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쿠아카 당신을 맞춰 언젠가 完 사망소재 주의 아카아시는 급하게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가 쓰던 침대가 맞았다. 그가 시험기간마다 밤을 새워가며 공부했던 책상이 보였다. 책꽂이에 가득한 1학년 때의 교과서와 2학년 때의 교과서가 보였다. 방구석에 배구공이 수건과 함께 놓여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방과 너무나도 흡사한 광경이었다. 순간 혼란이 닥쳐와 아카아시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달력을 보았다. 침대가 놓인 벽쪽에 걸려 있는 벽걸이 달력. 날짜를 따로 표시해놓는 편이 아니라 날짜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년도가 보였다. 2012년. 그리고 펼쳐진 5월 달력. 정말 2012년, 그가 18세인 시기로 되돌아온 것이다. 아카아시의 심장이 쿵쾅쿵쾅거렸다.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몹시 어려웠지만 아카아시는 떨리..
보쿠아카 당신을 맞춰 언젠가 7 사망소재 주의 아카아시는 눈가가 축축한 것을 느꼈다. 눈을 뜨자 어른거리는 시야가 보였다. 다시 깨어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물기로 가득한 시야는 예상하지 못한 터라 아카아시는 당황했다. 자리에서 번쩍 몸을 일으키자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이 주륵 떨어졌다. 이불보 위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낯설어 아카아시는 쉴 새 없이 닦아내다가 그만 포기하고 눈만 깜빡거렸다. [‘나는 얼마나 더 너를 잃어야 하는 걸까…’] 보쿠토의 말이 떠올랐다. 아카아시를 포함해 그 누구에게도 답을 구하는 질문이 아니었다. 질문이 누군가를 향했다고 해도 아무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일 것이다. 지금은 일곱 번째 죽음, 여덟 번째 삶이었다. 그가 고양이처럼 아홉 번을 산다고 하면 이번을 포함해 한 ..
보쿠아카 당신을 맞춰 언젠가 6 사망소재 주의 아카아시가 손을 들었다. 덮은 눈가는 뜨끈뜨끈했다. 눈물이 새어나올 것 같아 그는 대신 길게 숨을 뱉어냈다. 또 한 번의 죽음이 찾아왔다. 보쿠토의 눈앞에서, 그를 대신해서. 그 얼마나 이기적인 행동인가. 간접적으로 품고 있는 마음을 고백한 상대에게 다시금 아물 수 없는 상처를 줘버렸다. 처음 난 상처 위로 덧그리고 또 덧그려진 상처는 나을 수 있는 방법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몇 번째인지 모를 사과를 했지만 그건 아마 상처 위에 소금을 뿌린 격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금방이라도 ‘하지 말라’고 뻐끔거릴 것 같았던 그의 마지막 입모양을 떠올리며 아카아시는 깊은 자책과 절망에 잠겼다. ‘아카아시.’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에게 이름이 불리는 순간순간이 좋았다. 하지..
보쿠아카 당신을 맞춰 언젠가 5 사망소재 주의 아카아시는 피곤하게 천장을 살폈다. 형광등이 보였다. 불이 켜져 있는 대신 햇빛이 들고 있었지만 한 순간 그 등이 환하게 밝혀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유성이 떨어지듯 시야 가득 환한 빛이 들어찼지만 그 이후에는 운석이 남긴 크레이터처럼 보쿠토에게는 다시 한 번 씻을 수 없는 상처로 움푹 패여 남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보쿠토를 직접 밀어버린 손이 신경 쓰여서, 솔직한 마음과 배반되는 말을 뱉어버린 게 미안해서, 아카아시는 눈을 감았다. 피로감이 한꺼번에 들이닥쳐 눈꺼풀이 무거웠다. 그냥 이대로 잠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여긴 아카아시의 집도 아니었고 이제야 여섯 번째일 뿐이었다. 다섯 번 죽고 깨어난 여섯 번째. 더욱이 다섯 번째는 ..
보쿠아카 당신을 맞춰 언젠가 4 사망소재 주의 정말 다시 깨어났다. 아카아시는 허탈하게 눈만 깜빡거렸다. 벌써 다섯 번째다. 여전히 의문은 풀리지 않고 쌓이기만 하고 있다. 다만 가정해볼 수 있을 뿐이다. 네 번 죽고 다섯 번째로 깨어났다. 첫 번째로 죽을 때 그는 고양이를 구하려던 보쿠토를 대신했다. 고양이가 그 후로 아카아시에게 친근감을 보이는 행동을 했고, 어느 할머니는 아카아시와 고양이를 맞바꾼 거라고 했다. 그리고… 고양이는 아홉 번 산다는 속설. 할머니의 말이 맞다면… 그 속설을 적용한다면… 아카아시는 아홉 번 살게 될 것이다. 그건 반대로 말하자면, 여덟 번 죽는다는 말과도 같았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아카아시는 어이가 없었다. 다시 곱씹어 봐도 여간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하..
