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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카게히나] 기밀 조사

별골짜기 2016. 2. 26. 15:40

카게히나

기밀 조사 - K1의 경우

 

 

1.

 

어두컴컴한 빌딩. 고요가 싸늘한 밤바람에 섞여 낙엽과 굴러다니는 밤. 쓸데없이 높은 건물의 꼭대기에서 보이는 풍경은 비싼 레스토랑의 창가 자리만큼 로맨틱한 값을 했다. 깊은 새벽이라 정체되지는 않았지만 빠른 속도로 쏘다니는 차와 아침까지 환히 켜져 있을 푸른 불빛들이 불 꺼진 회사 건물들과 어울려 그럴싸한 배경을 만들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인과 함께 달콤한 한 때를 보내기에는 제격인 시간이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러지 못하는 네 명이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두 명이긴 했지만.

옥상 구석, CCTV의 사각지대를 차지하고 앉은 츠키시마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경로를 설정하고 있었다. 안경 너머 눈빛은 귀찮고 짜증스러운 기운을 품고 있었지만 어느 때보다 매서웠다. 츠키시마가 앉은 자리와 가까운 옥상 가장자리 난간에서, 특수하게 제작된 줄을 근심스럽게 살피던 야마구치가 아래를 내려다보려 시도했지만 그의 고질병인 고소공포증으로 인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화면에 집중하면서도 그 모습은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츠키시마가 말했다.

 

걔넨 잘 내려가고 있으니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앉아 있어.”

미안하지만 나 때문에 히나타가 내려갔는걸.”

그러라고 있는 팀이야.”

 

싸늘한 말이었지만 뜻하는 바는 그리 냉정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히나타 더 좋아하는 거 못 봤어?”

 

잠입 후 기밀 조사임무. 사안이 사안인 만큼 21조로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중요한 작전이었다. 숙련된 요원들이라면 1인으로도 단독 수행이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이들은 갓 수습 딱지를 뗀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들이 모인 K1팀이었다. 직속 선배들인 K2팀과 K3팀이 맨 첫 임무만을 각각 한 번씩 봐주고 본인 팀들의 임무를 해결하는데 바빠 차근차근 임무의 수준을 높여가고 있는 단계를 밟고 있었다. 이번 임무도 그 과정 중의 하나였고.

문제는 츠키시마의 상황 판단을 바탕으로 이 임무를 수행할 2인은 임무만을 충실하게 수행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점에서 히나타는 혹시 모를 적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저격수로, 야마구치와 카게야마가 잠입해 들어가 기밀을 빼오는 역할을 하면 더 없이 좋았겠지만 그들의 컨트롤타워가 옥상에 자리 잡게 된 이상 고소공포증이 있는 야마구치가 줄을 타고 잠입하기에는 애로점이 있었다. 따라서 야마구치는 츠키시마와 후방 지원을 맡기로 하고, 자연스럽게 히나타와 카게야마가 잠입을 하게 되었다.

 

괜찮겠지?”

실패해도 상관없어.”

?”

그 바보들이 실패한다고 해도, 적어도 우린 살아남을 수 있잖아.”

 

……, 그런가? 아무렇지 않은 츠키시마의 말에 야마구치의 근심이 더욱 깊어졌다.

 

 

 

2.

 

으아아악!”

 

히나타가 나직하게 비명을 지르며 매달린 줄을 꼭 붙잡았다. 안전장비를 단단히 하고, 몇 번이고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야마구치에게 걱정 말라는 큰소리까지 뻥뻥 쳐놨는데 막상 허공에 덜렁덜렁거리는 그의 몸뚱아리를 보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수습기간 동안 수도 없이 연습하고 훈련하던 것처럼 허공에서 빌딩 벽을 딛고 천천히 뒷걸음질 치듯 내려가는데 디딤발이 잘못되어 잠시 균형을 잃었다. 옆에서 안정감 있게 내려가던 카게야마는 히나타의 비명을 듣고 무시무시한 표정이 되어 잔소리를 쏟아냈다.

 

히나타, 멍청이! 발 딛자마자 가볍게 떼란 말이야. 어영부영하다간 떨어진다고!”

나도 알아!! 너나 똑바로 하시지!”

뭐야? 나 정석대로 하고 있는 거 안 보여?”

차라리 츠키시마랑 내려올걸! 너랑 내려와서는!”

지금 뭐라고 했냐!”

내가 먼저 들어가서 코를 납작하게 해주마!”

허어? 누구 맘대로? 내가 먼저다!”

