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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카게히나] 성냥보다 따뜻한

별골짜기 2016. 4. 9. 22:59

카게히나

성냥보다 따뜻한

카게히나 전력 60(주제:동화) - 성냥팔이 소녀

 

 

 

 

카게야마와 히나타의 눈이 황망하게 하늘을 살폈다. 하늘에서 눈송이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니, 눈송이라고 부르는 건 너무 귀여운 표현이다. 예쁘다는 감상적인 표현도 사치였다. 여름에 올라왔어야 할 태풍이 시기를 잘못 맞춰 올라와 그대로 얼어버린 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쏟아지는 눈발이 무시무시하게 빽빽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건 아닐까? 그 구멍에 대고 눈이 가득 든 양동이를 부어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인과가 어떻게 되었든 상황이 심각한 것만은 분명했다.

히나타가 경악하는 사이 그의 팔이 붙잡혀 빠르게 끌려갔다. 히나타가 고개를 돌리자 카게야마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그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시간이 늦어 급하게 몸을 의탁할 상점도 없었다. 선택지가 거의 없는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나마 가까운 곳에 있는 철물점 건물 앞에 서는 것밖에 없었다. 잠긴 문을 따고 들어갈 수는 없어 처마 아래에 나란히 선 카게야마와 히나타는 짧은 시간 맞아버린 눈을 털어내느라 바빴다. 처마가 넓지 못해 눈이 가끔 날아들기도 했지만 저 밖에 우두커니 서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눈이 너무 많이 오지 않아?”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에 할말을 잃고 있던 두 사람 중 히나타가 먼저 중얼거렸다. 카게야마가 옷에 묻은 눈을 털어내던 중 히나타를 돌아보았다. 카게야마도 이 상황이 전혀 달갑지 않은 듯 아까부터 인상이 찡그려져 있었다. 벌써부터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것 같아 히나타는 덜컥 겁이 났다.

 

눈 언제 그치지!?? 우리 계속 이러고 있어야 되나? 눈이 금방 안 그치면 이러다가 동상에 걸려버릴 지도 몰라!”

시끄러워. 넌 뭐 그렇게 겁나는 게 많아?”

, 혹시 지구가 뭐 잘못된 건 아닐까? 이렇게 눈이 갑자기 많이 오는건 너무 갑작스러운데…… , 그러고 보니 20121224일에 지구가 멸망한다고 했잖아!”

지금 벌써 20131월이다 멍청아!”

어디지옛날에 예언한 사람들이 날짜를 잘못 알아서1224일이 아니라 알고 보니 오늘 멸망하는 거라던가!”

시끄럽다고 몇 번 말해!”

 

카게야마가 손을 뻗어 히나타의 머리를 콱 쥐었다. 정신 차리라는 의미로 행한 무력이라면 이보다 더 효과가 좋을 수 없을 정도로 히나타는 금방 얌전해졌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 세게 잡았잖아!” 히나타가 머리를 문지르며 투덜거렸다. 카게야마는 그 말을 듣지 못한 척 바깥을 살폈다. 확실히 눈이 많이 오긴 했다. 사실 히나타가 말한 대로 옛날 어디에 살던 누군가들이 예언한 게 오차가 있는 걸지도 몰랐다. 멸망의 날이라고 학교를 떠들썩하게 했던 20121224일이 지나간 지는 고작 1주일이 되었을 뿐이고. 지구가 멸망한다는 게 너무 간단한 것 같아서 믿기 어렵지만 이 정도 속도라면 금방 파묻혀버릴 것 같기도 했다.

젠장. 진짜 멸망해버리는 거 아니야? 카게야마는 히나타를 곁눈질했다. 역시 당장 멸망이라는 건 별로 믿고 싶지 않았다. 젠장. 카게야마는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갑작스러운 카게야마의 행동에 히나타도 엉겁결에 그를 따라 앉았다. 카게야마는 투박한 손놀림으로 발치에 내려놓은 봉투를 뒤적이고 있었다. 봉투 안에는 겨울합숙 도중에 가위바위보에서 진 두 사람이 학교 밖으로 나와 사온 것들이 담겨 있었다. 히나타가 의아하게 그가 하는 양을 보는데 별안간 카게야마가 무언가를 꺼냈다.

