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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카게히나ts] 어쩌면 데이트

별골짜기 2016. 3. 9. 19:08

카게히나(히나타ts)

어쩌면 데이트

쓸데없이 김 주의

 

 

 

히나타는 체육관 근처에 자전거를 세웠다. 꽤 이른 아침부터 퉁퉁 공 굴러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 연습은 강제가 아니었지만, 의욕을 가지고 일찍 나온 부원들이 내는 소리였다. 히나타는 그 중에서도 가장 빨리 나오는 한 명을 알고 있었다. 히나타는 자전거를 세운 뒤 천천히 체육관 입구로 다가갔다. 기웃거리며 고개를 들이밀자 서브 연습을 하는 카게야마의 모습이 곧바로 보였다. 공을 든 채로 잠시 눈을 감아 집중한 뒤 높이 뛰어올라 강하게 내리치는 모습이었다. 히나타는 얼마 전 아오바죠사이와의 연습경기에서 카게야마가 보고 배웠다는 서브 자세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아오바죠사이의 3학년 오이카와 토오루. 카게야마와 같은 중학교 출신. 코트 위의 제왕이 꺾고 싶어 하는 상대. 대왕님도 서브를 날리기 전에 공을 쥐고 눈을 감았었다. 가끔 서브 직전 손 안에서 공을 굴리는 것도 닮았다. 카게야마를 공식전에서 대놓고 밟아주겠다고 선언한 오이카와, 그리고 오이카와를 성격 나쁘다고 표현했던 카게야마. 히나타의 상념에 젖은 시선을 느낀 듯한 카게야마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뭐하냐. 옷 안 갈아입냐 멍청아.”

 

옷을 갈아입지 않아 교복 차림인 히나타를 발견하고 카게야마가 공을 옆구리에 끼고서 다가왔다.

 

나 오늘은 아침 연습은 매니저 못 해.”

?”

주번!”

 

못 한다는 말에 한순간 험상궂어진 인상이 보여 히나타는 재빨리 정당한 이유를 말했다. 주번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카게야마는 그제야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양심이 있다면 치마 입고 체육관 들어올 생각은 안 했겠지만

뭐야? 그건 어떤 종류의 양심이냐!”

 

히나타가 주먹을 휘두르며 항의했다. 카게야마는 히나타를 위아래로 한 번 살핀 뒤 말했다.

 

여장한 것도 아니고.”

야잇나 변태 아니거든!!?”

누가 뭐랬냐.”

 

히나타는 씩씩대며 주먹으로 카게야마의 팔을 한 대 쳤다. 그런데 꿈쩍도 않고 눈가만 찡그리는 게 얄미워 한 대 더 쳤다. 몇 대를 더 때려도 꿋꿋할 카게야마가 단 하나의 데미지도 입지 않았음을 확인한 히나타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가, 치졸해서 이 방법까지는 안 쓰려고 했는데,

 

! 오늘 반찬, 반숙 계란인데 아쉽게 됐다!”

 

미련 없이 뒤를 돌아 체육관을 벗어나려는 히나타의 가방이 별안간 탁 잡혔다. 중심을 잃고 기우뚱하려는 히나타의 양 어깨를 카게야마가 붙잡았다. 단단히 잡힌 어깨에 깜짝 놀란 히나타가 고개만 돌아보자 카게야마가 무서운 얼굴을 하며 쳐다보았다. 하지만 정작 나오는 말은 무섭기보다는 소심하게 토막 난 단어의 연속이었다.

 

. . .”

 

카게야마가 인상이 험악해질 때는 정말 화가 났을 때도 있지만, 때론 뱉기 어려운 말을 한다는 사실을 깨우친 지 얼마 안 된 히나타는 참을성 있게 그의 말을 기다렸다. 곧 카게야마가 힘겹게 말했다.

 

……취소.”

으흠? 뭘 취소한다는지 모르겠는데?”

성격 나빠 멍청아!!”

 

카게야마가 히나타를 억지로 뒤돌게 했다. 카게야마를 뒤돌아보느라 고개가 아팠던 참이라 마주보게 된 것까지는 괜찮은데, 그것도 모자라 양 어깨를 잡고 짤랑짤랑 흔들었다.

 

교복- 입고- 들어와도- 되니까-”

잠깐, , , 어지럽……

여장- 이라고 한 말- 취소라고!! 멍청이! 멍청이 멍청이!!”

 

히나타는 멍청이라는 말을 몇 번 더 들어서야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어찌나 흔들렸는지 정신이 없어 다리가 흐물거리는 바람에 카게야마는 손을 놓을 수도 없이 계속 히나타의 어깨를 잡고 있어야 했고 말이다.

 

그러니까이따가…… 반숙반숙!”

이 녀석드을!! 신성한 체육관에서 연애를 하다니!!!”

 

그런데 그때 저 멀리서부터 우악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번쩍 차린 히나타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타나카가 먼지구름을 이끌며 달려오고 있었다. 빗자루를 들고 있다면 금방이라도 카게야마를 후드려 팰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히나타는 눈을 크게 뜨며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다만 간과한 것이 있다면 히나타는 체육관을 오르는 계단 위에 있다는 것이고, 허공에 발을 헛디뎌 정말로 뒤로 넘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타나카가 비명을 지르고 카게야마의 눈이 커진다 싶더니 손목에 강한 힘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강한 힘에 의해 몸이 휙 끌려가는 듯 싶더니……

 

.

히나타아아아!”

 

히나타는 눈을 깜빡거렸다. 보이는 건 하얀색이었다. 카게야마의 티셔츠도 이런 비슷한 흰색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뒤로 넘어지지 않고 서 있는 건 알겠지만, 내가 지금 기대고 있는 게……

 

정신을 어따 빼고 있는 거야 멍청아!”

 

귀가 따가울 정도로 큰 카게야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게야마의 티셔츠에 묻었던 얼굴을 떼어내고 고개를 들자 성난 얼굴이 보여 얼떨떨하게 말했다.

 

미안. 고마워.”

히나타아아! 괜찮냐아아!!”

. .”

미안하다! 놀라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

 

타나카도 나름 당황했는지 어쩔 줄 몰라 하며 히나타를 살폈다.

 

미안하다!”

. 정말 괜찮아요!!”

……무슨 일이십니까?”

 

타나카의 비명 같은 사과가 쏟아질 때쯤, 느지막이 나타난 츠키시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히나타가 고개를 돌렸다. 귀에 쓰고 있던 헤드폰을 빼 목에 걸며 츠키시마가 타나카, 카게야마, 히나타 순서대로 쭉 훑었다. 타나카가 말했다.

 

아니, 아침부터 카게야마랑 히나타가 티격태격하길래 장난을 좀 쳤더니 히나타가 놀라서 그만 발을 헛디딜 뻔했지 뭐야.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 정말 미안하다 히나타!”

