 보쿠토는 애꿎은 드링크를 쭉쭉 들이켰다. 크으. 곧 있으면 졸업을 하고 성인이 되기 때문인지 드링크를 마시는 폼에서 마치 성인의 음료를 마시는 듯한 묘한 관록이 묻어 나왔다. 그런 보쿠토를 보며 코노하는 키득 웃었다.

 

아카아시는 근래 들어 매우 바빴다. 보쿠토를 비롯한 3학년이 은퇴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 주장인 보쿠토가 할 일을 아카아시가 거의 떠맡다시피 분담하고 있어서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건 보쿠토의 희망사항에 가까운 믿음이었다. 아카아시는 당장 보쿠토를 비롯한 3학년이 은퇴한 후를 생각하고 있었다. 최소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던 스파이커가 사라진 후쿠로다니의 전력에 누수가 있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텐션이 높든 낮든, 보쿠토는 일단 후쿠로다니의 에이스였으니까.

 

그런데 저렇게까지 전심전력을 다해서 후배들을 지도해줄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보쿠토의 입이 점점 튀어나와 정말로 부리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걱정스러워지는 시점, 다시 한 번 아카아시와 발맞추던 1학년 후배는 착지 할 때 중심을 잃고 기우뚱하더니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아카아시가 1학년 후배를 큰 목소리로 부르고, 보쿠토도 흠칫 놀라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를 비롯해 주변에서 부원들이 몰려들었다. 성큼성큼 다가간 보쿠토는 1학년 후배의 발목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는 아카아시의 손을 보았다.

 

흐음. 보쿠토의 노란 눈이 빛났다.

 

 

 

 

작전1. 도와줄 아군을 만든다.

 

뭐야? 내가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도와야 하는데?”

쓸데없는 짓이라니!!”

 

코노하의 말에 보쿠토가 길길이 날뛰었다. 보쿠토의 열의에 가득 찬 눈을 마주한 코노하는 그가 진심이라는 것을 깨닫고 어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카아시가 보쿠토를 너무 오냐오냐 키웠다. 아카아시면 몰라도 그는 순순히 보쿠토의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코노하는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거절의 뜻을 팍팍 풍겼지만, 책상 위에 걸터앉은 보쿠토는 쉽사리 물러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우리 이제 곧 은퇴잖아. 부원들을 위한 추억 만들기 정도로 생각해도 된다고!!”

퍽이나 추억이다, 이게.”

아아아아 코노하! 나와 함께해줘!”

왜 나한테 그러냐!!! 다른 애들도 있잖아!!!”

코노하 네가 주도하면 다 따라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아무리 그래도 주장이자 에이스인 보쿠토만할까. 코노하는 미우나 고우나 3년 동안 같이 배구부를 한 친구로서, 그리고 성실하게 경기를 치러온 에이스에 대한 예우로서 결국 그에게 두손 두발 다 들고 말았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이는 눈을 가까이 들이대는 보쿠토를 가차 없이 밀어내며 그가 물었다.

 

그래서, 네가 생각하는 작전이 뭔데?”

 

보쿠토가 그제야 신나서 계획을 떠들기 시작했다. 이따가 수업 끝나고 체육관 가면 스파이크 연습 할 거잖아? 아카아시가 토스 올려주면 내가 공 치다가 손목 삐끗한 척 바닥을 구를 거라고. 그때 너와 나의 뛰어난 연기력이 필요해! 아카아시는 분명 나를 걱정하겠지만!! 아카아시는 나를 좋아하니까 바로 달려와서 걱정해줄 테지만!! 아카아시가 날 의심할 리는 없지만!! 아주아주 만약 혹시 그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코노하 네가 옆에서 많이 아파? 병원 가야 되는 거 아니야?’ 이렇게 한마디 하면, 아카아시는 분명 내가 걱정되어서 미치겠다는 얼굴로 보쿠토상 괜찮아요? 많이 아픕니까? 제가 호 해드릴까요?’ 하면서 내 손을 아주아주 소중하게 어루만져줄 거라고…….

 

코노하는 어이가 없었다. 그게 어딜 봐서 부원들을 위한 추억 만들기냐, 그냥 너와 아카아시를 위한 추억 만들기잖아…….

