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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보쿠아카] 당신을 맞춰 언젠가 1

별골짜기 2016. 5. 9. 21:39

보쿠아카

당신을 맞춰 언젠가 1

사망 소재 주의

 

 

 

 

주위가 시끄러웠다. 아카아시는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혼란한 시야를 짚었다. 사람들이 그를 둥그렇게 에워싸고 있었다. 입으로 손을 막은 여자, 모자를 쓴 남자, 수염 난 남자, 우는 아이를 달래는 여자, 교복을 입은 커플,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남자, 그들의 눈에 공통적으로 서린 것은 경악과 충격과 걱정과 동정 혹은 연민이었다. 아카아시는 고개를 틀었다. 그의 눈에 하얗게 질려 그를 붙잡아온 보쿠토의 얼굴이 보였다.

 

,

 

쏟아질 듯 크게 뜬 눈으로 보쿠토는 입술을 달싹였다. 내뱉는 숨과 목울대의 움직임이 무심코 합쳐진 소리인지 아니면 토막난 이름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조금 궁금한데. 아카아시는 입을 벌렸다. 저를 부르는 건가요. 묻고 싶었지만 목에서는 쇳소리가 날 뿐이었다. 아니쇳소리가 아니라 쇠맛이 나는 것 같았다. 잘 움직이지 않는 혀로 입안을 더듬어 보았다. 머리가 멍청해진 건지 혀끝에 나사나 못이 걸리는 상상을 했다. 콜록콜록. 기침을 하자 쇠향까지 콧속 깊이 들어찼다. 오감, 아니촉각은 뺀 사감이 단 한 가지를 가리키고 있어 힘겹게 이름을 불렀다. 보쿠, 보쿠토상.

 

안 돼말하지마, 말하지마 아카아시. 안 돼. 안 돼.”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부를 찌르는 피 냄새가 역하다기보다는 새삼스러웠고 억울하기보다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벌써부터 눈앞이 흐려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입안을 맴돌던 피 냄새에도 서서히 무뎌지고 있었다. 물을 엎어버린 수채화처럼 색이 어지럽게 뒤섞이기 시작했다. ,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 우는 얼굴이어서야 되겠냔 말이다.

 

조금만, , 조금만 참아 아카아시잠깐만, 눈 감지 마, 아카아시!”

 

참을 수 없이 졸린 와중에도 아카아시는 불현듯 웃음이 났다. 합숙 때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깊은 밤 주장회의를 마친 보쿠토는 잠든 아카아시를 깨워 방으로 돌아가곤 했었다. 미리 마련해둔 자리에서 잠들기보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했다. 아카아시는 잠에 취한 탓에 대부분 보쿠토가 오늘 연습은 어땠고, 어땠고, 어땠고를 늘어놓곤 했고, 조금이라도 몰래 잠에 들라치면 보쿠토가 귀신같이 알아채고 자면 안 된다고 보채는 탓에 어쩔 수 없이 그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어야 했다.

그런 날이면 영락없이 병든 닭처럼 낮에도 꾸벅꾸벅 졸아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선배들이 간밤에 또 아카아시 괴롭혔냐고 보쿠토를 들들 볶아댔는데. 내가 잘못한 거냐고 침울해진 보쿠토에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그 순간들은 진심이었는데. 보쿠토와 있었던 일들이 여럿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죽기 직전이 되면 옛날 일이 파노라마처럼 보인다는데 아마 이걸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몰랐다. 부모님 생각도, 배구부 사람들도, 그리고 보쿠토 생각까지 이르러 아카아시는 긴 숨을 내뱉었다.

 

울지마세요.”

, 아카아시, 아카아시!”

 

완전히 흐려진 눈앞을 보느니 아카아시는 눈을 감았다. 마지막 시야가 물결치며 흔들리는 것 같았는데 아마 보쿠토가 그의 얼굴을 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감각을 느끼지 못한 게 아쉬웠다.

그리고…… 결국 끝까지 말하지 못한 그의 마음도 아쉬웠다.

어둠 새로 다시금 덧칠해지는 어둠이 아카아시를 잡아 끌어당겼다. 자석처럼 빨려드는 기분을 느끼며 그는 마지막으로 웃었던 것도 같다.

 

 

 

 

……!!”