진짜 괜찮아요, 타나카상! 계단 별로 높지도 않은데요. 어차피 카게야마가 잡아줬고……

 

츠키시마가 스윽 눈을 돌려 히나타의 손목을 보았다. 여전히 카게야마가 꽉 잡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제야 히나타는 하며 카게야마에게서 손목을 빼냈다. 워낙 꽉 잡혀서 아픈 부근을 문지르는 사이 타나카가 사과하는 만큼 괜찮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츠키시마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학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사고를 치다니. 제왕에게 반역자로 수배 당할 만 해.”

뭐야?!”

뭐야!”

 

원샷 투킬……. 타나카는 이 와중에도 발동하는 츠키시마의 공격 스킬에 감탄했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히나타는 동전 몇 개와 도시락통을 들고 재빨리 교실을 나섰다. 교실 밖으로 나오자 막 뒷문에서 나온 카게야마가 보였다. 카게야마의 손에는 덜렁덜렁 들린 봉지가 있었다. 아마 오니기리가 잔뜩 들어있을 터였다. 히나타는 더 볼 것도 없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카게야마의 팔을 잡아 끌어당겼다. 친구들이 카게야마와 점심을 먹기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또 진짜 사귀는 거 아니냐고 하루 종일 물어볼 것이 뻔했다. 히나타는 나름 바람같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창문에 들러붙은 친구들이 발그레하게 붉어진 얼굴로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두 사람을 보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카게야마는 처음 히나타가 팔을 잡고 끌어당겨 놀란 것 같긴 했지만 곧 그러려니 하고 순순히 끌려왔다. 그 어떤 때보다 의욕적으로 달려 학교 뒤뜰 구석에 도착한 히나타는 숨을 몰아쉬었다. 교감의 가발을 벗긴 죄로 카게야마와 같이 부활동 금지를 먹었을 때 연습했던 장소였다. 그날 이후 히나타가 카게야마와 가끔 도시락을 같이 먹는 장소이기도 했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최소 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 친구들을 알지 못한 채 히나타는 카게야마와 자판기 앞에 섰다.

준비해 온 동전을 손 안에서 굴리며 히나타는 무엇을 먹을지 고르는 중이었다. 카게야마도 험상궂은 얼굴로 한참 자판기를 노려보더니 곧 동전을 넣었다. 뭘 먹으려고 그러나, 히나타는 카게야마의 손가락이 향하는 곳을 보았다. 늘 먹는 우유 혹은 요구르트 쪽이었다. 카게야마는 검지와 중지를 쭉 펴고 버튼을 동시에 눌렀는데, 오늘은 우유 당첨이었다. 나도 오늘은 저거 꼭 해봐야지.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것이 귀찮을 때 선택하는 방법이라고 카게야마가 말해줬다. 히나타도 고민하기 귀찮으니 동전을 넣고 카게야마처럼 검지와 중지로 우유 요구르트 버튼을 동시에 눌렀다. 덜커덕. 히나타는 요구르트가 당첨되었다. 똑같이 우유와 요구르트를 동시에 눌렀는데 정작 나온 건 다르다니 참 신기하다고 히나타와 카게야마는 생각했다. 카게야마는 왼손으로, 히나타는 오른손으로 써서 중지쪽 버튼이 눌렸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셈이었다.

히나타와 카게야마는 나란히 계단에 앉아 각자 가져온 점심을 펼쳤다. 히나타는 매번 메뉴가 달라졌지만 카게야마는 늘 똑같이 오니기리였다. 지겹지도 않냐고 물어봤을 때 안 지겹다고 했었다. 히나타는 혀를 차며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반쯤 식은 도시락이 모습을 드러냈다. 카게야마의 눈이 빛나는 것 같아 히나타가 숟가락을 건네주었다. 오늘 엄마에게서 도시락 메뉴에 반숙계란이 있다는 이야길 듣고 카게야마가 좋아하는 거라고 들었던 기억이 있는 것 같아 두 개를 싸왔다.

 

하나는 네 거야.”

 

카게야마가 상기된 얼굴로 반숙계란을 도시락 뚜껑에 덜어갔다. 오니기리를 한입 베어 물고 숟가락으로 계란을 조심스럽게 먹는 모습이 보였다. 괜히 흐뭇해지네. 히나타는 얼마 전 왜 점심으로 오니기리만 싸오냐고 던졌던 질문을 떠올렸다. 카게야마는 너무 당연하게 말했다.

 

부모님은 맞벌이로 바쁘셔서.’

 

신경 안 쓰려고 했는데, 분명 그러려고 했는데 처음 나눠준 소시지를 받아먹을 때의 카게야마가 지었던 표정이 꽤 기뻐 보였어서 완전히 무시해버릴 수가 없었다. 어차피 매일 싸오는 도시락, 가끔은 평소보다 양을 많이 가져와서 나쁠 것은 없었다.

히나타는 요구르트에 빨대를 꽂고 쪽쪽 빨아 마셨다. 카게야마도 우유에 빨대를 꽂고 쪽쪽 빨아 마셨다. 히나타는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카게야마 숟가락에 얹어주었다. 냠 반찬을 입에 넣은 카게야마가 우물우물거렸다. 밥도 좀 더 퍼서 도시락 뚜껑에 얹어주니 카게야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괜히 어미새가 된 기분이라 히나타는 흐흐 웃으며 말했다.

 

아까 잡아줘서 고마웠다.”

아침에?”

.”

 

카게야마가 반숙계란의 효과인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히나타는 그 기세를 몰아 카게야마 옆에 놓인 우유를 슬쩍 노렸다. 요구르트가 있긴 하지만,

 

나 저거 한 모금만.”

 

이왕 다르게 뽑은 거 좀 나눠 마시면 좋잖아? 히나타의 속뜻에 동감했는지 카게야마가 우유를 선뜻 내주었다. 히나타도 요구르트를 카게야마에게 내민 뒤 사이좋게 나눠 마셨다.

 

점심을 사이좋게 나눠먹고 히나타는 체육관으로 향했다. 손에 들린 빈 도시락통에서 짤랑짤랑 수저 소리만이 들렸다. 통통하게 오른 배를 문지르며 카게야마와 체육관에 도착한 히나타는 타케다 선생이 심각하게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꽃무늬 노란 메모지에 적힌 번호들을 보느라 그들이 다가가는 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슬쩍 고개를 빼고 확인하자 번호 몇 개가 선으로 북북 그어져 있었다. 히나타가 물었다.

 

선생님, 점심 드셨어요?”

.”

 

티케다 선생이 얼른 메모지를 숨겼다.

 

. 그럼요. 두 사람도 점심 먹었나요?”

.”

점심 먹자마자 연습이라니 열심이네요. 나도 어서 힘내서 내 일을 해야 할 텐데……

 

시무룩하게 중얼거린 타케다 선생이 곧 고개를 도리질 치며 카게야마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히나타에게 웃어 보인 그가 체육관을 다시 빠져나갔다. 동시에 고개를 갸웃한 히나타와 카게야마가 대화했다.

 

타케다 선생님 메모지에 전화번호 많이 적혀 있던데. 무슨 번호일까?”