 

허공에 매달린 둘이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각 잡고 임무에 임하기 시작했다. 둘의 오래된(이라고 해봤자 약 반년) 승부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약 32번 정도의 승부를 겨뤘지만 둘 다 비등비등하게 이기는 바람에 누가 우위에 있다고 확언하기 어려웠다. 그런 고로 홀수 회차인 이번 승부가 더욱 둘에게는 중요한 터. 누가 천재 요원 아니랄까봐 카게야마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 그 모습에 자극을 받은 히나타의 속도도 더 빨라졌다. 천재까진 아니어도 사격에서 걸출한 실력을 뽐냈던 자존심이 있었다.

그들이 목표한 29. 거의 동시에 그 창문 앞에 멈춰선 두 사람은 빠르게 장비를 꺼내어 두꺼운 방탄유리를 잘라냈다. 둥그런 반달 모양으로 손잡이 부근을 자른 뒤 툭 밀어 뻥 뚫린 공간에 손을 넣었다. 달칵. 열린 창문으로 유연하게 몸을 집어넣어 안전장치가 달린 줄을 풀어내자마자 두 사람은 동시에,

 

내가 먼저다!”

, 내가 먼저!”

…….”

…….”

 

젠장. 또 무승분가? 카게야마가 불만스러운 눈으로 히나타를 보았다. 히나타 역시 마찬가지였다. 히나타는 등에 지고 있는 장총을 신경 쓰다가 타이밍이 조금 늦어버렸다며 자책했다. 그들이 떨어지면 곧바로 즉사할만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도 잊을 정도로, 방금까지 발을 헛디딜 정도로 겁을 냈던 것도 잊을 정도로 서로에게 집중한 덕분에 어쨌든 잠입은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카게야마가 무심코 손을 뻗어 히나타를 잡아당기려고 할 때, 그들의 귀에 꽂힌 무선 통신기에서 츠키시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 29층 진입했지?’

.” / “그래.”

경보음이 울리지 않았다니 다행이야.’

……? 당연하잖아? 그건 네 담당이니까.”

제왕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미안하지만 잠시 잊고 있었거든~’

뭐야?”

목소리 낮춰. 꼼짝없이 잡히고 싶지 않으면. 거긴 건물 내부니까 더 엄중을 기해야 한다고.’

 

네가 시비만 걸지 않으면 되잖아. 카게야마가 이를 갈며 말했다. 히나타는 입을 다물기로 했다. 저 상태의 카게야마를 건드려봤자 좋은 꼴은 볼 수 없었다. 츠키시마는, ‘수습시절 오이카와 토오루가 있는 SA팀에 배정받았다가 그의 속을 홀랑 뒤집어놓고 제왕이라는 별명을 획득한 것으로 유명한 카게야마 속 뒤집기가 스트레스를 푸는 취미 중 하나였다. 히나타와 사이가 나쁜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사이가 나쁜 셈이었다.

 

어디로 가?”

 

히나타가 물었다. 자신을 서민으로 낮추어 부르며 기꺼이 내비게이션을 자청하는 츠키시마 때문에 주먹을 부들부들 떠는 카게야마를 보며 히나타는 하마터면 큰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그랬다가는 머리를 곧장 공처럼 붙잡힐 것이 뻔해 자제했지만.

 

잠깐 벽에 붙어 있어.’

 

츠키시마의 말대로 두 사람은 코너를 돌기 전 걸음을 멈추고 재빨리 벽에 붙어 섰다. 저 멀리서부터 경비인 듯한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근처가 희미하게 밝아진 것을 보니 손전등을 들고 있는 것 같았다.

 

경로는?”

 

카게야마의 물음에 츠키시마가 짧은 텀을 둔 뒤 답했다.

 

아마 쭉 지나쳐갈 거야.’

아마? 확실하게 해.”

글쎄.’

 

그때 경비의 걸음이 잠시 멈췄다. 잠시 뒤를 돈 것처럼 손전등 빛도 살짝 흐트러진 것 같았다. 히나타는 의아하게 생각해 슬쩍 코너 너머로 고개를 내밀려고 했다. 그러나 거의 동시에 경비가 든 손전등 불빛이 더 진해지고 가까워졌다. 이미 코너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던 히나타가 잠시 역동작에 걸린 사이, 바람같이 그의 목을 감싸 끌어당기는 팔이 있었다. 그의 머리에 카게야마의 턱이 닿았다. 카게야마의 빠른 대처로 다행히 히나타를 눈치 채지 못한 경비는 그대로 그들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 순간에는 히나타의 목을 껴안듯 두른 카게야마의 팔에 힘이 더욱 실렸다.