 

발작적으로 움직인 몸이 그를 일으켜 앉혔다. 식은땀이 흘렀다. 시야가 어지럽고 거친 숨이 폐부를 찔렀다. 쿨럭쿨럭. 피를 토하듯 기침을 토해냈다. 기침으로 인해 강제적으로 감겼다가 떠지는 눈새로 수많은 장면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고양이보쿠토상그리고 나에워싼 사람들떠오르던 옛날 일그리고 그대로 점멸한 시야. 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곧추선 허리에서 힘이 빠져나간 탓에 한손을 들어 가슴 위에 얹고 다른 한손으로는 바닥을 짚었다.

잠깐, 바닥? 아니, 푹신한 침대 매트리스, 아니왜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거지?

아카아시는 불현듯 고개를 들었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팠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병원? 아니다. 그는 스스로의 마지막을 느꼈다. 언뜻 전화로 구급차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미 손 쓸 수 없는 상황이었음은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 수 있는 종류였다. 보쿠토마저도 예감하던 사실이 한낱 인력으로 어찌 해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기적이 일어나 간신히 숨이 붙었을지라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몸이 가뿐할 수가 없었다. 언뜻 아픈 부분도 있긴 했지만 화물차에 치인 거라기엔 가벼운 통증이었다.

무엇보다 여기는 처음 보는 곳이다. 병원에서 치료를 한참 받다가 깨어난 것도 아니었다. 일반 가정집, 그것도 처음 보는 곳의 침대 위에서 아카아시는 눈을 떴다. 그는 서둘러 침대에서 일어섰다. 무심코 저지른 행동이라 혹시 다리가 망가지지 않았을까, 사고 당시 완전히 감각이 상실된 터라 걷지 못하는 후유증이 남은 것은 아닐까, 순간 그렇게도 생각해봤지만 그는 멀쩡히 서서 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옷장 옆에 선 기다란 거울로 살피니 더 확실해졌다. 몸 곳곳이 자유로웠으며, 무엇보다 그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아카아시는 말없이 교복을 내려다보았다. 구김 없이 반듯한 차림새는 막 등굣길에 나선 것처럼 흐트러짐이 없었다. 이 공간이 그의 방이었다면,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밖에 나가 평소처럼 등교를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전혀 기억에 없는 이 낯선 곳에서 눈을 뜬 이상 이 상황이 꿈이 아닌지 가늠해봐야 했다. 혹은 이곳이 천국 혹은 지옥이거나.

아카아시는 딱히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가족이 불교를 믿긴 해 절도 몇 번 가봤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 같은 건 이해도 어려웠고 믿어본 적도 없었다. 차라리 그가 사고의 후유증으로 기억을 잃은 채 이사도 하고 재활도 하고 잘만 살다가 갑자기 사고 날 때의 기억을 되찾은 거면 몰랐다. 꼬집어볼까. 아카아시는 손등을 살짝 꼬집었다. 따끔하고 얼얼한 느낌이 들었다. 기막히게 생생하고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을 보니 이건 분명히 현실이었다.

아카아시는 최대한 침착해지려 했다. 아직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는 통증에 머리를 부여잡은 채로 그는 고개를 돌렸다. 책상 위에 탁상달력이 있었다. 달력을 집어든 아카아시는 동그라미 표시가 그려져 있는 522일이라는 날짜를 보았다. 그 이전 날짜까지는 모두 빨간색으로 가위표가 쳐져 있었다. 522. 아카아시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해졌다.

그의 기억이 맞다면, 사고가 난 날짜도 522일이었다. 막 해가 떠오르는 듯한 창문 밖의 풍광, 단정하게 입고 있는 교복, 그리고 522. 혹시, 아주아주 희박한 확률로, 사고가 난 날의 아침으로 되돌아온 것일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일까. 하지만 여긴 아카아시의 방이 아니었다.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도 처음 보는 나무와 집으로 꽉 차 있었다. 그럼 도대체 여긴 어딘데? 나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아카아시가 혼란스러운 생각으로 가득 차 달력을 내려놓으려는 순간이었다.

그의 손이 멈칫했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커진 눈동자가 달력의 한 부근에 집중됐다. 좌측 상단 부분에 적힌 숫자였다.

2018.

2018?

2018?

2018522?