연습 상대 부탁하는 번호겠지.”

그걸 어떻게 알아?”

번호 옆에 학교 이름 써져 있었잖아.”

 

키가 커서 그런가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짧은 시간에 곧잘 본 모양이었다. 히나타가 유심히 본 건 번호 위에 찍찍 취소선이 그어져 있던 것뿐이라 아마 연습 상대 섭외가 난항을 겪고 있나보다 생각할 뿐이었다. 곧 두 사람은 다가온 시미즈를 알아차리고 꾸벅 인사했다.

 

점심은 먹었니?”

. 아침에 못 도와드려서 죄송해요. 다음주부턴 도울 수 있어요.”

괜찮아. 별일 없었어. , 히나타.”

?”

내일 말이야.”

 

내일은 토요일이었다. 토요일에 원칙적으로 수업은 없었지만, 배구부는 부활동이 있었다. 주말인 것을 배려해 점심이 지난 시간에 집합하게 되어 있었지만 그나마 이것도 학기 초반이라 쉬엄쉬엄 했던 거고 이제 곧 인터하이 예선이 시작될 예정인 데다가 합숙도 시작되니 다음주부터는 더 이른 시간에 모이게 될 터였다. 히나타는 시미즈의 이어지는 말을 들었다.

 

내일오전에 시간 돼?”

? 일 없어요. 괜찮아요.”

배구부 비품을 좀 사야 하거든너도 익혀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 당연하죠!”

짐이 많을 것 같은데괜찮으면 카게야마 너도 도와줄래?”

.”

 

카게야마도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시미즈는 작게 고맙다고 말한 뒤 내일 만날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었다. 시미즈가 창고 쪽으로 사라지자마자 히나타는 카게야마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찌르며 말했다.

 

웬일이냐. 네가 좋은 일도 하고.”

……뭐야?”

 

카게야마가 히나타의 머리를 잡으려 팔을 뻗었다. 흐익! 간발의 차이로 피한 히나타가 메롱 하고 혀를 내밀어 그를 약 올린 뒤 시미즈를 따라 창고로 쏙 들어가 버렸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카게야마는 코트에서 이미 연습 중이었던 2학년 무리로 다가가 토스를 올려도 괜찮겠냐고 정중히 물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수업이 끝나고, 다시 체육관으로 향하고, 모든 부활동을 마치고, 히나타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탈의실 근처에 세워둔 자전거를 끌고 왔다. 천천히 걸어 교문을 빠져나오는 동안 정신을 차려보니 옆에는 카게야마가, 앞에는 츠키시마와 야마구치가 있었다.

네 사람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사카노시타 상점에 들러 남은 만두를 싹쓸이했다. 돈은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츠키시마를 제외한 야마구치와 히나타와 카게야마가 N분의 1을 해서 냈다. 정작 별로 만두를 먹고 싶어 하지 않았던 츠키시마가 계산에서 제외되고 공짜로 만두를 먹게 되자 히나타와 카게야마는 억울해 했다. 부활동 이야기, 수업 이야기 등등 사소한 대화를 나누며 한참 걸어가던 중 야마구치는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맞다, 카게야마. 뭐 물어봐도 돼?”

뭔데.”

현 내 최강은 시라토리자와인데 거긴 왜 안 갔어? 거기가 전국대회 8강에는 드는 강호 아닌가?”

 

카게야마 정도의 실력자가 왜 카라스노에 왔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배구로 가장 현 내에서 유명한 것은 시라토리자와였으니까. 아오바죠사이는 껄끄러운 사람들이 있다고 쳐도 카라스노를 선택한 것은 의외이기도 했다. 그동안 부원들끼리 했던 몇 번의 연습경기와 세이죠와의 연습 경기를 보며 히나타도 느꼈던 점이므로 귀를 쫑긋 세웠다.

 

떨어졌어. 추천 안 와서 일반전형으로 넣었는데 시험이 뭔 소린지 몰라서……

제왕님, 공부는 꽝인가봐.”

뭐야!”

뭐야?!”

 

시라토리자와는 히나타도 떨어진 곳이니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츠키시마의 공부 못한다는 말에 찔려 카게야마와 동시에 화를 냈다. 츠키시마는 슬며시 비웃음이 역력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히나타 너도 떨어졌어?”

, 그럴 수도 있지!”

맞아, 그럴 수도 있지!”

 

처음으로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히나타와 카게야마가 마주보았다. 그 사이를 파고드는 야마구치의 질문이 있었다.

 

카라스노는 그럼 왜 온 거야?”

은퇴한 우카이 전 감독이 돌아온다는 말이 있어서.”

 

그랬나? 히나타는 별 소식을 듣지 못했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최근에 또 쓰러지셔서 당분간은 복귀 계획이 없다고 하더라고.”

. 아쉽게 됐네.”

 

야마구치가 이번엔 히나타의 대답을 듣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히나타는? 히나타도 1지망이 카라스노가 아니었던 거네?”

 

만두를 우물거리던 히나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카라스노는 별로 안 오고 싶었거든.”

?”

 

말해도 되려나? 어차피 카게야마는 알고 있는 얘기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카라스노 배구부였어서.”

……에엑?!”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 야마구치가 놀란 목소리를 냈고, 츠키시마도 슬쩍 눈썹을 치켜 올렸다.

 

, 좋아하는 사람!?”

. 정확히 말하자면 응원하던 사람이라고 해야 되나? 그래도 좋아하는 건 맞으니까?”

좋아하던 사람이 카라스노 배구부였는데 왜 안 오려고 했어?”

그 사람이 얼마 안 지나서 배구를 못 하게 됐거든. 그게 너무 슬퍼서, 여기 오면 자꾸 생각날 것 같았어.”

……의외로 순정파잖아?”

 

츠키시마가 얄밉게 이죽거렸다. 야마구치는 얼떨떨하게 중얼거렸다.

 

히나타 입에서 좋아한다는 말이 나올 줄이야…… 왠지 놀라운걸.”

 

응원의 뜻이 포함된 좋아한다를 왠지 한쪽으로 치우쳐 생각하는 것 같은 야마구치의 감상에 토를 달고 싶었지만 귀찮아진 히나타는 만두나 먹기로 했다. 그 귀찮음을 어떻게 해석한 것인지 츠키시마가 한껏 입꼬리를 올리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카게야마를 공격했다.

 

어이 제왕, 울겠어? 히나타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라이벌인 셈인가?”

쓸데없는 소리.”

 

츠키시마의 말에 카게야마가 인상을 팍 구기며 그를 노려보았다. 히나타는 만두를 먹으며 말했다.

 

어쨌든, 그래서 시라토리자와랑아오바죠사이랑카라스노 썼는데 결국 카라스노 빼고 다 떨어졌어.”

……아오바죠사이도 떨어질 정도면 공부 얼마나 못하는 거냐 너.”

, ! 1년 동안 코피 터져가면서 공부해서 맞춘 거거든?”