경비가 완전히 사라지자 카게야마의 팔에서 약간 힘이 풀렸다. 그의 귓가로 카게야마가 내쉬는 안도의 짧은 숨이 닿아왔다. 팔을 떼어낼 생각도, 품에서 바로 떨어져 나올 생각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던 히나타는 그제서야 흠칫 놀랐다. 카게야마도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뒤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카게야마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 총 엄청 거치적거려. 내가 끌어당겨서 망정이지, 벽에 부딪쳐서 소리라도 났으면 어떡해?”

이건 어쩔 수 없는 거 알잖아.”

 

히나타는 제 등에 멘 장총을 힐끗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히나타가 좋아하고 주로 사용하는 것이었지만 휴대하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평소에는 매복해 있는 상황에서 원거리의 포인트를 노려 사격하는 담당이라 딱히 숨길 필요도 없고 움직일 필요도 없었지만 현장이라면 얘기가 달라졌다. 소총을 가져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내키지 않아했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 등에 지고 다니는 거였다.

 

그래도 맘에 안 들어. 너무 딱딱해서 안을 때……

 

. 카게야마가 입을 다물었다. 히나타는 이해하지 못한 듯했지만 츠키시마 쪽에서 불편한 헛기침 소리가 흘러나온 것 같았다. 카게야마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

 

그리고 멍청아. 거기서 고개를 들이밀면 어떡하냐고.”

미안합니다……

 

카게야마는 못마땅한 얼굴로 히나타의 등에 매달린 총을 쳐다본 뒤 말했다.

 

돌아가면 너 업어메치기 20번 당할 줄 알아라.”

거 인심 너무 야박한 거 아닙니까!”

너 호신술 허접이잖아.”

, 정곡!”

 

K1팀의 호신술 공식 젬병이 히나타였다. 자기는 원거리 저격수를 주로 하니 호신술은 필요 없다고 변명하던 히나타였지만, 그 말을 반대로 뒤집으면 적이 근접해 다가왔을 때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는 말이었다. 운동실력도 빠릿빠릿, 민첩성과 탄력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주제에 히나타는 호신 무술에 약했다.

 

듣기 짜증나니까 그만 하고 코너 돌아가. 오른쪽에서 세 번째로 나오는 문이 기밀 자료실이야.’

안전장치는?”

해제했으니 들어가기나 해. 시간 없어.’

 

카게야마와 히나타가 시선을 마주쳤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발소리를 죽인 채 달리기 시작했다.

 

 

 

3.

 

다행히 큰 일 없이 자료실에 들어간 카게야마와 히나타를 확인한 츠키시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경비가 그들이 숨어 있던 곳을 스쳐 지나갈 때, 잠깐 알고 싶지 않은 상황이 눈앞에 나타난 것 같아 속아 조금 불편해졌었다. 그냥 환기구에 숨든 다른 사무실에 들어가 있으라고 할 걸 그랬다는 후회도 했다. 그래도 이 두 사람이 별 일 없이 목표지점에 도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옆에서 야마구치도 안도했다.

츠키시마는 화면에 깜빡이는 두 개의 점을 보았다. 이곳 빌딩 29층의 도면을 바탕으로 한 지도였다. 경비는 방금 지나갔으니 다음 경비가 올 때까지 약 20분의 시간이 있었다. 그 안에 이 연구시설에서 국제 표준 기술로 만들기 위해 불법 자금을 수수한 정황을 찾아야 했다. 조직 간의 알력싸움에 그들 요원이 투입되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해외로의 기술 유출 건도 있어 여러모로 정부의 눈에 미운털이 박힌 모양이었다.

까마귀라더니 쓰레기장 청소까지 시킬 줄이야. 츠키시마는 속으로 하고 있는 생각을 굳이 밖으로 드러내진 않으며 카게야마와 히나타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20분이야. 안에 터치스크린 보이지?”

.’ / ‘그래.’

일단 색인 찾아서 서류로 존재하는 장부 찾아봐.”

알았어.’

그리고 거기 잘 보면 USB 꼽는 부분 있을 거야. 그 안에 든 거 몽땅 복사하고.”

 

카게야마가 색인을 찾는 것 같았다.

 

‘P-046825657.’

뭐야? 왜 이렇게 길어?’

그것도 못 외우냐 멍청아?’

아 좀 짧게 끊어봐.’

‘P-046825657.’

 

. 츠키시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암기력에 약한 히나타가 몇 번 버벅이고 나서야 번호를 외운 듯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 히나타. USB.’

‘USB ?’

너한테 있잖아, 허접아.’

무슨 소리야. 나한테 없는데?’