아카아시는 잠시 넋을 잃고 그 숫자를 보다가 재빨리 달력을 넘겼다. 5월이 아닌 6, 7월의 페이지에도 모두 똑같은 2018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 어떤 것이 우선인지도 모르는 질문이 자꾸 아카아시의 아픈 머리를 두드렸다. 아카아시는 분명 2012522일에 죽었다. 정확히는 사고가 났지만 아마 확실히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2018522일에 버젓이 살아있다? 그것도 교복을 입고? 6년이 지났다면 지금 그는 24세다. 교복을 입을 나이가 아닐 뿐더러, 그 시간 동안 더 자라지 않았을 리도 없었다.

그러니까 그는, 죽기 바로 직전 몇 시간의 모습으로 2018522일에 이 주인 모를 방에서 깨어났다는 표현이 현재로서는 정확할 것이다. 그 이유나 신빙성에 대해서는 일단 논외로 접어두고.

아카아시는 책상 위를 보았다. 컴퓨터 한 대가 놓여 있었다. 그는 곧바로 홀린 듯이 의자에 앉았다. 부팅된 컴퓨터에서 곧장 인터넷을 켠 아카아시는 검색 사이트로 들어갔다. 커서를 찍고 자판 위에 손가락을 올린 그는 잠시 주저했다. 그의 눈이 잠시 우측 하단의 시계로 향했다. 2018-05-22. 차라리 그를 이 방에 넣은 누군가의 질 나쁜 장난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카아시 케이지, 도쿄, 후쿠로다니…….

몇 개의 키워드를 적는 손가락이 느릿했다. 살짝 떨리는 손으로 엔터를 치자 곧바로 수많은 검색 결과가 튀어나왔다. 그 중 가장 맨 위에 뜨는 검색 결과는 한 인터넷 신문 기사였다. 한 고교생의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사건을 다룬 짧은 기사. 아카아시는 입술을 깨물고 기사의 날짜를 살폈다. 2012522. 차마 그 기사를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건 꿈인가? 현실인가? 나는 살아있는 건가? 유령인가? 여긴 어디지? 내가 정말 아카아시 케이지가 맞나? 끝도 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들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의미 없이 내리는 스크롤을 따라 겉도는 눈동자가 멈춘 것은 익숙한 다른 종류의 키워드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아카아시는 뚝 스크롤을 멈췄다. 마우스 커서가 멋대로 움직였다. 한 웹사이트를 누른 아카아시는 어떤 익명 게시판을 보았다.

 

……팀에서 뛰고 있는 배구선수 보쿠토 코타로 말이야. 인터뷰에서 후쿠로다니 얘기만 나오면 표정 안 좋아지잖아? 그 이유 아는 사람 있어?’

 

아카아시의 숨이 가빠졌다. 2018년의 보쿠토. 잠시 잊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그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된 모습이었다. 몹시 충격을 받아 새하얗게 질린 얼굴이었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 털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역시 배구선수가 됐구나. 꽤 좋은 팀에서 뛰고 있구나. 이런 익명의 사이트에서도 언급될 정도면 꽤 유명인이 되었구나. 아카아시는 멍하니 이어진 답글들을 보았다.

 

- 고등학교 때 배구부 했다고 들었는데.

- 꽤 충격적인 일이 있었지.

- 어떤 일인지 알아?

- 여기 보쿠토 선수랑 잘 아는 사람이 있나본데.

- 고등학교 때 배구부 하면서 전국대회도 자주 나가고 승승장구했었어.

- 그럼 안 좋을 이유가 없는 거 아니야?

- 후배 중에 실력 좋은 세터가 있었는데 죽었나봐. 아카아시 케이지였던가.

- 보쿠토 선수 대신 차에 치인 모양이야. 그 이유도 따로 있다고 들었는데, 정확한 정황은 모르고 나도 이 정도만.

- 이야고등학교 때 얘기만 나와도 표정 안 좋을 만 한데.

- 고인 실명은 지우는 게 낫지 않겠어? 보쿠토 선수도 그걸 바라지 않을 것 같은데.

- 선수 사생활은 좀 존중하자.

