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보쿠아카] 내일 날씨는 맑음

별골짜기 2016. 4. 17. 00:03

보쿠아카

내일 날씨는 맑음

보쿠아카 전력 60(주제:예언)

 

 

 

 

아카아시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체육관으로 향했다. 연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부터 왁자하게 체력을 소비하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의외로 체육관 근처는 조용했다. 늘 들리곤 했던 공 튀기는 소리와 신발이 마찰하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체육관 문이 열려있는데도 불구하고 두런두런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대화소리만 언뜻 흘러나왔다. 의아하게 생각하며 들어서는 아카아시의 눈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3학년들이 보였다.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었다.

 

옷을 갈아입기까지 했는데 뛰기는커녕 가만히 앉아 있다니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언뜻 회의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카아시는 혹시 심각한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닌가 싶어 그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이름, 생일, 어플, 짤막하게 들리는 단어들을 제외하고는 꽤 조용한 탓인지 아카아시의 인기척이 스스럼없이 체육관에 울려 퍼졌다. 둥글게 모여 앉아 있던 3학년들이 금방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보쿠토도 섞여 있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그의 맹금류 같은 노란 눈동자와 무심결에 마주친 아카아시는 더욱더 당혹스러워지는 기분이었다.

 

아카아시를 반갑게 맞이하며 3학년들이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그들을 살피며 다가가던 아카아시는 문득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들 손에 모두 스마트폰이 들려있다는 사실이었다. 연습 전에 스마트폰은 왜? 아카아시가 의문을 가지며 보쿠토 옆에 섰을 때, 보쿠토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눌러 앉혔다. 엉겁결에 풀썩 주저앉게 된 아카아시에게 보쿠토가 손을 내밀었다. 그 폼이 영락없이 강아지를 대하는 손짓이라 살짝 눈썹을 치켜 올릴 때, 보쿠토가 말했다.

 

아카아시, !”

뭡니까?”

 

아카아시는 3학년들이 스마트폰 화면을 집중하듯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을 샅샅이 살피며 보쿠토가 원하는대로 스마트폰을 건네주었다. 보쿠토는 익숙하게 아카아시의 스마트폰 화면을 밀어서 잠금 해제 한 뒤 무언가를 부산스럽게 하기 시작했다. 아카아시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기보다는 일단 하는 일에 신경을 쏟는 느낌이라, 대신 설명해줄 사람을 찾아 주변을 둘러보는데 코노하가 말했다.

 

요새 대유행인 예언 어플이다!”

예언어플이요?”

. 이름이랑 생년월일 입력하면 내일이 어떤 날이 될지 예언해주는 어플. 여자애들 사이에서 엄청 잘 맞는다고 난리 났어.”

그래서 선배님들이 깔아서 보고 있는 거고요.”

재미 삼아?”

 

! 코노하가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신음을 뱉었다. 아카아시는 코노하가 보고 있는 화면을 확인했다. 그가 말한 예언의 결과인지 칙칙한 회색 배경에 한껏 꼬부라진 글씨로 [무언가를 잊게 되는군요! 아무리 기억해내려 해도 그럴 수 없으니 중요한 일이 있다면 캔슬하세요!] 라고 적혀 있었다. 난 뭘 잊어버리게 되는 거지?! 코노하가 머리를 부여잡고 괴롭게 예측하고 있을 때, 아카아시는 물끄러미 그의 스마트폰 화면을 보다가 말했다.

 

코노하상. 오늘 수학과목 숙제 새로 받지 않았습니까?”

아앗! 맞다! 사물함에 교과서 두고 왔어!!”

어제는 제가 빌려드린 피자빵 값을 잊으셨죠.”

, 맞다

그제는 새로 빤 운동복 챙겨오는 거 잊으셨고요.”

그랬지?”

 

아카아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습니다. 최소 하루에 한 번 잊어버리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죠. 이 예언이 아니었더라도 분명 무언가 잊어버리는 일이 생겼을 겁니다. 정확히 무엇을 잊어버린다는 언급도 없이 불확실하고 모호하게 묘사된 표현은 누구라도 만들 수 있습니다.”

 

아카아시 냉정해……. 코노하가 입을 벌렸다. 그때 마침 보쿠토가 소리쳤다.

 

됐다!”