 

? 성냥?”

 

카게야마는 아무 말 없이 성냥 하나를 꺼내 성냥갑 옆구리를 죽 긁었다. 성냥의 빨간 머리가 타오르며 불이 붙었다. 카게야마가 성냥 한 개비를 히나타에게 내밀었다. 주는 건가? 싶어서 한 손을 뻗자 카게야마가 도로 성냥을 빼앗았다.

 

……?”

손으로이렇게.”

~ 안 꺼지게?”

 

그 의미가 아니라고 카게야마가 외치기도 전에 히나타가 손을 둥그렇게 말아 성냥불을 감쌌다. 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리던 성냥불이 안정을 찾았다. 성냥불에 두 사람이 쪼그려 앉은 근처가 밝아져 아까보다는 한결 나아졌다. 히나타는 키득 웃으며 말했다.

 

카게야마군, 깜깜해서 무서웠나봅니다.”

닥쳐.”

 

어두워서 성냥불을 밝힌 게 아니라 네가 추워보여서 켠 거라고 카게야마는 죽어도 말로 뱉을 수 없었다. 개구지게 웃는 히나타를 보니 더욱 그러지 못하겠는 기분이었다. 카게야마는 휙 고개를 돌렸다. 히나타가 말했다.

 

그래도 손바닥은 따뜻해진 것 같다.”

그래?”

다음은 내가 들고 있을게! 카게야마 너도 손 녹여라!!”

 

카게야마가 일부러 그의 손을 따뜻하게 해주려고 불을 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으며 히나타가 거의 다 타버린 성냥 한 개비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성냥갑을 받기 위해 내민 손을 보고 카게야마가 말했다.

 

됐어.”

? ?”

됐다고 하잖아.”

그래도카게야마 너 손 안 시려?”

 

카게야마는 그래.”라고 짧게 말한 뒤 말없이 성냥 한 개비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히나타에게 가져가는 순간, 그가 카게야마의 손을 붙잡아왔다.

 

!?”

 

카게아마는 하마터면 성냥불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가 눈을 부릅뜨며 히나타를 쳐다보았다. 히나타가 카게야마의 시선을 교묘히 피하며 말했다.

 

나만 따뜻한 건 좀불공평하니까! 그래서 그런 거야!!”

, 누가 뭐랬냐!!”

 

젠장! 카게야마는 히나타를 똑바로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금방이라도 지구를 삼켜버릴 것처럼 구는 눈보라에도 쉽게 식혀지지 않는 마음이 참 이상했다.

 

카게야마, 너는 진짜 이대로 지구가 멸망한다면 지금 하고 싶은 게 뭐야?”

멸망 안 해.”

 

그렇게 말하면서도 카게야마는 조금 불안해져 하늘을 살짝 쳐다보았다. 여전히 눈은 기세를 그칠 줄을 모르고 쏟아져 내리는 중이었다. 다시 히나타에게 붙잡힌 손을 내려다보자 성냥불이 꺼져 있었다. 카게야마는 성냥을 여러 개 꺼내들었다. 히나타의 손이 차가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히나타가 놀라서 만류하기도 전 카게야마가 불을 하나 붙여 다른 성냥들에게도 옮겨 붙게 했다. 아까보다 훨씬 커진 불이 활활 타올랐다. 카게야마가 턱짓을 했다. 히나타가 주저하더니 손을 뻗어 아까처럼 바람을 막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카게야마에게 물었다.

 

이대로 멸망하면 뭘 하고 싶냐니까?”

멸망 안 한다고 했잖아.”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가 뭐야!?”

별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으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잖아. 혹시, 만약, 어쩌면!”

그런 너는 뭐하고 싶은데?”

나는……

 

히나타가 골똘히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불길이 커서인지 훨씬 따뜻한 대신 성냥뭉치는 아까보다 더 빨리 타고 있었다. 그걸 물끄러미 보던 히나타가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해. 한 번 성냥불 붙일 때마다 하고 싶은 거 말하기.”