 

후배 중에 세터가 있었는데 죽었나봐. 아카아시 케이지였던가. 그의 이름이 튀어나오고 아카아시는 허겁지겁 인터넷 창과 노트북 전원을 꺼버렸다. 심장이 쾅쾅 뛰는 탓인지 손끝이 떨렸다. 죽은 그의 이야기가 보쿠토의 삶의 섞여들어 있었다. 보쿠토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래서 그 대신 차에 치인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이런 걸 바란 건 아니었다. 이건 꼭죽어서도 미련이 남아 들러붙으며 행복하지 않길 저주하는 귀신이라도 된 것 같질 않은가. 아카아시는 입술을 깨물었다. 보쿠토가 아카아시 때문에 죄책감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다면 큰일이다. 보쿠토는 그런 모습이 어울리지 않았다. 그냥 평생 웃고 평생 행복하며 좋아하는 배구를 즐길 수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평생 무거운 죄책감을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면…….

아카아시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바지 주머니에서 지갑이 나왔다. 확인해보니 그가 2012522일 당일까지 가지고 다니던 지갑이었다. 그날 점심시간에는 보쿠토와 매점에서 피자빵을 사먹었었다. 지갑을 열어보자 돈이 들어 있었다. 얼마나 들어있는지 확인하자 정확히 522일날 들고 다니던 금액과 일치했다. 아카아시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방을 나왔다. 거실이라고 할 것도 없는 조그만 공간 딸린 집을 박차고 나와 아카아시는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 무작정 보쿠토가 뛰고 있을 팀의 체육관으로 가달라고 했다. 택시 기사는 수업을 받고 있어야 할 고등학생이 이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 있으니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아무 말 없이 방향을 틀었다.

역시 아무 말 없이 아카아시는 차창을 보았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해는 그 높이가 서서히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 저 해가 땅에 꺼지기 직전 사고를 당했었다. 눈을 감기 직전 아쉽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이렇게 보쿠토를 다시 마주할 기회가 생길 줄은 몰랐다. 하늘이 나를 불쌍하게 여긴 걸까. 아니면 뭔가 착오가 생긴 걸까.

아직 모든 정황이 파악되지 않았고 이 상황이 몹시 비현실적이고 여전히 머리는 어지러웠지만, 어쨌든 다행이었다. 그조차 확신할 수 없고 기이하기만 한 그의 존재가 보쿠토가 진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길 바라며, 아카아시는 초조하게 손을 매만졌다.

 

 

 

 

택시기사에게 계산을 치룬 뒤 아카아시는 보쿠토가 있을 체육관 앞에서 잠시 심호흡을 했다. 여기까지 와서 고민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인 것을 알았고, 버젓이 택시까지 타고 왔으니 그는 유령이나 귀신이 아니었다. 거리낄 거라고는 아카아시가 18세의 모습을 한 채 살아있다는 비현실적인 사실을 믿어줄지 그러지 않을지에 달려 있을 뿐이었지만 아카아시는 저절로 긴장이 됐다. 그건 아마…… 18세의 마음 그대로를 품고 이곳에 깨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보쿠토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그의 실력은 얼마나 늘었을지, 모든 것을 떠나 그를 직접 보고 싶었다. 부모님도 아닌 보쿠토부터 보러 오다니 참 불효자가 따로 없다고, 아카아시는 씁쓸하게 생각하며 경비실 앞으로 다가갔다. 경비원은 교복 차림새의 아카아시를 힐끗 본 뒤 말했다.

 

선수들 연습 끝날 때까지는 좀 기다려야 해. 학교도 빠지고 온 거니?”

 

용건도 말하지 않았는데 왜 왔는지 알고 있다는 듯한 어투였다. 팬을 자처해 찾아오는 학생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아카아시는 차라리 경비원이 그렇게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아카아시는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연습이 언제쯤 끝나나요?”

아마 오후 4시쯤? 그런데 추가연습하고 나오는 경우도 있어서 꽤 오래 기다려야 할 거야.”

그렇군요. 혹시, 들어가서 참관할 수 있습니까?”

 

아카아시의 말에 경비원이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게 꼭 경계를 하는 것 같아 아카아시는 손을 내저었다.

 

꼭 그러지는 않아도 됩니다.”

그럼 다행이고. 요새 선수들 광신도가 너무 많아서잘못 들여보내면 나 큰일 나.”

광신도요?”

극성팬들이라고 해야 하나. 남자고 여자고 성별을 가릴 수가 있어야지.”