뭐야? 네가 챙기기로 했잖아!’

언제!?’

 

이 바보들 설마! 츠키시마가 얼굴을 굳히고 둘의 목소리를 듣는 야마구치의 얼굴도 더욱 창백해져 주근깨가 도드라졌다.

 

빨리 찾아봐. 분명 너한테 있어.’

나는 넣은 기억이 없는데……

주머니.’

바지에도 없고 조끼에도 없고 벨트에도 없고 허벅지에도 없고 신발에도 없어.’

모자는?’

안 쓰고 있잖아?’

그렇네.’

 

츠키시마가 고개를 돌려 야마구치를 보았다. 카게야마와 히나타가 다시 올라왔다가 내려가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최후의 수단이라면 야마구치가 고소공포증을 이기고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지만 그게 과연 가능할지 알 수 없었다. 츠키시마가 잠시 고민에 빠졌을 때였다.

 

이리 와봐.’

, ? 또 머리 잡으려고?’

짚이는 게 있어. 빨리 와.’

히익…… 으응?’

…….’

…….’

 

카게야마와 히나타가 잠시 무언가를 하는 것 같았다. 츠키시마는 두 사람이 간혹 형성하는 이런 둘만의 순간순간들이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 속이 저절로 더부룩해지고, 얹히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 그래! 여기 있었어!’

멍청이. 넌 맨날 중요한 거 안 잊으려고 목에 걸고 다니면서 정작 그거 까먹지?’

카게야마 은근 나한테 관심 많다니까~’

그거야 당연……

 

뭐야 이 상상의 여지는? 그냥 알려주면 될 거 왜 가까이 오라고 한 거야? 카게야마가 히나타 목에 걸려 있던 USB를 직접 꺼내줬다는 거야? 히나타 버릇은 어떻게 아는데? 야마구치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츠키시마는 가슴을 탕탕 치고 싶은 충동을 애써 이기며 차갑게 말했다.

 

“15분 남았어. 빨리 해결해.”

그래.’

알았어.’

 

츠키시마는 차라리 그가 수습 요원으로 있던 FN팀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또 한 번 했다.

 

 

 

4.

 

찾았다! 히나타의 음성이 들린 것은 한참이 지나 주어진 시간이 약 2분 남아서였다. P-046825657P구역의 046825657번째 기록임을 뜻하는 것임은 금방 알아챘지만, P구역만 해도 범위가 어마어마해 한참을 찾다가 간신히 찾은 장부였다. USB 복사를 시도해놓고 히나타와 함께 장부를 찾던 카게야마가 고개를 돌렸다. 히나타의 손에 그들이 찾던 장부가 들려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제목과 내용을 확인했다. 정황상 끼워 맞춘 날짜를 확인하니 자금을 수수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예스!”

아자!!”

 

두 사람이 기쁨에 찬 표정을 지으며 마주보다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카게야마는 빠르게 걸음을 옮겨 터치스크린 앞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그 순간 얼굴이 조금 굳었다. 그를 따라 히나타가 책장 사이에서 나오다가 똑같이 굳었다.

 

저거 뭐야??”

뭐야. 무슨 문제 있어?’

 

츠키시마가 물었다. 카게야마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70% 정도 쯤에서 오류 떴는데.”

오류? 무슨 오류?’

시간 얼마나 남았지?”

‘30. 30초 후 경비가 이쪽으로 와서 분명 문을 열어볼 거야. 경비가 사람 불러도 문제지만 그를 제압한다고 해도 거기에서 연락 없으면 자동적으로 연구시설 경호원들한테 10초 안에 포위될 테고.’

 

카게야마가 눈빛을 굳힌 뒤 입매를 비틀었다.

 

히나타.”

.”

츠키시마 말 따라서 이거 해결해.”

너는?”

내가 막는다.”

카게야마!”

빨리 해. 시간 얼마 남았어?”

‘10.’

 

젠장. 카게야마가 재빨리 문가로 향했다. 히나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돌변해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츠키시마의 말을 따라 오류를 해결했다. 10초라는 시간이 이렇게 짧았던가? 츠키시마의 말을 몇 마디 밖에 듣지 못한 것 같은데 문이 열렸다. 카게야마의 손이 빠르게 경비를 낚아채 제압했다. 겁에 질린 경비의 입을 틀어막고 급소를 찔러 기절시킨 카게야마가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 주위를 경계했다. 츠키시마의 말대로 경비가 응답이 없다면 침입으로 간주하고 경호원들이 몰려들 것이다. 10, 9, 8, 7, 6……

 

됐어, 다시 시작됐어.”

몇 초 남았어?’