 

뭘 그런 걸 다 하냐고 카게야마가 구박했지만 히나타는 꿋꿋했다. 결국 카게야마는 히나타의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히나타가 먼저 말했다.

 

나는네 토스 받아서 스파이크 꽂는 거.”

…….”

이제 네 차례다.”

인터하이 우승.”

그건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불이 꺼졌다. 동시에 카게야마의 표정이 무섭게 변했다. 깜깜한 어둠을 배경으로 한 카게야마의 얼굴은 제 아무리 익숙한 히나타라고 해도 무서웠다. “, 그래. 당장은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거니까 인정해줄게!” 히나타가 어색하게 웃었다. 한 번에 다 타버려 까맣게 변한 성냥뭉치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카게야마는 새로운 성냥을 몇 개비 꺼내 불을 붙였다. 히나타도 이왕 이렇게 된 거 희망사항을 던졌다.

 

“2학년 봄고 우승!”

“3학년 인터하이 우승.”

…….”

…….”

“3학년 봄고 우승!!”

 

다시 다른 성냥에 불을 붙이자마자 히나타가 냉큼 외쳤다. 동시에 카게야마의 얼굴이 와사삭 구겨졌다. 차례대로 인터하이와 봄고를 주고받다보니 고등학교 때의 목표가 전부 나왔다. 의기양양해진 히나타가 물었다.

 

할 말 없어? 내가 이긴 건가 그럼??”

있어.”

뭔데? 말해봐.”

 

카게야마는 히나타를 물끄러미 보다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세계대회 우승.”

세계!”

 

역시 카게야마는 꿈도 남다르다고 히나타는 생각했다. 순간 카게야마의 손에 들려 있던 성냥불이 꺼져 히나타는 무심코 고개를 내렸다. 그들 발치에 흩어져 있는 다 쓴 성냥들이 수북했다. 카게야마가 든 성냥갑을 보자 역시 성냥이 얼마 남지 않아 있었다. 이번 한 번을 켜고 나면 이제 남는 게 없을 것이다. 히나타는 성냥불을 켜려는 카게야마의 손을 보았다. 눈발이 섞인 바람을 맨손으로 맞아 빨갛게 변해버린 게 보였다. 카게야마는 세터다. 늘 손 관리에 열심인 걸 카라스노 배구부라면 전부 알고 있었다. 그래서 히나타는 카게야마에게서 성냥을 빼앗았다.

인상을 찌푸린 카게야마가 보였지만 히나타는 모르는 척 성냥불을 밝혔다. 성냥의 밑을 잡고 히나타가 카게야마를 빤히 보았다. 카게야마는 내키지 않는 듯했지만 히나타가 그랬던 것처럼 손을 뻗어 성냥불을 감쌌다. 히나타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조금 따뜻하지 않아?”

그러네.”

눈은 언제 그치려나? 아무래도 안 그칠 것 같은데.”

멸망 아니라고 했잖아.”

너 아까부터 왜 그렇게 무섭게 부정하냐? 멸망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어?”

 

카게야마는 쏟아지는 눈을 보았다. 히나타의 얼굴을 보고서는 도저히 말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말하고 싶기도 했다. 별로 믿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당장 이 지구가 멸망해버린다면 분명 말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겠지.

 

너랑 하고 싶은 게 많으니까.”

?”

 

카게야마가 침묵하는 동안 잠시 바닥에 떨어진 성냥개비들의 개수를 세던 히나타는 9개째에 이르러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카게야마는 여전히 눈 내리는 바깥을 보고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그의 머리카락이 휘날렸지만 그의 올곧은 눈은 미세한 흔들림도 없었다. 히나타를 보고 있지는 않았지만, 카게야마는 담담하게 말했다.

 

난 너랑 인터하이 우승도 봄고 우승도 할 거고 세계 무대도 같이 설 거다. 그런데 지금 바로 멸망해버리면 그럴 수가 없잖아. 그리고……

 

카게야마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너랑 배구하는 게 제일 재밌고 즐겁지만너랑 손도 잡고 싶고너랑 키스도 하고 싶어. 젠장젠장, 아무튼그러니까 싫은 거다!!”