 

아카아시가 고개를 돌려 보쿠토를 보았다. 보쿠토는 신이 난 표정으로 아카아시의 손에 다시 스마트폰을 돌려주었다. 왜 가져갔나 했더니 그 예언 어플이라는 것을 다운받기 위해서인 모양이었다. 아카아시는 화면에 떠 있는 입력창을 보았다. 이름과 생년월일을 입력하는 칸이었다. 보쿠토가 어쩐지 기대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아카아시는 바로 어플을 종료했다.

 

에엑!! 아카아시, 왜 안 봐??”

별로 보고 싶은 생각 없습니다. 개인정보라도 수집당하면 어떡합니까?”

내가 물어낼게!! (“어떻게 물어내게?” 코노하가 비웃었다.) 으음으으, 아카아시! 잠깐만!”

 

아카아시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보쿠토의 손이 아카아시를 꽈악 붙들었다. 아카아시의 눈동자가 잠시 잡힌 팔목을 향했다가 보쿠토의 얼굴로 옮겨갔다.

 

진짜 안 해볼 거야? 다운까지 받았는데??”

.”

아카아시~!!!”

제 예언이 왜 궁금하십니까?”

나랑 비교해보려고!”

보쿠토상 예언은 뭔데요?”

!!!”

 

보쿠토가 아카아시의 팔을 놓았다.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모습이 보여 아카아시가 물었다.

 

비밀입니까?”

…… . 비밀이야.”

 

곤란한 기색을 내비추며 고개를 끄덕이는 보쿠토를 살핀 아카아시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저도 비밀입니다.”

! 아카아시!!”

옷 갈아입고 오겠습니다.”

 

아카아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번에는 보쿠토가 그를 잡지 않았다. 딱 한 번 힘 있게 붙잡혔을 뿐인데도 후끈거리는 자리가 낯설었다. 어차피 익숙해질 일도 없었다. 아카아시는 곧장 부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으려 했다. 가방에 스마트폰을 넣기 전 아카아시는 잠시 망설였다. 자리를 뜰 때 마지막으로 본 시무룩한 표정의 보쿠토가 눈에 밟혀서였다. 그냥 보여줄 걸 그랬나. 믿지도 않는 예언 보여주지 않을 이유도 없었지만 비밀이라는 보쿠토의 말이 그의 신경을 자극한 탓이 분명했다. 알려주건 알려주지 않건 당사자 마음인데 괜히 욕심을 냈다. 코트 위의 모든 모습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해서 코트 밖의 모습까지 알아야 한다는 법은 없는데…….

 

아카아시는 차가운 라커 문에 머리를 기댔다. 잡힌 건 팔인데 왜 얼굴에 열이 오르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는 스마트폰을 한참 쥐다가 잠금을 해제했다. 방금 보쿠토가 깔아놓은 어플이 보였다. 실행시키자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는 칸이 보였다. 아카아시는 조금 망설이다가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었다. 확인 버튼을 누르자 코노하가 보고 있던 화면과는 배경색부터 다른 화면이 펼쳐졌다. 화사한 봄꽃을 닮은 분홍색 배경에 반듯한 글씨로 적힌 것은,

 

[필사적으로 숨겨왔던 비밀이 알려지게 되는군요. 도망쳐도 소용없어요.]

 

?!”

 

아카아시는 못 볼 거라도 본 것처럼 황급히 어플을 종료했다. 심장이 중요한 경기를 막 끝낸 것처럼 마구잡이로 뛰었다. 숨겨왔던 비밀. 도망쳐도 소용없다. 단 두 문장이 시사하는 광경이 천천히 머릿속에 그려졌다. 원인이나 과정은 생략했다. 중요한 건 결과, 그러니까 숨겨왔던 비밀이 알려지는 상황이었다. 상상조차 한구석에 접어 숨겨놓았던 비밀이, .

 

아카아시는 재빨리 가방에 폰을 던져 넣고 가방문을 봉인하듯 잠가버렸지만 예언 어플이 남긴 문장이 계속해서 주위를 떠다녔다. 옷을 갈아입고 체육관으로 돌아오면서도 아카아시는 당황을 떨쳐내지 못했다.

 

필사적으로 숨겨왔던 비밀.

 

아카아시는 고개를 들어 공을 바닥에 한 번 튕긴 보쿠토를 보았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순간 해맑게 웃으며 토스를 올려달라고 외치는 목소리에는 그를 향한 숨길 수 없는 신뢰가 묻어나왔다.

 

만약. 만약 이 비밀을 들켜버린다면. 이 비밀이 알려지게 된다면.

달라질 표정과 달라질 목소리는. 변질되어 실리는 감정은.