 

그렇군요. 아카아시는 경비실이 그늘을 만드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경비원은 혀를 차긴 했지만 그를 나무라진 않았다. 아마 아카아시를 팬 중에서도 열성팬쯤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눈에 보이는 조그만 체육관 건물을 보았다. 경기 뛰는 모습은보지 못하는 건가. 아카아시에게는 하루, 아니마이너스 하루였지만 올해로 25세가 되었을 보쿠토에게는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보쿠토가 어떤 토스를 원하고 어떤 스파이크를 즐겨 하고 어떤 말을 들으면 컨디션이 왕창 올라가는지 가장 잘 알고 있던 건 아카아시였지만 그것도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이야기이기도 했다.

 

, 보쿠토상아니보쿠토 코타로 선수는어떤 선수입니까?”

 

아카아시가 조용히 물었다. 아카아시를 신경 쓰면서도 신문을 펼쳐 읽고 있던 경비실의 경비가 비죽이 웃으며 말했다.

 

보쿠토 보러 온 학생이었구만. 실력이야 코트 위에서 보는 것처럼 엄청나지. 뒤끝 없고 호탕하고. 혹시나 하고 누구 팬인지 물어보면 십중팔구 보쿠토를 말할 정도로 인기도 대단하고. 그래, 학생같이 누구 관심 없을 것처럼 생긴 사람까지 끌어들이니 얼마나 대단해.”

 

경비원의 칭찬이 구구절절 쏟아졌다. 아카아시는 미미하게 미소를 띠었다. 역시 보쿠토는 잘 지내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팀을 이끄는 한 축이 되고 있는 듯했다.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이긴 하지만 팀에 꼭 필요한 주축이고 시끄럽긴 하지만 팀의 사기를 드높이는데 한 몫 하는 아주 중요한 사람. 경기할 때뿐만이 아니라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좋은 사람.

보쿠토는 존재만으로도 쳐다볼 수밖에 없게 만들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천진난만한 매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옆에 있으면 걱정 근심 없이 그 어떤 고난이라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을 만드는 선배였다. 그 모습을 지켜주고 싶어서 잃고 싶지 않아서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을 정도로 그의 인생과 마음에 크게 자리잡아버리도록 짝사랑한 상대였다.

그런 그가 인정받고 사랑받고 있다. , 살고 있다. 그것만큼 다행인 게 없었다.

그냥…… 그냥 돌아갈까.

아카아시는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굳이 끼어들지 않아도 보쿠토는 잘 지내고 있었다. 여기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건 그가 고등학교 때의 이야기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봐서였다. 보쿠토는 처음으로 배구가 즐거워졌다고 했었다. 그가 처음으로 크로스를 성공시켰을 때, 아카아시는 손끝이 저릿할 정도로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보쿠토의 흥분과 기쁨을 온전히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의 기억이 이렇게나 생생한데. 보쿠토가 아카아시의 죽음 때문에, 그 죽음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는 죄책감 때문에, 그 시절의 기억을 꺼내길 주저한다는 게 싫었고 그러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한달음에 달려왔지만 경비원의 이어지는 말을 들으면 또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다행이네. 아카아시는 힘없이 중얼거리다가 순간 흠칫했다. 손끝이 뜨거워지고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다행이면서도 실망스러운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그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잘 지내길 바랐으면서도, 그 이상 바란 적도 원한 적도 없었으면서도, 잘 지낸다는 말에 급속도로 나약해지고 작아지는 스스로를 발견한 모순이 참을 수 없이 창피해졌다.

그냥그냥 내 집으로 갈까엄마 아빠에게 연락을 해서 돌아갈까나는 이미 죽었는데? 사망처리 되어 기사까지 났는데? 다시 살아 돌아온 아들을 쉽게 믿어줄까? 아카아시는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스스로가 살아 돌아왔다고 믿을 정도로 똑같은데 부모님이 몰라볼 리가 없었다. 차라리그게 맞는 거였다. 일단 부모님에게 가보고보쿠토는 그 다음에 생각해보고

 

?”

 

경비원이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가 났다.

 

왜 벌써 나오지.”

 

아키아시는 고개를 들었다. 한칸도 안 되는 좁은 경비실의 벽에 걸린 시계는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카아시는 경비원이 살짝 눈가를 찌푸리고 누군가를 쳐다보는 모습이 보여 그쪽을 쳐다보았다. 체육관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스포츠백을 비스듬히 매단 채 걸어 나오고 있었다. 햇빛이 너무 강해 금방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곧 아카아시는 눈을 크게 떴다.