 

마지막 남은 성냥이 절반 이상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 미약한 불이나마 손을 녹여준 덕분일까? 카게야마의 얼굴은 붉었다. 눈보라 소리가 그의 귓가를 스쳐지나가자 히나타는 자신의 차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곧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 지금 당장 너랑 안고 싶어.”

 

카게야마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히나타는 자기도 모르게 빠져나온 말이 진심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웃었다. 머지않아 히나타가 들고 있는 성냥불이 꺼지고 둥글게 만 손 틈새 사이로 바람이 불었지만 차갑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아까보다 더욱 뜨겁게 달아오른 열에 카게야마는 하마터면 눈바닥에 얼굴을 처박을 뻔했다. 히나타의 손에서 까맣게 그을린 성냥개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히나타가 팔을 뻗었다.

카게야마는 넋이 나가 머릿속이 멍한 상태에서도 히나타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그가 지금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자각하지 못한 채 그의 머릿속을 뛰노는 것은 히나타가 한 말을 이루는 단어들뿐이었다. 나는. 지금. 당장. 너랑. 안고. 싶어. 꼴랑 여섯 단어가 카게야마의 머릿속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카게야마는 그저 히나타를 꽉 껴안았다. 맞닿아 따스한 온기가 두 사람 사이를 오다녔다.

 

 

 

 

카게야마가 정신을 차린 것은 히나타의 핸드폰 벨소리가 울려서였다. 카게야마도 히나타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후다닥 서로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히나타는 서둘러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고, 카게야마는 애꿎게 주먹을 꽉 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했다. 히나타에게 걸려온 전화는 우카이 코치의 전화였다. 통화가 잠깐 불가능했다가 이제 가능해져 건 거라면서 어디냐고 물어왔다. 그가 직접 데리러 올 모양이었다. 히나타가 그들의 위치를 대강 알려주고 통화를 마친 뒤 핸드폰을 빤히 보며 말했다.

 

핸드폰 있다는 거 완전히 잊고 있었어.”

 

그건 카게야마도 할 말이 없었지만 괜히 퉁명스럽게 말했다.

 

네 탓이다, 멍청아.”

. 그게 왜 내 탓인데?”

 

네가 하는 말은 쓸데없는 거라도 일일이 뜯어보게 되니까 정신이 팔려서 그렇지. 카게야마는 속으로만 중얼거리며 히나타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 줘.”

? .”

 

카게야마는 히나타의 손을 잡았다. 분명 떨어져 있을 때는 시렸던 것 같은데 거짓말처럼 온기가 손끝까지 퍼져 있었다. 카게야마는 단순히 히나타가 따뜻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지만, 심장이 두근두근 펌프질을 너무 열심히 한 덕분이었다. 이럴 거면 괜히 성냥을 낭비했다. 처음부터 히나타와 닿아 있었다면 둘 다 따뜻하고 좋았을 텐데.

 

좋아해 멍청아.”

? 그거 고백입니까?”

시끄러워!”

에엣, 내 대답은 안 들으려고?”

…….”

…….”

…….”

…….”

멍청아!! 빨리 대답 안 해?!”

으악! 시끄럽다며!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 알았어! 좋아해! 나도 좋아해 카게야마!!” 히나타의 다급한 목소리가 쏟아지는 눈발과 섞여 소복하게 내려앉았다. 차곡차곡 쌓이는 눈처럼 카게야마 마음에 얹힌 단어들이 뭉클뭉클 솟아나 심장을 두드렸다. 그게 너무 벅차고 버거워 울컥울컥 토해내고 싶은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카게야마는 히나타의 손을 더욱 세게 잡았다.

눈이 멈추지 않을 거라면 이 순간순간도 계속해서 쌓여줬으면 좋겠다고. 카게야마는 생각했다.

 

 

 

 

 

 

하이큐 원작 시점이 2012년이라는 가설을 주워듣고 썼습니다.

날짜 1월이 아니라 딱 20121224일로 하고 싶었는데 일본은 겨울방학이 12월 말부터라고 해서 짜식... 지구 멸망 루머 돌았을 때 카게히나는 뭔가 믿었을 것 같은ㅋㅋㅋ 여기서도 당연히 지구 멸망 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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