 

나름 깜짝 이벤트라고 어디서 주워들은 단어를 내밀었으면서, 보안이 생명인 말을 누가 들을지 생각지도 않고 큰 목소리로 열변을 토해내는 보쿠토를 보며 코노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작전2. 연기혼을 필사적으로 불사지른다.

 

보쿠토는 작전 실행을 목전에 두고 안절부절 못했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코노하의 눈에는 그게 너무 잘 보였다. 딱 봐도 나 지금 뭐 켕기는 거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보쿠토에 대해 훨씬 더 상세하게 알고 있는 아카아시가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코노하는 힐끗 아카아시를 쳐다보았다. 아카아시는 평소와 다름없이 진중하고 단정한 목소리로 훈련을 이끌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보쿠토가 할 일이었지만 평소보다도 더 컨디션이 들쑥날쑥해 보이는 보쿠토를 곧장 알아보고 힘뺄 것 없이 그냥 알아서 진행하는 듯했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코노하는 순간 흠칫했다. 보쿠토가 그에게 귓속말을 해왔기 때문이다. 코노하, 나 지금 너무 떨려. 왜 이렇게 긴장되지? 실수하면 어떡하지? 들키면 어떡하지? 코노하는 할 수만 있다면 보쿠토의 입이나 자신의 귀 둘 중 하나를 틀어막고 싶었다. 아니, 들키고 싶지 않으면 이렇게 바짝 붙어서 귓속말을 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냔 말이다. 적어도 복화술로 대화하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야? 꼭 그렇게 손으로 입을 가리고 귓속말을 해야 돼? 너랑 나 원래 이런 캐릭터 아니잖아!

 

코노하는 보쿠토에게 긴장이 옮기라도 한 것인지 힐끗 아카아시를 보았다. 다행히 아카아시는 이쪽에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뭘 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경지까지 이르렀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이는 한편 슬퍼졌다. 이게 다 보쿠토 때문이다. 코노하는 입매를 일그러트리며 조용히 하고 연기나 잘 하라는 말을 던졌다.

 

보쿠토는 쉬는 시간마다 코노하를 찾아와 연기 지도를 받았었다. 보쿠토의 연기는 해도 해도 지적이 넘쳤다. 설정상 네 손목은 부상당한 손목이잖아! 그렇게 너무 세게 잡지 마! 주먹에 힘 빼! 비명 그렇게 지르지 마, 티 나잖아! 바닥에 쓰러지는 건 좋은데 왜 부상당한 손목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나는 거야! 표정에 힘 풀어! 아카아시 잡아먹을 듯이 보지 마! 눈꼬리 내리고! 입꼬리 내리고! 웃지마아아!

 

[‘그렇지만 아카아시가 날 걱정해주는 생각을 하면 기뻐서 참을 수가 없는걸!’]

 

코노하는 그에게 이만한 열정이 있었는지 몰랐을 정도로 보쿠토를 혹독하게 지도했던 만큼 아카아시가 아무리 좋아도 좀 참기를 바랐다. 이 계획이 실패해버린다면 좀 많이 슬플 것 같았다. 뺏긴 쉬는 시간을 합치면 대체 얼마나 되는지. 지켜본 결과 보쿠토의 연기는 자신감에 비해 너무나도 초라한 수준이었지만, 실전에서는 뭘 해도 되는 놈이니 배구할 때처럼만 잘 하면 될 것이라 코노하는 믿어보았다.

 

어느덧 보쿠토의 차례가 다가와 있었다. 코노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일부러 아카아시쪽의 토스를 치려 대기하고 있던 보쿠토는 답지 않게 굳어 있었다. 평소처럼 가뿐히 달려가 엄청난 힘으로 꽂아 넣는 스파이크가 나올 수는 있을지 미지수였다. 첫 스타팅 멤버로 출전했을 때보다도 더 긴장되어 보이는 그의 진지한 얼굴을 보며 코노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성공해라, 성공!

 

어깨를 돌리고 손목을 푼 보쿠토가 가볍게 네트 쪽으로 달려갔다. 아카아시는 그런 보쿠토의 속도와 점프 타이밍에 맞춰 토스를 올렸다. 보쿠토의 손이 공을 네트 건너편에 내리꽂았다. 완벽한 스트레이트였다. 너무 깔끔하게 성공시켜 코노하는 하마터면 감탄할 뻔했다. , 미스를 내야지 저 바보가!!

 

으윽.”