저 멀리서 이쪽 정문을 향해 가까워지는 익숙한 키와 덩치. 삐죽삐죽 왁스로 잘 세워 바른 헤어스타일, 까만색과 흰색이 마구잡이로 섞여 있는 머리색, 그리고마찬가지로 그를 발견하고 크게 커진 채로 딱딱하게 굳어버린 노란빛 눈동자까지.

아카아시는 잠시나마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엄연히 그는 교복을 입고 2012년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시간이 멈췄다는 표현이 제법 잘 어울렸지만, 그건 2018년에 살고 있는 보쿠토도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잃은 듯 그가 얼어붙었다.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에도 잘 깎이지 않는 동상처럼 뻣뻣하게.

경비원이 의아하게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는 것 같았지만 그에게 구태여 설명을 해줄 필요는 없었다. 대신 아카아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맨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 있어 더러워졌을 바지를 툭툭 털어내자 보쿠토가 손을 들어 눈을 비볐다. 깜빡. 깜빡. 멀리서도 보이는 눈의 깜빡임이 거셌다.

아카아시는 그 눈동자에서 무엇이든 읽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놀라움보다는 충격에 가까운 것 같았다.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보쿠토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카아시는 마지막으로 본 그의 얼굴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바로 어제- 아니 오늘- 아니 몇시간 후- 아니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있었던 그 사고에서도 보쿠토는 하얗게 뜬 얼굴로 울었다. 지금은 울지 않아서 다행일까. 아카아시는 그의 앞에서 메고 있던 가방을 툭 떨어뜨린 보쿠토가 그의 어깨를 잡아올 때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

아카아시. 아카아시아카아시?”

 

보쿠토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카아시의 어깨가 꽉 쥐어졌다. 그게 조금 아팠지만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기 때문이다. 울려버렸다. 아카아시는 경비실에서 입을 반쯤 벌린 경비원을 보았다.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뒷수습이 어려울 것 같아 아카아시를 어께에서 보쿠토의 손을 떼어냈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보쿠토가 떨어트린 가방을 주워들고 곧바로 뒤를 돌았다. 이 근처에 공원이 있었던 것 같은데.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발견한 공원의 입구를 슥슥 지나치는 사이 뒤에서 급하게 따라붙는 발소리가 들렸다. 어깨에 다시 손이 얹히고, 아카아시는 반강제로 몸이 돌려졌다.

 

아카아시. 진짜 아카아시야?”

 

보쿠토의 손이 어깨에서 떨어지자마자 아카아시의 몸 여러 곳을 더듬었다. 양어깨, , 허리, 다리, 그리고 얼굴까지. 이렇게 만져지는데느껴지는데정말 아카아시야?

 

. 저예요 보쿠토상.”

이거 꿈 아니지, 나 분명 체육관에서 연습하다가 나왔는데아카아시가 보여서유령이라거나, 귀신이라거나, 그런그런 거 아니지?”

일단은아닙니다. 경비원과도 택시기사와도 얘기를 나누었으니?”

아카아시!!”

 

아카아시는 혀를 씹을 뻔했다. 가까스로 입을 다문 덕분에 잘린 혀가 아닌 하려던 말만 삼킬 수 있었다. 보쿠토가 강한 힘으로 그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기 때문이었다. 귓가에 끊임없이 그의 이름이 밀어 넣어졌다. 그동안 부르지 못해 참았던 것을 한꺼번에 꾸역꾸역 채워 넣기라도 하는 듯이 박히는 목소리가 아카아시는 싫지 않았다. 바로 어제까지 마음만 먹으면 느낄 수 있었던 체온인데 보쿠토에게는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으니 이해할 수 있었다. 아카아시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보쿠토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보고싶었어보고싶었어. 울먹임이 섞인 목소리에 심장이 딸꾹질을 해 진정시키느라 여간 고생하기도 했다.

 

그런데아카아시 왜 교복 입고 있어?”

 

뒤늦게 이성을 되찾은 보쿠토는 근처 벤치에 나란히 앉자마자 아카아시에게 물었다. 그것 참 빨리 물어보시네요. 아카아시의 말에 보쿠토는 횡설수설했다. , 아니, 나는, 아카아시가 너무 반갑고 기뻐서! , 그러고 보니

 

어떻게 된 거야!??”