“2년은 놀고?”

 

츠키시마가 비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진학반인 4반에 속한 그에게 성적 이야기로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복수의 일념을 다시금 불태우며 남은 만두를 살폈다. 사카노시타 상점에서 몽땅 쓸어온 만두는 봉지 안에 이제 딱 두 개만 남아 있었다. 야마구치가 긴 팔로 봉지 안에 든 만두를 하나 가져갔다. 히나타도 마지막으로 남은 만두 하나를 왕 물었다. 그런데 카게야마가 손가락으로 히나타를 쿡 찔렀다.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이 츠키시마와 야마구치를 가리켰다.

우물우물 만두를 먹으며 의아하게 고개를 돌리자 야마구치가 만두를 반으로 갈라 츠키시마에게 내밀고 있었다. 사이좋은 모습이었다. 눈이 가늘어진 히나타가 절반 남은 만두를 보았다. 슥 그의 눈치를 살피자 카게야마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않고 있는 게 보여서 어쩔 수 없이 그의 입에 남은 만두 반쪽을 넣어주었다. 카게야마는 기다렸다는 듯 냉큼 입을 벌려 만두를 우물거렸다. 히나타가 아쉬워하며 빈 봉투를 깔짝깔짝 접는데 놀란 목소리의 야마구치가 말했다.

 

우와…… 완전 자각 없어……

?”

……?”

 

히나타와 카게야마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 야마구치를 보았다. 야마구치는 아니야.”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츠키시마는 찡그린 눈으로 둘을 번갈아 훑었다. 싱겁다고 생각한 히나타가 카게야마의 팔을 툭 치며 말했다.

 

이거 꼭 기억해라. 내가 나눠준 거.”

당연히 나눠야 되는 거잖아, 멍청아.”

뭐야? 사람이 기껏 나눠줬더니! 뱉어! 빨리 뱉어!”

! 뭐하, , 멍청!”

 

히나타가 거의 매달리듯 멱살을 잡자 카게야마가 켁켁거렸다. 야마구치가 기겁해 히나타를 말렸고, 츠키시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주말인 덕택에 평일보다 늦게 일어날 수 있었던 히나타는 식탁에 앉은 채로 길게 하품을 했다. 한참 전에 일어나 아침을 차려준 엄마가 어서 정신 차리고 밥 먹으라고 잔소리를 했다. 히나타는 눈을 반만 뜨고선 어기적어기적 숟가락을 들고 야금야금 밥을 먹기 시작했다. 누나보다 조금 늦게 일어난 남동생 나츠가 졸린 눈을 부비며 다가오기에 반쯤 감긴 눈으로도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맞은편에 앉은 나츠와, 옆에 앉은 엄마와 나란히 밥을 먹는 도중 엄마가 물었다.

 

점심 도시락은 없어도 돼?”

아마? 밖에서 먹고 갈 것 같은데……

 

아니면 장 보고 돌아가는 길에 만두 사먹고 들어가면 되니까……. 히나타는 한참 밥을 먹으며 겨우겨우 정신을 차렸다. 잠시 물을 꼴깍꼴깍 마실 때쯤에는 완전히 잠이 깨어 있었다. 다시 밥을 먹고 반찬을 집어 우물우물 씹은 히나타는 시계를 확인했다. 슬슬 나가봐야 하는 시간이었다. 히나타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전히 밥을 먹는 중인 나츠의 머리를 쓰다듬고서는 다시 방으로 뛰어가 양치를 시작했다. 치카치카 푸카푸카 양치를 마친 뒤 후드티와 반바지로 골라 입은 히나타가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자전거를 타고 씽씽 달리며 히나타는 시미즈와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학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번화가였다. 사람이 꽤 있었기 때문에 거의 다 와서는 자전거에서 내린 뒤 핸들을 잡고 걸었다. 약속장소인 커다란 나무 아래로 향하는데 난데없이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히나타는 시미즈의 이름이 뜨는 바람에 깜짝 놀라며 전화를 받았다.

 

네 시미즈상!”

히나타? 미안해조금 늦을 것 같아.’

? 무슨 일 있으세요?”

어머니가 감기 기운이 있어서하다 보니 집안일이 많네.’

앗 그럼 제가 살게요. 사야 할 목록 메일로 보내주시겠어요?”

. 미안해.’

아니에요! 카게야마도 있는걸요.”

 

마침 저 멀리서 트레이닝복 바지 주머니에 한손을 찔러 넣고 뚜벅뚜벅 걸어오는 카게야마가 보였다. 그래도 약속시간은 칼같이 지키는 모양이라 다행이었다. 운이 나빴다면 혼자 장을 보게 될 뻔했으니 말이다.

 

이따 보자.’

! 맡겨주세요!”

 

히나타가 힘차게 대답했다. 시미즈가 옆에서 봐줄 수 없는, 히나타가 진짜 처음으로 혼자 하는 매니저 일이었다. 긴장되기도 하고 두근거리기도 하고, 실수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혼자 기합을 넣는데 카게야마가 자전거와 히나타를 번갈아 보더니 물었다.

 

혼자야?”

. 방금 전화 왔는데 시미즈상 어머니가 아프셔서 집안일을 해야 되나봐.”

그럼?”

우리가 먼저 사고 있어야지. 짐은 자전거에 싣고 가면 되니까…… 기다려봐. 시미즈상이 사야 할 거 보내준다고 했는데.”

 

카게야마가 어쩐지 불만스러운 눈으로 히나타의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곧장 도착한 시미즈의 메일을 고개 숙여 확인하는 히나타는 모를 일이었지만 말이다. 꼼꼼한 성격의 시미즈답게 사야할 것들의 목록과, 그것들을 주로 어디서 사는지, 어느 정도를 사야 하는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대로 그냥 그대로 구입하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일단 첫 번째로 드링크 분말을 사야 하는데……

 

“?!”

 

히나타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중 바로 옆에 카게야마의 얼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카게야마도 히나타가 받은 메일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허리를 숙인 것 같았지만 너무 가까웠다. 보고 싶으면 말을 하지……. 히나타는 카게야마에게 핸드폰을 쥐어줬다. 카게야마는 목록을 쭉 읽어 내린 뒤 다시 히나타에게 돌려주었다.

 

일단 드링크 분말 사러 가자.”

그래.”

어딘지 알아?”

알아. 중학교 때도 많이 샀으니까.”

오옷.”

 

히나타는 카게야마의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중학생 때 매니저 있지 않았어?”

없었는데?”

너 키타가와 제1중 아니야? 거기 배구로 유명한 곳인데 매니저 없나?”

딱히. 필요한 건 1학년들이나 벤치멤버들 시켰어.”

아아……

 

확실히 운동으로 유명하면 유명할수록 규율이 엄하고 빡세니까. 게다가 키타가와 제1중이면 배구부 인원도 카라스노 현재 인원보다 훨씬 많을 테니 주전에서 밀려난 벤치 선수들이 많아 굳이 매니저를 뽑을 필요가 없을 것 같기도 했다. 히나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카게야마 넌 언제 주전 됐는데?”

