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쿠아카 안개 너머 당신 보쿠아카 전력 60분 (주제:담배) 자욱한 연기 너머로 닿아오는 시선이 어딘지 익숙했다. 옅은 회색 구름으로 매캐하게 뭉개진 얼굴선이 아지랑이처럼 너울거렸다. 그것은 세상과 스스로를 차단하는 형체 없는 벽이기도 했고 얼굴을 숨기는 가면과도 같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발치에 떨어져 천천히 끝까지 타들어가고 있는 수많은 담배꽁초는 울타리였다. 넘어오지 마시오. 특히 그 안에 혼자 있다면 더더욱. 그는 그 사실을 매우 오래전에 알게 된 바 있었다. 아카아시는 순간 속이 울렁거림을 느껴 잠시 명치 끝을 꾹 눌렀다. 필시 과음한 탓이다. 낯선 나라의 어디인지도 모르는 골목 안의 모든 것들은 너무도 시끄러웠다. 건물 안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웃음소리와 한시도 귀를 쉬게 내버려두지 않는 산발..
보쿠아카 내일 날씨는 맑음 보쿠아카 전력 60분 (주제:예언) 아카아시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체육관으로 향했다. 연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부터 왁자하게 체력을 소비하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의외로 체육관 근처는 조용했다. 늘 들리곤 했던 공 튀기는 소리와 신발이 마찰하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체육관 문이 열려있는데도 불구하고 두런두런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대화소리만 언뜻 흘러나왔다. 의아하게 생각하며 들어서는 아카아시의 눈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3학년들이 보였다.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었다. 옷을 갈아입기까지 했는데 뛰기는커녕 가만히 앉아 있다니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언뜻 회의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카아시는 혹시 심각한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닌가 싶어 ..
카게히나 성냥보다 따뜻한 카게히나 전력 60분 (주제:동화) - 성냥팔이 소녀 카게야마와 히나타의 눈이 황망하게 하늘을 살폈다. 하늘에서 눈송이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니, 눈송이라고 부르는 건 너무 귀여운 표현이다. 예쁘다는 감상적인 표현도 사치였다. 여름에 올라왔어야 할 태풍이 시기를 잘못 맞춰 올라와 그대로 얼어버린 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쏟아지는 눈발이 무시무시하게 빽빽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건 아닐까? 그 구멍에 대고 눈이 가득 든 양동이를 부어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인과가 어떻게 되었든 상황이 심각한 것만은 분명했다. 히나타가 경악하는 사이 그의 팔이 붙잡혀 빠르게 끌려갔다. 히나타가 고개를 돌리자 카게야마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그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시간이 늦어 급하게 몸을 의..
보쿠아카 나를 봐줘 아카아시 아카른 전력 60분 (주제:부상) 작전명. 코노하는 철없는 주장을 보았다. 보쿠토는 바닥에 주저앉아 팔짱을 끼고 있었다. 장난감 코너에서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사주지 않아 고집을 부리는 어린아이 같은 자세를 취한 그의 눈이 향한 곳은 1학년 후배의 훈련을 봐주고 있는 아카아시였다. 보쿠토와 같은 윙스파이커 포지션의 1학년 후배는 아카아시와 토스를 맞춰보고 있었다. 가볍게 뛰어오른 1학년 후배가 아카아시의 토스를 받아 있는 힘껏 공을 내리쳤다. 퍽! 격한 소리를 내며 네트 너머에 박힌 공이 풀쩍 뛰어올라 튕겨나갔다. 파워가 너어어무 약하잖아. 자세도 어어엄청 어정쩡해. 보쿠토가 투덜거렸다. 두 사람의 타이밍이나 호흡이 제법 괜찮지만 보쿠토의 마음에 차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마음..
카게히나 사탕에서는 신맛이 난다 카게히나 전력 60분 (주제:사탕) 학교는 아침부터 시끄럽다. 높은 목소리로 재잘대는 목소리들은 오늘따라 유독 들떠 있었다. 비밀 같으면서도 비밀 같지 않은 속삭임. 들어주길 바라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지나치면 찾아드는 잠잠함. 완전히 스쳐 지나서야 폭죽을 터뜨리듯 다시 웃음소리가 부르텄다. 잔뜩 팽창했다가 급작스레 터져 나오는 긴장이 마치 풍선 같았다. 카게야마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해 괜히 미간을 더 찡그렸다. 복도 저편에서 마주쳐오던 남학생 두 명이 카게야마의 표정 변화를 읽어내고 재빨리 복도 가장자리로 비켜났다. 그마저도 알지 못한 걸음은 변화 없이 느릿하기만 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틀어 창밖을 보았다. 보이는 하늘은 흘러가는 구름만 빼면 언제 봐도 늘 같은 색이었..
보쿠아카 허용선 아카른 전력 60분 (주제 : 질투) 보쿠토가 손을 내밀었다. 아카아시는 자연스럽게 사물함 열쇠를 건네주었다. 보쿠토는 헷 한 번 웃은 뒤 사물함을 열었다. 필요한 것을 단번에 찾아 골라낼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럽게 섞이고 정체를 알 수 없이 찢긴 종이조각들이 굴러다녔다. 아무렇게나 쑤셔 넣어 구겨진 소프트 커버 표지까지 찬찬히 살핀 아카아시는 보쿠토를 돌아보았다.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다음 수업 때 필요한 전공 서적을 찾는 손길이 부산스러웠다. 쓰레기통처럼 보이는 안을 거리낌 없이 휘젓는 동안 사물함의 내부는 더욱더 처참해졌다. 참다못한 아카아시가 보쿠토에게 말했다. “사물함 안이 꼭 보쿠토상 방 같네요.” 주인의 방을 닮은 사물함 안을 쳐다본 아카아시는 보쿠토가 드디어 찾던 책을 끄..
보쿠아카봄맞이 대청소아카른 전력 60분 (주제 : 추억) 봄맞이 대청소를 했다.―라고 하기에는 아직 시작하지 못했으니 할 ‘예정이다.’ 혼자 나와 살고 있는 집은 쓸데없이 커서 번거롭고 성가셨다. 내다 버리기 귀찮아 한구석에 쌓아두기 시작한 온갖 박스들, 시간이 지나 더는 찾지 않게 된 옷가지들, 손자국이 덕지덕지 남아 있는 창문 유리, 침대 옆 벽지 위에 너덜너덜하게 붙어 있는 누런 종이들을 비롯해 쓸고 닦고 치워버려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여기부터 손을 대야 할지 저기부터 손을 대야 할지 영 감이 잡히지 않는 총체적 난국 상황에서, 아카아시는 팔짱을 꼈다. 특유의 나른하고 느긋한 눈으로 방을 쭈욱 둘러보며 그는 머릿속으로 가장 최적의 청소 과정을 짰다. 청소 중에 분명 쓰레기와 먼지들이 많이 나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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