 

사실 만나자마자 물어봤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순서는 중요하지 않았다. 상대가 보쿠토라면 더더욱. 아카아시는 가만히 무릎 위에 얹힌 손을 보았다. 무의식중에 매만지고 있는 손이 있었다. 완전히 아카아시쪽으로 몸을 틀고 있는 보쿠토가 그의 습관을 보았다. 회색 교복도. 파란색 넥타이도. 기억 속 18세의 모습과 완전히 똑같은 얼굴도.

 

저도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쌍둥이같은 건 아니지?”

아닙니다. 저는그러니까저도 모르게 이곳에 왔어요. 아니, 눈 떠보니 2018년이라는 말이 맞겠죠.”

 

보쿠토는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아카아시는 천천히 그가 겪은 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6년 전 522일에 죽은 것까지 기억하고, 그런데 눈을 떠보니 모르는 집에서 교복차림이었고 아마 2012년에서 죽기 전의 모습으로 이상한 일에 휩쓸려 2018년으로 오게 된 것 같다고. 무척 당황해서 그 방에 있던 노트북으로 이름을 검색해보다가 보쿠토상의 이름을 발견하고 무작정 찾아왔다고.

 

미안해, 아카아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이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도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사실 아카아시는 보쿠토를 만난 아직까지도 잘 실감이 안 나서 얼떨떨했다. 분명 죽음의 기억이 생생한데 몸은 아무렇지도 않고 아무런 후유증도 없고 일이 잘 풀려서 그런가. 그냥 꿈속을 부유하는 듯한 기분도 들어 아직 제대로 감회를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보쿠토는 고개를 들어 아카아시를 보았다. 경기 중이 아니고서는 보기 어려웠던 진지한 눈동자가 그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보쿠토의 손이 망설임 없이 아카아시의 손을 잡았다.

 

이렇게 다시 볼 수 있어서 다행이야. 나는아카아시 네가 그렇게 되어버리고 나는네 부모님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어서

 

보쿠토의 목소리 끝이 흐려졌다. 입술을 단단히 깨무는 그에게 아카아시가 물었다.

 

제 부모님은잘 계시나요.”

 

질문이 너무 늦은 것 같아 반성하는 아카아시에게 보쿠토는 난처한 얼굴을 했다.

 

네 장례식이 끝나고곧바로 이사를 가셔서못 뵌 지 좀 됐어. 연락을 해도 괜찮다 괜찮다 하시기만 하는데가끔 네가 안치되어 있는 곳에서 뵙기도 하고

 

이사라. 아카아시는 생각했다. 만약 보쿠토가 아닌 부모님을 먼저 찾아갔더라도 금방 만나긴 어려웠을 거란 소리였다. 분명 부모님도 많이 슬퍼하고 아파하셨을 거다. 아카아시의 부재를 견디지 못해 살던 곳을 떠나버릴 정도로. 부모님의 눈에서 눈물을 냈던 아픈 기억을 되새기며, 아카아시는 나중에 보쿠토에게 이사를 간 부모님의 위치를 알려달라고 부탁하기로 했다.

 

괜찮다고 하셨으면 괜찮을 겁니다.”

 

제가 왜 보쿠토상을 대신해 목숨을 걸었는지 알고 계실 분들이니까요.

 

지금 같이부모님 만나러 갈래? 분명히 엄청 기뻐하실 거야!”

, 그래요. 그보다

??”

깨어나서 한 끼도 못 먹었는데, 밥 좀 사주시겠습니까?”

그래애!? 당연하지!”

 

보쿠토가 기꺼워하며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카아시도 천천히 일어섰다. 아까는 해후가 급해서 몰랐지만 보쿠토는 조금 더 자라 있었다. 여전히 18세인 아카아시와는 차이가 더 벌어져 있었다. 거의 따라잡고 있었는데. 아쉬워진 아카아시는 문득 보쿠토가 묘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카아시는 여전하네.”

말했잖습니까. 2012년과 같다고요.”

내가 매일 상상하던 모습과 너무 똑같아서 안 믿겨.”

 

아카아시는 피식 웃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공원을 나서서 인도를 걸었다.

 

오늘 아카아시 기일이야.”

…….”

네가 있는 곳을 찾아가려고 연습에서 좀 일찍 나왔는데, 날 쳐다보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진짜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어.”