“2학년 때부터.”

? 1학년이 아니라?”

“1학년 땐 오이카와상이 있었으니까.”

 

. 히나타는 납득했다. 그러고 보니 오이카와의 서브나 블로킹을 보고 카게야마가 배웠다고 했다. 1학년 때는 여러 포지션을 경험해보고 실험해보는 의미가 큰 것도 있겠지만, 오이카와 정도의 실력자라면 아무리 카게야마라고 해도 그를 밀고 주전 자리를 꿰어 찰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 오이카와와 두 학년이 차이나지 않았다면 2학년 때도 카게야마가 후보였을까?

히나타는 고개를 돌려 카게야마를 보았다. 오이카와를 언급하는 카게야마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히나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차피 의미없는 가정이었다. 카게야마는 카라스노의 1학년이고 오이카와는 아오바죠사이의 3학년 세터인 것이 지금 상황이었다. 공식전에서 만난다면 그저 치열하게 경쟁할 뿐인.

그때 갑자기 히나타의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으악 깜짝이야. 얼른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시미즈라고 생각해 발신인을 확인하지도 않고 전화를 받았지만, 그게 화근이었다.

 

치비쨩?’

.”

 

딱 첫마디를 듣는 순간 히나타는 눈을 부릅뜨고 자리에 멈췄다. 카게야마도 걸음을 멈추고 히나타를 보았다.

 

왜 대답이 없지? 여보세요? 치비쨩?’

 

히나타를 치비쨩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딱 한 사람 밖에 없었다. 히나타의 머릿속이 잘생긴 얼굴의 오이카와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에게 번호를 거의 갈취당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아오바죠사이와의 연습경기 이후 연락이 없어 생각지도 못한 셈이었다. 히나타는 잠시 그날 연습경기가 끝난 후를 떠올렸다.

 

연습경기가 끝나자마자 히나타는 부원들이 마시고 남은 드링크 병들을 정리하고 시미즈는 남은 수건들을 챙겼었다. 열심히 기록한 종이와 펜도 챙기고 굴러다니는 카라스노 공도 챙긴 두 사람이 부원들을 따라 체육관을 나설 때였다. 무거운 가방을 끙끙대며 지고 가면서도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던 히나타의 발걸음이 멈췄다. 시미즈가 걸음을 멈췄기 때문이었다.

의아해하며 고개를 든 히나타는 시미즈의 앞을 가로막은 한 남자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 대왕님! 히나타는 재빨리 저기 앞서가는 부원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불러야 하나? 하지만 뭐 때문에 길을 막은 건지도 모르는걸. 히나타가 고민할 때 오이카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혼자 매니저 하는 모습 보면서 안쓰러웠는데 새로 매니저 들어왔나 봐. 다행이야.’

 

허억! 히나타는 본능적으로 끼어서는 안 될 자리라는 것을 깨닫고 한걸음 물러서서 둘을 관찰했다. 히니타의 생각처럼 오이카와가 위협을 가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히나타의 생각이 맞다면 이건 대왕님의 여신님을 향한 작업이었다!

그보다, 친절한데? 성격 별로 안 나쁜 것 같은데? 경기 중 카게야마가 성격이 더럽다고 츠키시마와 비교하면서까지 언급했던 말을 떠올리자 히나타는 또다시 혼란에 빠졌다.

 

이제 쉬엄쉬엄 인수인계하면 시간도 많을 테니 심심할 때 나랑 연락하는 게 어때?’

 

오이카와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시미즈에게 내밀었다. 그 과정이 매우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히나타는 당연히 시미즈가 번호를 찍을 줄 알았다.

 

미안.’

 

시미즈는 딱 한 마디만 남긴 채 오이카와를 지나쳐갔다. 히나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중얼거렸다……

 

, 여신님한테 대왕님이 차였……

 

!! 그걸 소리 내서 말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히나타는 뻣뻣하게 고개를 틀어 오이카와를 보았다. , 들었을까?

 

대왕? 대왕님이 날 말하는 거야 치비쨩?’

??!’

치비쨩에게는 미안하지만 오이카와상은 차인 게 아니야. 시미즈쨩은 그저 부끄러운 것뿐이지.’

 

3인칭으로 자길 불렀…… 그보다 별로 그렇게 안 보였……

 

그런가요?’

 

카게야마보다 더한 살인 서브를 내리꽂는 대왕님은 키도 위압감도 컸다. 그게 무서워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말을 해주었지만 별로 탐탁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네가 토비오쨩의……

히나타-’

 

오이카와는 눈을 살짝 가늘게 뜨더니 히나타를 살폈다. 그와 동시에 저 멀리서 시미즈가 따라오지 않는 히나타를 불렀다. 오이카와에게 아직 잡혀있는 모습을 본 시미즈가 빠른 걸음으로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본 히나타가 곤란하게 오이카와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오이카와는 한 번 웃더니 바람처럼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핸드폰을 빼앗았다. 아까 시간 확인하려 잠깐 꺼냈던 핸드폰을 왜 다시 가방에 넣지 않았는지 히나타는 후회했다. 오이카와는 빠르게 그의 번호를 눌러 저장해서야 다시 히나타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오이카와는 발랄하게 웃고는 있었지만, 카게야마가 한 말을 히나타는 그 순간 이해했다. 성격…… 진짜 엄청 나쁜 사람이라고.

 

. 들려요. 대왕님이 어쩐 일이세요?”

 

대왕님이라는 호칭에 단번에 상대를 파악한 카게야마의 눈썹이 한 번 꿈틀거렸다. 그게 꼭 네가 왜 오이카와상과 통화를 하는 거냐로 보여 히나타는 필사적인 몸짓으로 난 결백하다고 주장했다. 카게아마가 알아들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오이카와상 서운하게 할 거야? 반갑게 인사는 못해줄망정 왜 전화했냐니.’

……그럴 사이가 아니지 않아요?”

 

카게야마가 한걸음 다가왔다. 오이카와의 전화 내용을 같이 들으려는 것 같았다. 히나타가 카게야마 쪽으로 핸드폰을 조금 돌린 뒤 무전기에 대고 말하듯 답하자 오이카와가 웃으며 말했다.

 

섭섭하게 왜 이래? 나는 치비쨩의 뜨거운 눈빛을 아직 기억하는걸~’

 

스윽. 카게야마가 히나타를 보자 히나타는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슨 소리 하시는 겁니까아!”

후후. 그건 그렇고, 오늘 카라스노 연습 있나?’

.”

몇 시부턴데?’

그건 알아서 뭐……

 

하게요, 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카게야마가 히나타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았다. 전화가 걸려 있는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카게야마의 모습에, 당황한 히나타가 핸드폰을 든 카게야마의 손목을 잡으며 물었다.

 

카게야마, 뭐하려고?!”

 

그때 전화 너머로 오이카와가 왁자하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무릎을 치면서 폭소하는 수준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소리가 대단했다.