 

보쿠토가 하나도 아프지 않은 얼굴로 냅다 바닥을 굴렀다. 잠시 체육관에 정적이 흘렀다. 코노하는 금방이라도 소리치고 싶었다.

 

스파이크 친 손은 오른손인데 왜 왼손을 부여잡고 있냐!!!

 

모든 부원들이 굳어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사이 코노하는 그가 나서야 할 타이밍임을 깨달았다. 그간 최소 1년간의 경험으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는 이 상황에서 나서기는 죽기보다 싫었지만 지금 나서지 않으면 나중에 더 고달파질 것 같았다. 코노하는 재빨리 보쿠토에게 달려가며 소리쳤다.

 

보쿠토!! 무슨 일이야 많이 아프냐!!!”

 

보쿠토에 비하면 그럴듯하고 훌륭한 연기였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기준에 한해서였다.

 

, 손목이!”

 

보쿠토가 굳은 얼굴로 아카아시를 돌아보았다. 너무 티 나게 보고 있잖아! 눈꼬리 내리랬지! 입가는 왜 그렇게 바들바들 떨려! 웃지 말라고!

 

저벅저벅. 삑삑. 그때 아카아시가 둘에게 다가왔다. 손에 들고 있던 공은 바닥에 내려놓은 지 오래였다. 아카아시의 까만 눈동자가 보쿠토의 왼쪽 손목에 닿았다. 보쿠토는 아직도 뭐가 잘못 됐는지 눈치 채지 못한 듯했다. 적어도 왼쪽 손목이 아니라 오른쪽 손목을 잡았어야지……! 쉬는 시간 동안의 열정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것을 직감하며 코노하가 후회할 때였다. 무조건 왼손으로 오른쪽 손목을 잡으라고 했어야 했는ㄷ……

 

많이 아프십니까?”

 

아카아시의 낮은 목소리에 코노하는 잠시 생각을 멈췄다. 보쿠토가 반박자 늦게 , , 어어!!” 라고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에 기쁨이 섞여 살짝 떨렸다는 것을 이 체육관 내의 모든 이들이 알 정도였지만, 아카아시는 선뜻 손을 내밀어 보쿠토의 왼쪽 손목을 잡아 어루만졌다.

 

다리는 괜찮죠?”

? ? !”

그럼 일어서세요.”

? 어어?”

파스 뿌려야죠. 부은 것 같지는 않지만 병원은 가봐야겠습니다. 이따 같이 가죠.”

? ! 그래!! !! 가자!”

 

보쿠토의 얼굴에 기쁨이 묻어나 있었다. 누가 봐도 아파 죽겠다는 것보다는 행복해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반면 코노하는 얼빠진 얼굴로 코트를 벗어나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았다. 코노하뿐만 아니라 다른 부원들도 당황한 얼굴이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아카아시는 몹시도 아무렇지 않아 오히려 위화감의 주체가 이쪽인 것처럼 느껴졌다. 코노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선 뒤 중얼거렸다.

 

연습 할까.”

, !!”

 

그들 모두는 필사적으로 저쪽을 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평소보다 더욱 열심히 훈련에 임했다.

 

 

 

 

작전 완료. 모든 것은 계획대로……?

 

아카아시. 진짜 병원 가려고?”

 

체육관 정리를 하며 코노하가 물었다. 보쿠토는 아카아시가 같이 병원을 가준다는 사실 때문인지 신나서 체육관을 방방 뛰어다니고 있었다. 일지를 쓰고 있던 아카아시가 잠시 고개를 들어 코노하를 보았다. 잔잔히 물결이 이는 아카아시의 눈동자. 높낮이의 변화가 없는 목소리처럼 아카아시의 눈도 그랬다.

 

.”

보쿠토는……

압니다.”

 

아카아시가 보쿠토 쪽을 보았다. 네트를 치우는 후배들에게 실없는 잔소리를 늘어놓는 보쿠토의 왼쪽 손목에는 아카아시가 임시로 붙여준 첩부제 파스가 자리잡고 있었다. 혀를 차며 다시 고개를 돌리는 코노하의 귓가에 아카아시의 여상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지만,”

 

은퇴도 졸업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요.”

 

아카아시의 시선은 여전히 보쿠토를 향해 있었다. 보쿠토의 행동 하나하나가 담길 때마다 새롭게 일렁이는 아카아시의 눈동자가 보였다. 괜한 것을 물었다는 사실을, 코노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