 

보쿠토의 말투는 차분했다. 고등학교 때 무슨 말이든 느낌표가 붙을 것 같았던 팔팔한 어조와는 사뭇 달라져 있어 아카아시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어떤 상실의 슬픔과 아픔도 느끼지 않고 자랐을 것만 같은 밝은 사람의 얼굴에 엿보이는 그림자를, 꼭 자신이 부어버린 것 같아서. 아카아시는 조용히 말했다.

 

보쿠토상, 혹시 저에게 죄책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면

나 할 말이 있어.”

 

보쿠토가 자리에 우뚝 서며 아카아시의 말을 잘랐다.

 

너에게 곧바로아니6년 전 그날이라도 했어야 하는 말이지만

 

아카아시의 눈이 커졌다. 보쿠토의 말이 놀라워서가 아니었다. 불현듯 좋지 않은 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카아시는 불안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주시하고 있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었다.

 

아카아시?”

말씀하세요.”

그러니까우선네가 날 구해준 거,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어. 하지만 미안하고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어. 단지동아리 후배가 나를 구하려다 죽었기 때문이 아니야. 나는

 

아카아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보쿠토가 주저하며 우물쭈물 하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저 멀리서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뛰어오는 남자 한 명 때문이었다.

. . .

그 사실을 깨닫고 빠르게 가까워지는 그를 눈에 담자마자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것은 경고였다. 앞으로 닥칠 일을 알려주는 위험 신호였다.

 

요새 선수들 광신도가 너무 많아서잘못 들여보내면 나 큰일 나.’

 

아카아시의 눈이 남자의 얼굴로 향했다. 무시무시한 분노가 서려 있는 눈이 보였다. 시선을 조금 옮기자 손에 쥐어진 횟집에서 쓸 법한 날카로운 칼이 보였다. 벌겋게 충혈된 눈이 향하는 건 분명 보쿠토의 등이었다. . . . 심장 소리가 귓가에 번질 정도로 세게 뛰는데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손끝이 식었다.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빠르게 달려오는 남자를 제압할 수 있는 확률을 생각하다가, 아카아시는 결국 한 가지 생각에 미쳤다.

 

나 말이야줄곧나는아카아시 너를

보쿠토상!!”

 

순간적으로 강한 힘에 밀린 보쿠토가 커다랗게 뜬 눈으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 . 떨어져 번진 핏방울들이 보도블록 위에 번졌다.

 

아카아시?”

 

. . 귓가에 울리는 심장소리가 더 커졌다. 아카아시는 무릎을 꿇듯 주저앉았다. 보쿠토를 대신해 찔리는 순간 그는 직감했다. . 죽겠구나, 라고. 한 번 경험해본 죽음이 무섭지는 않았지만 아프긴 아팠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그 비명조차 새어나갈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아픔이 그의 목을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더듬더듬 보쿠토의 손이 아카아시의 어깨와 얼굴을 짚으며 주머니를 뒤졌다. 핸드폰, 핸드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미 틀렸다는 것을 알기에 아카아시는 안간힘을 짜내어 보쿠토의 손을 잡았다. 보쿠토가 넋을 잃은 멍한 눈으로 횡설수설 떠들었다.

 

구급차, 구급차!!! 아니아카아시, 아카아시 잠깐만, 잠깐

쿠토상.”

아카아시아카아시-!!”

 

그제야 눈물과 떨어지는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를 들으며 아카아시는 조그맣게 속삭였다. 죄송죄송합니다. 그러나 보쿠토는 더욱 펑펑 울며 아카아시의 양볼을 붙잡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6년 전에도, 오늘도 꼭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아카아시, !”

보쿠토상.”

 

아카아시가 꺼질듯이 웃었다. 정신을 잡고 있는데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심하세요.”

 

광팬이 생길 정도로 잘나버리면 위험하잖아요…….

허리를 펴고 있을 힘도 없어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품에 풀썩 쓰러졌다.

 

아카아시아카아시!!”

 

보쿠토의 부름에도 아카아시는 눈을 뜰 수 없었다. 익숙한 감각이 그의 전신을 뒤덮었다. 겨우 다시 만났는데얼마 만나지도 못했는데또 이렇게 가버리면 보쿠토상 많이 힘들 텐데.

하지만 아카아시는 처음에도 그랬듯 후회하지 않았다. 이미 한 번 죽어버린 몸 한 번 더 죽는다고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보쿠토는아직 더 빛나야 했으니까.

아카아시의 몸에서 완전히 힘이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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