 

카게야마라니? 토비오쨩?’

 

젠장. 들렸나? 히나타가 인상을 찡그렸다.

 

와아, 토비오쨩 치비쨩이랑 같이 있던 거야? 벌써 연습인 건가? 공 튀기는 소리는 안 나는데. 시도 때도 없이 붙어있고 역시 두 사람-’

연습시간은 왜 물어보십니까?”

 

카게야마가 직접 핸드폰에 대고 물었다. 오이카와는 너무나도 당당하게 말했다.

 

? 정찰이랄까? 그러는 토비오쨩은 왜 전화받고 있는 거야? 오이카와상은 치비쨩한테 전화한 거라구. 토비오쨩 목소리 듣기 싫어.’

 

카게야마 성격도 엔간히 나쁘지만 오이카와는 더한 게 분명했다. 히나타는 두 사람의 사이가 나쁘다면 카게야마쪽의 이유는 오이카와의 이런 성격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카게야마의 표정이 와그작 부서지는 것을 본 히나타가 다시 핸드폰을 빼앗았다.

 

하여튼 저희 지금 바쁩니다!”

헤에? 둘이 뭐 하는데 바빠?’

끊을게요.”

안 돼!’

그럼 빨리 용건 말하세요.”

하아토비오쨩의 방해 없이 단 둘이 대화해야 하는데

 

히나타와 카게야마의 눈이 동시에 식었다. 히나타가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용케 그것을 눈치 챈 오이카와가 진중한 목소리로 돌변해 말했다.

 

중요하게 말해줄 게 있어서 전화했어.’

뭔데요?”

 

오이카와는 잠시 침묵했다. 히나타는 어느덧 진지하게 깔린 전화 너머의 분위기를 읽고 잠시 긴장했다. 무슨 이야기지? 배구부에 대한 이야기일까? 인터하이 예선에 대한 이야기? 어느 쪽이든 진지하게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

 

토비오쨩이 중학교 때 얼마나 난봉꾼이었는지!’

…….”

중학교 때 울린 여자들이 몇인지!’

…….”

토비오쨩이 얼마나 나쁜 남자인지!!!’

 

저기 대왕님……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은데요. 핸드폰을 빼앗아들려는 카게야마의 손을 겨우겨우 꽉 잡는 것으로 사수한 히나타가 고개를 돌리며 오이카와에게 말했다.

 

치비쨩이 토비오쨩 뭘 보고 사귀는 진 모르겠지만……

사귀는 거 아니예요! 그리고 쓸데없는 걸로 전화하지 마세요!! 대왕님이면 대왕님답게 구시라고요!”

 

히나타가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한순간이나마 훌륭한 연습 경기를 치러낸 상대팀 주장으로서 진심어린 충고를 해줄 줄 알았던 스스로가 바보 같았다.

 

……멍청아.”

 

번호를 지워 말어. 씩씩대며 핸드폰를 노려보는데 카게야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게야마가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 내려가니 손이 보였다. 히나타의 손이 카게야마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아까 핸드폰을 빼앗으려는 손을 피하려고 잡았는데 어쩌다보니 계속 잡고 있던 모양이었다. 히나타는 얼른 카게야마의 손을 놓았다. 그러나 내려가는 히나타의 손을, 카게야마가 아무렇지 않게 다시 붙잡았다.

 

잠깐.”

“?!”

 

카게야마의 커다란 오른손이 히나타의 손바닥과 맞닿았다. 카게야마는 닿은 두 손을 집중해서 관찰했다. 뭐하는 거지? 의아했지만 그렇다고 그 행동을 막을 생각은 없었다. 기분이 나쁘지 않기도 했고, 어쩐지 심장이 간질간질거렸다. 카게야마가 험상궂은 얼굴을 한 주제에 어렵게 입을 열어 솔직하게 말할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손 작아.”

 

카게야마가 자연스럽게 히나타와 손을 얽었다. 저절로 깍지 낀 것처럼 감싸자 손등 크기부터 차이가 났다. 카게야마의 손가락은 히나타의 손등을 거의 전부 덮을 정도로 길었다.

 

키도 차이 나는데 당연하지.”

쪼끄매가지고.”

 

카게야마가 중얼거리며 손을 놓았다. 투덜거리는 목소리를 한 카게야마가 히나타의 머리 꼭대기를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오이카와상한테 그런 호칭으로 불리는 거 아니야, 멍청아.”

나 안 작다니까? 그쪽이 심하게 큰 거야.”

 

어째 카게야마보다도 더 크니 160cm도 안 되는 히나타로서는 그 말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길이 없었다.

 

그리고 너.”

 

카게야마의 얼굴이 무섭게 변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거다. 그의 눈이 히나타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보았다. 시미즈의 메일을 확인할 때에도, 오이카와의 전화를 받을 때와 유사한 표정이었다. 히나타가 의아해할 때 카게야마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

……?”

키요코상오이카와상 말고

……??”

또 누구 번호 있냐?”

?”

 

히나타는 기억을 더듬었다.

 

가족이랑중학교 친구들이랑반 친구들3학년 선배들2학년 선배들타케다 선생님이랑야마구치랑츠키시마랑기타 등등?”

 

카게야마는 잠시 입을 꾹 다물더니 말했다.

 

나는?”

?”

 

가만 보니 카게야마 번호는 없었다.

 

너 핸드폰도 있었어?”

 

카게야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보여주자 히나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너 일부러 핸드폰도 안 만드는 줄 알았지 뭐야.”

? 내가 왜?”

너 연습광이잖아. 방해 되니까?”

별로.”

? 연습할 때 핸드폰 막 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딩동딩동 메일 오면 귀찮아하는 스타일 아니야?”

……?”

 

히나타는 무슨 말인지 모르는 카게야마를 보자 잠시 눈물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미안…… 그럴 일이 없구나…… 너 점심도 혼자 먹는 거 이제 떠올랐어……. 히나타는 카게야마의 핸드폰에 자신의 번호를 입력해주며 말했다.

 

내가 많이 연락해주마걱정 마.”

? 그래.”

 

카게야마의 핸드폰에서 전화를 걸어 그의 번호를 남긴 히나타는 곧 등을 두드리며 힘차게 말했다.

 

, 이제 진짜 장 보러 가자!”

 

카게야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서 나갔다. 히나타는 카게야마의 번호를 저장하며 그 뒤를 쫓아갔다.

히나타와 카게야마는 시미즈가 보내준 목록을 따라 차근차근 장을 봤다. 카게야마가 데려간 곳에서 스포츠 드링크 분말도 샀고, 필요한 종이와 볼펜도 구입한 다음, 새 수건 몇 개와 세제도 사고, 세척제 등등 사소하게 필요한 것들을 샀다. 동선이 꽤 얽혀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바쁘게 돌아다녔다. 히나타의 자전거에 차곡차곡 쌓인 짐들이 한가득이었고, 어느새 자전거를 이끄는 사람은 히나타가 아니라 카게야마가 되어 있었다.