보쿠아카 당신을 맞춰 언젠가 3 사망소재 주의 또다. 눈을 뜬 아카아시는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익숙한 방이었다. 그의 눈동자가 방 안을 훑었다. 그가 앉아있는 작은 침대, 하얀 벽지와 나무로 된 책상, 다소 낡은 듯한 창틀, 옷장과 전신 거울. 머리가 아파 아카아시는 이마를 짚었다. 침대에서 내려와 전신거울 앞에 섰다. 그는 교복을 입고 있었고 주머니에서는 원 상태의 액수로 돌아온 지갑이 나왔다. 그러니까… 2018년에서 눈을 떴던 그 때와 같은 광경이었다. 이건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이지? 답답했다. 목이 조이는 것 같아 메고 있던 넥타이를 풀어버렸다. 바닥에 떨어진 파란색 넥타이를 주울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는 전신거울을 붙잡았다. 어디도 다치지 않은 멀쩡한 얼굴이었다. 말도 안 된다. 벌써 세..
보쿠아카 당신을 맞춰 언젠가 2 사망소재 주의 아카아시는 눈을 떴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랬다. 처음 보는 낯선 천장은 누르스름한 색이었다. 형광등을 갈던 중이었던 건지 적나라하게 보이는 뚜껑이 열린 안은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아카아시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여전히 천장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손을 들어 배를 만졌다. 찢어진 자국도, 축축하거나 딱딱하게 말라붙은 핏자국도 느껴지지 않았다. 손에 닿는 거라곤 오직 익숙하게 부드러운 와이셔츠의 느낌뿐이었다. 아카아시는 그제서야 몸을 일으켰다. 천장뿐만 아니라 방 안의 광경도 낯설기만 했다. 또다시 처음 보는 방 안이라니. 아카아시가 십여 년 동안 살던 방도 아니었고, 아카아시가 영문을 알 수 없는 조화로 깨어났던 누군가의 방도 아니었다. 아카아시가..
보쿠아카 당신을 맞춰 언젠가 1 사망 소재 주의 주위가 시끄러웠다. 아카아시는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혼란한 시야를 짚었다. 사람들이 그를 둥그렇게 에워싸고 있었다. 입으로 손을 막은 여자, 모자를 쓴 남자, 수염 난 남자, 우는 아이를 달래는 여자, 교복을 입은 커플,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남자, 그들의 눈에 공통적으로 서린 것은 경악과 충격과 걱정과 동정 혹은 연민이었다. 아카아시는 고개를 틀었다. 그의 눈에 하얗게 질려 그를 붙잡아온 보쿠토의 얼굴이 보였다. “아… 아, 아…” 쏟아질 듯 크게 뜬 눈으로 보쿠토는 입술을 달싹였다. 내뱉는 숨과 목울대의 움직임이 무심코 합쳐진 소리인지 아니면 토막난 이름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조금 궁금한데. 아카아시는 입을 벌렸다. 저를 부르는 건가요. 묻고 싶었지만..
보쿠아카 예정적 손님 역키잡 보쿠토상이 가출했다. 아카아시는 그 보고를 듣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떨어뜨렸다. 먼지 소리를 내며 책상 위에 흩어진 종이들이 책상 가장자리까지 미끄러져 내려갔지만 주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갓 내린 커피로 뻗던 손은 허공에 머물러 있는 채였다. 그의 까만색 눈동자가 놀라움을 담았다. 그게 정말이냐는 듯한 눈빛을 마주한 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쿠토상이 가출이라고. 아카아시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고 손을 들어 올렸다. 하나, 둘, 셋. 손가락을 접은 그가 중얼거렸다. “3주라니 많이 참으셨군.” 아카아시는 단지 그게 좀 놀라울 뿐이었다. 아카아시는 사무실을 나서기 전 느슨하게 풀고 있었던 넥타이를 단정하게 조였다. 정장의 매무새도 한 번 매만진 그가 ..
카게히나 (+오이이와오이) 천사가 그랬어 “어, 카게야마!” 멀뚱히 서있던 카게야마가 히나타의 커다란 외침에 휙 뒤를 돌았다. 저 멀리서 편한 운동복 차림을 한 히나타가 손을 흔들며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입을 조금 벌렸다가 이내 꾹 다물곤 삐죽이는 입으로 고개를 도로 돌렸다. 히나타가 멀리뛰기를 하듯이 폴짝 크게 한걸음 뛰어 그의 앞에 도착했을 때여서야 카게야마는 다시 그를 돌아보았다. 가까워지는 히나타를 보는 게 어쩐지 뒷덜미가 근지러워 고개를 돌려버렸는데 가까이 다가와 있는 히나타를 봐도 그 간지러움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괜히 입꼬리가 올라갈 것 같아 그는 부러 퉁명스럽게 말했다. “늦었잖아.” “…허어?” 히나타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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