 

아카아시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도망쳐도 소용없어요.

 

아카아시는 그 문장을 부정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심장이 진정되지 못했다. 지금껏 잘 해왔는데 그럴 리가 없어야 했다. 아카아시는 침착해지자고 스스로를 독려했다. 그저 모호한 문장으로 미래를 어림짐작하려드는 쓸데없는 어플이었다. 코노하에게 그가 단호하게 말했던 것처럼, 정확히 무슨 비밀이 들킨다는 건지 언급도 없이 불확실하게 묘사된 표현은 누구라도 만들 수 있었다. 누구든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을 나열해 특별한 것처럼 포장한 혈액형별 성격, 별자리별 성격과 같이 쓸데없고 무의미한 심심풀이용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아카아시는 다시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팔사적으로 숨겨왔던 비밀’. 그에게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다. 수많은 문장 중 우연히 걸려든 거다. 아카아시는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물러섰던 걸음을 다시 내디뎠다.

 

어차피 늘 감춰오던 비밀, 들킬 가능성은 없었다. 아카아시는 그렇게 확신했다.

 

 

 

 

보쿠토의 컨디션은 최고조에 이르러 있었다. 그의 기분 역시 좋은 걸로 따지면 하늘을 찔렀다. 지나치게 컨디션이 좋아 부작용을 걱정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전국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역량을 뽐내고 있었다. 언제 봐도 대단한 위력의 스파이크건만 오늘은 더했다. 아카아시가 예언을 보여주지 않아 연습 초반에는 조금 시무룩한 순간도 있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보쿠토의 텐션은 높은 수준이었다.

 

어이, 보쿠토. 아까부터 기분 좋아 보인다?”

 

연습 게임 중간 쉬는 시간에 코노하가 물었다. 후쿠로다니의 매니저들이 만들어놓은 드링크를 마시던 보쿠토가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오야? 그래 보여?”

엄청.”

 

보쿠토가 그 말에 부정은 하지 않은 채 양 주먹을 뻗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의 눈에 연습 게임 결과를 기록하는 아카아시의 모습이 들어왔다. 확실히 숨길 수 없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금방이라도 가까이 다가가 기록하는 모습을 자세히 뜯어보고 싶었다. 아카아시의 내리깐 눈매, 단정하게 다물린 입술, 살짝 숙여 드러난 목선, 가볍게 펜을 쥔 손가락, 성격을 닮아 차분한 글씨체까지.

 

하지만 당장 그러지 않는 이유는 참고 견디기 어려울 것 같아서였다. 지금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일단 견디고 봐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보쿠토는 손가락을 들어 계산했다. 지금이 6시니까, 딱 최소 6시간, 최대 12시간만 기다리면 됐다. 전화를 하거나, 등굣길에 기다리거나. 연습은 늘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질 만큼 좋았지만 오늘은 왠지 빨리 지나가길 빌게 되는 것 같았다.

 

코노하는 보쿠토가 기분 좋은 이유를 좀 더 캐내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그에게 신경을 쓸 여유는 아쉽게도 부족했다. 고삐가 풀리기 직전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보쿠토는 신나게 체육관 구석으로 향했다.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던 스마트폰이 보였다. 쭈그려 앉아 화면을 켜자 다운받은 예언 어플이 보였다. 어플을 실행시키자 이름과 생년월일을 입력하는 칸이 비어 있었다. ‘고민이라는 한자는 어떻게 쓰는지 몰라도 아카아시의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는 알고 있었다. 수학 공식 하나 끈질기게 외우기는 어려워도 아카아시의 생년월일은 외우고 있었다. 하지만,

 

네 대답이 뭐든 내 마음이 너무 넘쳐서 못 견디겠어.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이름과 생년월일 대신 자신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입력했다. 내일이 어떤 날이 될지를 알려주는 예언이 봄꽃을 닮은 분홍색 배경으로 펼쳐졌다.

 

[당신의 마음을 표현할 절호의 기회! 그동안 많이 참으셨죠?]

 

보쿠토상, 새 세트 시작합니다.”

? 기다려 아카아시!!”

 

목소리까지 좋아서 어떡하지. 보쿠토는 웃음이 넘실거리는 입꼬리를 참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다시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려놓았다.

 

[걱정 마세요. 내일 날씨는 맑음!]

 

6시간, 아니, 12시간만 기다려 아카아시!

내일을 기대하며 코트로 돌아가는 보쿠토의 발걸음이 유독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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