대충 필요한 것들을 다 사고 보니 딱 점심시간이었다. 핸드폰을 열고 다시 메일을 확인하니 빠짐없이 다 산 것 같았다. 카게야마가 나온 김에 사겠다고 한 무릎보호대까지 샀는데도 시간이 좀 남았다. 뭔가 잊고 있는 것 같은데……. 고심하던 히나타는 문득 시미즈가 지금이라도 나오려고 하지 않을까 생각되어 걱정이 되었다. 볼일은 다 끝났는데 뒤늦게 나오면 괜한 헛걸음이었으니 말이다. 히나타는 재빨리 시미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미즈는 곧바로 전화를 받으며 지금 나가려는 참이라고 했다. 히나타는 더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생각하며 재빨리 그녀를 말렸다. 필요한 건 다 샀고 시간이 남았을 정도라고 하자 사과가 돌아왔다. 정말 괜찮다고, 이따 학교에서 뵙겠다고 한 뒤 통화를 마친 히나타는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카게야마. 배 안 고파?”

 

시간을 확인하니 한 시간 정도 남았다. 학교까지는 걸어서 1020분 정도 걸릴 것 같으니 그 사이에 밥을 먹어도 될 것 같았다. 카게야마도 그런 눈치라, 히나타는 근처 식당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카게야마가 먼저 성큼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본 히나타가 소리 없이 웃었다.

주인에게 양해를 구해 자전거를 식당 안쪽에 세워두고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머리를 맞대고 메뉴판을 보자 여러 가지가 있었다.

 

뭐 좋아해?”

 

히나타가 묻자 카게야마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반숙 계란 얹은 돼지고기 카레.”

 

그냥 돼지고기 카레는 있어도 반숙 계란 얹은돼지고기 카레는 없었다. 반숙 계란 진짜 좋아하네. 히나타가 속으로 생각한 뒤 메뉴를 고를 때 카게야마가 물었다.

 

너는?”

난 간장 계란밥.”

멍청이가 계란 맛있는 건 아네.”

 

두 사람은 무언의 공감을 하며 각자 먹을 것을 골랐다.

 

난 돼지고기 카레.”

나는 오므라이스.”

 

두 사람이 각자 주문을 하고 장볼 때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히나타의 핸드폰이 울렸다. 또 누구지? 히나타가 발신인을 확인하다가 얼굴이 환해졌다. 히나타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이즈미!!”

 

카게야마가 히나타를 보았다. 히나타는 눈을 빛내며 반갑게 이즈미를 불렀다. 그녀의 중학교 친구였다. 속상한 일이 있으면 자주 전화해 투정을 부리는 게 일상이어서 그런지 통화는 매우 자연스러웠다.

 

무슨 일이야? 먼저 전화를 다 하고?”

너 식당 들어가 있지?’

. 어떻게 알았어?”

창 밖 봐봐.’

 

히나타가 창가 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카게야마의 시선도 따라붙었다. 창 밖에서는 중학교 때보다 키가 훌쩍 큰 이즈미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얼굴에 화색이 돈 히나타가 카게야마에게 잠깐만.”이라고 말한 뒤 식당 밖으로 나갔다. 카게야마는 테이블 위에 턱을 괴고 창 밖을 지켜보았다. 잠시 식당 밖으로 나간 히나타가 이즈미라는 남학생 앞으로 폴짝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보는 건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이즈미?”

. 히나타도?”

 

히나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차이가 별로 안 났던 것 같은데 키가 조금 더 커져 있었다. 가까이 붙어 서서 키를 재보자 확실히 그게 더 실감이 나 히나타가 감탄했다.

 

키 더 컸구나. 비법이 뭐야?”

 

어깨 한번 쿡 배 한 번 쿡 누르자 이즈미가 찔린 부분을 가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넌 여전하구나.”

키 얘기야, 뭐야?”

 

대답을 하지 않고 딴청을 부리던 이즈미가 곁눈질로 식당 안을 보았다. 히나타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카게야마가 턱을 괴고 지켜보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허억.”

 

상대의 인상이 험악해 겁에 질린 이즈미가 히나타에게 속사포처럼 물었다.

 

, 저기 안에 같이 있는 애는 누구야? 남자친구?”

에엑? 아니야.”

? 남자친구가 아니라면 왜 나를 저렇게 노려보고 있는데?”

 

히나타가 식당 안을 보았다. 평상시보다 좀 험악하긴 한가? 확실히 분위기를 잡고 있으면 인상이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저게 진짜 험악하게 얼굴 구길 때보단 나은 모습인데 오해를 산 모양이었다. 딱히 화를 낼 상황도 아니었고. 히나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같이 배구부 하는 애야.”

배구? 너 배구부 들었어?”

 

히나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다보니까. 꽤 의외라는 눈으로 쳐다보며 잠시 말이 없던 이즈미가 고개를 돌려 식당 안을 쳐다보았지만 얼마 보지 못하고 다시 휙 고개를 돌렸다.

 

역시 무서워……

뭐가?”

아니야. , 일단 배구부 든 거 열심히 해. 너네 음식 나온 것 같은데 들어가 봐.”

? 그러네. 잘 가.”

. 연락할게.”

 

히나타가 이즈미에게 인사한 뒤 식당 안으로 돌아왔다. 히나타가 들어올 때까지 수저를 들지 않고 있던 카게야마가 그제야 카레를 먹기 시작했다.

 

미안. 중학교 때 친구 만나서.”

중학교 때 친구? 남자애던데.”

워낙 남자애들이랑 뛰어다니면서 놀아서. 이즈미는 농구 했어.”

농구?”

 

불만스러운 얼굴을 한 카게야마가 중얼거렸다.

 

배구가 더 나은데.”

 

너한텐 뭔들 배구가 더 낫지 않으리. 히나타가 오므라이스 위에 케찹을 뿌리려다가 카게야마의 말에 행동을 멈췄다.

 

중학교 때 만난 앤데 아직도 연락하냐?”

당연하지. 친한 친구야. 내가 일방적으로 연락하긴 하지만.”

걔 좋아해?”

. 이즈미 착해.”

 

카게야마의 미간이 조금 찌푸려졌다.

 

좋아하는 게 뭐야?”

?”

넌 작은 거인도 좋아하고 저 중학교 친구도 좋아하잖아. 둘이 같은 거야?”

아마?”

 

자신 없이 대답한 히나타의 말에 카게야마는 우물우물 카레를 먹으며 무언가 심각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히나타는 고개를 갸웃했다. 카게야마가 원래 이렇게 호기심이 많았나? 배구에만 살고 배구에만 죽을 것 같은 녀석이라 그런지 조금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아무래도 중학교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는 사실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특히 카게야마는 중학교 때 친구라고 할 수 있는 배구부 부원들과 사이가 틀어져 버렸으니……. 히나타는 일부러 그 점을 내색하지 않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러는 너는 설명 좀 해보시지? 아까 대왕님이 말한 거 있잖아.”