“10!”

 

속도가 빠른 USB라고 하지만 안에 든 정보가 너무 많아 시간이 평소보다 걸렸다. 히나타는 초조하게 카게야마 쪽을 보았다. 복사가 끝날 때까지 10, 9, 8, 7……

 

! 경호원들이 몰려든 것인지 카게야마가 문을 열고 바깥으로 총을 쏘았다. , ! 몇 번의 소리가 나고 바깥에서 철푸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히나타는 초조하게 남은 시간을 보았다.

6, 5, 4……

 

상대가 난사하는 총을 피해 카게야마가 안으로 몸을 숨겨 호흡을 골랐다. 문이 걸레짝이 되어 구멍이 송송 났다. 히나타의 발치에 빈 탄창과 총탄이 데굴데굴 굴러 왔다. 카게야마가 다시 바깥을 향해 총을 쏜 뒤 다시 몸을 숨겼다. 한차례 상대로부터의 총격이 다시 휩쓸고 지나갔다.

3, 2, 1……!

히나타의 눈이 커졌다. 전송이 완료되었다는 창이 뜨고 히나타가 바람같이 고개를 돌렸다. 카게야마와 눈이 마주쳤다. 둘은 이 상황에서 서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카게야마의 사격이 멎자 경호원들이 타닥타닥 빠르게 접근하는 소리가 들렸다. 히나타가 USB를 뽑고 목에 걸었다. 몇 명의 경호원이 문가에 조심스레 모습을 드러낸 것보다, 히나타가 등에 지고 있던 장총을 꺼내 엎드린 것이 더 빨랐다. 카게야마는 씨익 (누군가의 표현에 의하면 아주 무섭고 이상하게) 웃으며 몸을 둥글게 말았다. 그 순간 히나타의 장총에서 빠르게 총알이 튀어나가 상대에게 명중했다. 매우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을 뿐더러 엄청나게 빠른 반응속도였다. 총에 맞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과 동시에 쓰러지는 이들의 표정에 서린 경악을 읽으며 히나타가 카게야마와 눈을 마주쳤다.

 

몇 명 남았어?’

.’

 

눈빛으로 전해지는 대화 이후, 히나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바깥으로 튀어나갔다. 앞선 희생자들을 보고 겁에 질려 다가오기를 주저하고 있던 이들이 총을 난사했지만 히나타가 문 밖을 나서자마자 바닥으로 몸을 굴려 조준했기 때문에 모두 빗나갔다. 그 중 한 발이 유일하게 제대로 히나타 쪽을 향했다. 그렇지만……

꾸욱-

곧바로 히나타의 뒤를 쫓아 나온 카게야마가 그의 옆에 엎드려 머리를 꾸욱 누른 덕분에 직격으로 맞는 일을 피할 수 있었다. 그 바람에 마지막 한 발이 빗나갔지만, 남은 그 한 명은 거의 동시에 이어진 카게야마의 사격에 맥없이 쓰러졌다.

 

. 내가 구해준 거다.”

 

카게야마가 손을 내렸다. 얹힌 손이 머리에서 등으로 옮겨가서야 히나타는 고개를 들었다.

 

고맙긴 합니다만…… 아우, 내 턱……

부딪혔어?”

네가 그렇게 갑자기 누르는데 안 부딪혔겠냐!”

멍청아! 적당히 내렸어야지! 봐봐!”

 

카게야마가 히나타에게 바짝 붙었다. 히나타의 턱을 잡아챈 그가 자세히 살피듯 고개를 숙였다.

 

뭐야. 상처도 없는데 엄살이냐.”

 

카게야마가 히나타의 턱을 놓으려다 잠시 멈칫했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곤 둘 밖에 없는 고요한 복도에서 침묵이 흘렀다. 마주친 두 눈이 커졌다. 지나치게 가까워져 있는 거리를 상기한 두 사람의 시선이 도통 떨어지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자신도 모르게 조금 더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의 입술이 닿을락 말락 했을 때.

 

……시간 없어. 빨리 나와.’

 

츠키시마의 목소리에 감전이라도 된 듯 두 사람은 파드득 바닥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누구랄 것도 없이 어느새 붉게 달아올라 있는 얼굴을 각자 가리기에 급급했다. 히나타가 먼저 말했다.

 

누가 먼저 빨리 나가나 승부다!!”

반칙하지 마! 멍청아!!”

 

다시 장총을 들춰 멘 뒤 먼저 와다다 달려 나가는 히나타의 뒤로 고함을 지르며 카게야마가 황급히 그를 따라갔다. 어디선가 츠키시마의 한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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