?”

중학교 때 얼마나 난봉꾼이었다던가…… 중학교 때 울린 여자들이 몇이라던가…… 얼마나 나쁜 남자인지?”

 

오이카와가 했던 말을 똑같이 읊어주자 카게야마의 얼굴이 불쾌하게 변했다.

 

없는 말 한 거야.”

정말~? 카게야마군 알고 보니 바람둥이였던 거 아니야?”

아니야!”

근데 왜 대왕님이 난봉꾼이라고 했을까~”

멍청아!! 믿을 가치 없는 말이라니까?”

정말로?”

 

히나타가 키득 웃으며 케찹을 들었다. 케찹을 오므라이스 계란 위에 뿌리며 글자를 적었다.

 

난봉꾼

 

이 멍청이가!”

 

기어코 폭발한 카게야마가 히나타 손목을 잡아챈 뒤 다른 손으로 케찹을 빼앗았다. 그리고 난봉꾼이라는 글자 위로 케찹을 뿌려 알아볼 수 없게 만든 뒤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히나타가 억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나 케찹 이렇게 많이 안 뿌려!”

네가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그렇잖아!”

아니면 아닌 거지 왜 괴팍하게 굴어, 성질야마!!”

? 멍청아! 연애 한 번도 안 해본 사람한테 난봉꾼이라는데 가만히 있겠냐 그럼!”

 

뚝 말이 끊기고 잠깐 정적이 흐른 뒤 히나타가 푸하하 웃었다.

 

진짜? 한 번도? 단 한 번도?”

그래. 그러니까 이상한 말 쓰지 마.”

카게야마군은 중학교 때 연애 안 하고 뭐하셨대? 배구만 하셨나아~”

너는 했냐!?”

 

카게야마가 버럭 소리치자 히나타가 입을 합 닫았다. 거기서 카게야마는 히나타도 연애를 한 적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했다. 이상한 동질감에 한참 서로를 마주보던 히나타와 카게야마는, 문득 아직도 손목이 붙들려있고 또 붙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밥 먹을까.”

그래.”

 

고개 숙여 각자 음식을 먹는 동안 히나타가 말했다.

 

고백도 한 번도 못 받아봤어?”

그럭저럭.”

그럭저럭? 그게 어느 정돈데?”

한 달에 한두 번?”

 

뭐야, 이 자식 엄청 많이 받았잖아! 그런 주제에 많다는 자각도 없어! 고백이라곤 고작 일 년에 한 번 정도밖에 못 받아본 히나타는 울컥했다.

 

난봉꾼 맞잖아! 바람야마!!”

그게 왜 그렇게 돼, 멍청아!”

고백 그렇게 많이 받은 거면 난봉꾼이지!”

그쪽이 맘대로 고백하는 걸 어쩌라고?”

그게 더 재수 없어!!”

뭐야? 히나타 이 멍청이가!”

 

둘은 식당 주인의 제지가 있어서야 조용해졌다. 신경질적으로 밥을 퍼먹으며 히나타는 입을 삐죽였다. 평소라면 카레도 맛보려 나눠먹었을 텐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쁘다. 기분이 아아아아주 나빴다.

 

 

 

 

틱틱대고 투닥거리며 학교로 돌아온 히나타와 카게야마는 갑자기 웬 짐이 많냐고 묻는 타나카와 니시노야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시미즈는 일일이 부원들에게 무얼 할 거라고 언질하지 않는 편이라, 그녀에게 관심이 많은 두 사람이 궁금해 했기 때문이었다. 시미즈, 히나타, 카게야마가 부활동에 필요한 것들을 사러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시미즈가 일이 있어 나오지 못해 두 사람이 대신 사온 거라고 설명을 해주자 타나카와 니시노야의 눈에서 예고도 없이 눈물이 주륵 흘러 깜짝 놀랐다.

 

뭐라고? 키요코상 어머니가 아프셨다고?”

이런이런 변이 있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히나타와 카게야마 둘 다 굳었다가 어쩔 줄 몰라 허둥지둥 하고 있을 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스가와라가 혀를 찼다.

 

나도 연락 들었어. 시미즈가 걱정하던데 그래도 빼먹지 않고 잘 사왔나 보네.”

물론이죠!”

 

히나타가 자전거와 짐을 묶은 끈을 풀고 카게야마와 스가와라가 그것을 안으로 들였다. 타나카와 니시노야가 눈물을 훔치며 괴로워했다.

 

키요코상을 낳아주신 감사한 분께서 편찮으시다니!”

키요코상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하아이럴수가.”

아무래도…… 찾아가보는 게……

그렇지, ?”

노야상, 역시 같은 마음!”

둘 다 그만해.”

 

스가와라가 웃으며 두 사람을 한 대씩 쳤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막 들어서는 츠키시마와 야마구치를 반겼다.

 

제 시간에 왔네. 옷 갈아입고 와.”

 

츠키시마가 히나타와 카게야마를 보았다. 아직 둘 다 옷을 갈아입지 않은 상태였다. 스가와라가 그 둘에게도 말했다.

 

두 사람도 수고했어. 갈아입고 와.”

.”

무슨 일 있었습니까?”

 

츠키시마의 질문에 스가와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두 사람이 오늘 시미즈 대신 장 보고 왔거든. , 점심은 어떻게 했어?”

시간 남아서 먹고 왔어요!”

, 그건……

 

야마구치의 중얼거림에 히나타와 카게야마에게 시선이 쏠렸다. 동시에 니시노야의 눈이 크게 떠졌다.

 

잠깐그러게. 두 사람 오늘 오전에 쭉 같이 돌아다니고 밥까지 먹고

쇼핑하고 밥 먹은 거죠.”

이거 완전데이, !”

 

타나카의 입을 스가와라가 가차 없이 막았다. 의아해하기만 하는 두 사람에게 천사처럼 웃어 보인 그가 타나카의 귀를 잡아당기며 무언가를 속삭였다. 뭐라는 건지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단지 타나카의 눈동자가 히니타와 카게야마를 번갈아 쳐다본다는 것뿐이었다.

 

너희는 옷 갈아입고.”

 

다이치의 말에 1학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히나타와 카게야마는 체육관을 나서며 대화했다.

 

우리 뭐 잘못한 거 있나?”

다 너 때문이다, 멍청아.”

뭐야! 너 때문이면 몰라도 나는 왜?”

 

야마구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츠키시마도 혀를 쯧쯧 찼다.

 

 

 

 

 

1. 작은거인은 부상으로 이른 은퇴를 하고 히나타는 그것을 알고 있음. 작은거인 너무 좋아했던 히나타 카라스노 오기 싫어했다는 설정.

2. 카게히나 안 사귀는데 타학교에서까지 사귄다는 오해 단단히 받고 있음. 오이카와가 굳이 번호 알아내서 괴롭히는 이유.

 

안봐도 상관없는 이어지는 글 : http://byeoljari.tistory.com/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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