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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카게히나] 고백을 받았다 上

별골짜기 2016. 2. 24. 08:56

카게히나

고백을 받았다

 

 

 

카게야마군, 좋아해!”

 

푹 고개를 숙인 고개 아래로 나오는 목소리가 달달 떨렸다. 분홍색 편지 봉투를 쥐기 위해서인지 장갑조차 끼지 않은 손은 희게 질려 있었다. 아무래도 늦겨울의 날 선 바람이 많이 추운 모양이었다. 그가 막 체육관에서 연습을 하다 불려나온 탓인지는 몰라도, 야트막한 봄기운이 서리고 있는 날씨라고 떠들어대니 별로 춥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가만 보면 여자는 참 연약한 존재였다.

 

우리 나츠는 추위를 잘 타. 집에서도 목도리를 하고 있으려 한다니까.’

 

반짝거리는 눈을 보기 좋게 휘며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았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정확히 언제 그런 말을 들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아무래도 여동생이라는 존재를 애지중지 여기는 모습이 인상 깊게 남아 있었다. 눈앞의 고개 숙인 여학생도 추위를 잘 타는 체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카게야마는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대답을 해주기로 했다.

 

미안.”

 

여학생이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제 딴에는 최대한 빨리 추운 이곳을 벗어나 따뜻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라는 배려였지만 어쩐지 상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눈물을 뚝뚝 떨어트려내는 하얀 얼굴을 보며 카게야마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째서야?”

배구 이외에는 관심 없어.”

 

이유를 묻기에 간단히 대답했다. 그러나 여학생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추우니까 조심히 들어가.’라고 말하려 입을 벙긋였지만 휙 뒤돌아선 모습이 먼저였다. 수많은 물음표가 머릿속을 빼곡하게 채워 질문은 혀의 끄트머리를 타고 빠져나오지 못했다. 타닥 타닥 신경질적이고도 질척한 발소리를 내며 멀어지는 뒷모습이 차가웠다. 이제 겨울은 다 지나가고 있는데 그런 느낌을 받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돌아서는 카게야마의 귓가에, 별안간 큰 목소리들이 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우와아! 카게야마 이 자식!”

이 복 터진 놈!”

 

이제 졸업식만을 앞두고 있는 타나카와 니시노야는 그러지 않은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활기차고 유쾌했다. 신입생들에게 근엄하게 무게를 잡아 보아도 반나절이 되지 않아 익히 알고 있는 모습으로 금방 돌아와 버릴 정도로 솔직하고 쾌활한 두 사람은, 후배의 고백 받는 장면을 생생하게 목격했다는 사실에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발견한 기자처럼 그에게 달라붙어 왔다.

누구야? 몇 학년이야? 몇 반이야? 이름은 뭐야? 뭐라고 고백했어? 거절한 거지? 왜 거절했어? 뭐라고 거절했는데? 카게야마 네 취향 아니야? 너 이번이 몇 번째로 고백 받는 거더라? 네 스타일이 뭐길래 자꾸 거절하는 거야? 설마 고리타분하고 재미없게 난 배구 말고 관심 있는 게 없어.’라고 대답한 건 아니겠지?

카게야마는 속사포처럼 몰아치는 두 사람의 협공에 짐짓 당황스러워 했다. 체육관에서 여학생의 부름을 받고 나올 때 그를 향한 환호와 휘파람 소리를 들은 것 같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 보고 있기까지 할 줄은 몰랐다. 타나카와 니시노야의 말똥말똥 깜빡이는 시선이 어쩐지 부담스러워 고개를 돌렸지만 귓속을 파고드는 목소리까지 듣지 않을 수는 없었다. 평소 이런저런 이야기를 자세하게 풀어놓지 않는 편인 그는, 이 난감한 상황에서 익숙한 구세주의 목소리를 들었다.

 

거기, 연습 안 해?”

엔노시타! 넌 궁금하지 않아?”

궁금이고 뭐고 연습 지체되고 있으니 들어와. 설마 졸업 얼마 안 남았다고 해이해진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슴까!”

 

졸업이라는 마법의 단어에 타나카와 니시노야는 나중에 자세히 알려달라며 카게야마의 어깨를 두드린 뒤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천천히 따르며 그 역시 체육관에 들어섰다. 바깥의 찬 공기와는 다르게 뜨겁게 덥혀진 체육관 내부의 공기가 익숙했다. 잠시 얼었던 손을 쥐었다 펴자 손끝에서부터 열기가 번져드는 것이 느껴졌다. 바닥을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배구공을 한 손으로 주워 바닥에 한 번 튕겨 잡자 그 열기가 짙어졌다. 공과 맞닿은 손바닥 전체로 퍼진 따스함이 편안해 잠시 심호흡을 하며 숨을 골랐다.

 

카게야마! 연습 땡땡이치고 좋았냐!”

 

몇 걸음 떨어진 앞에서 한 톤 높은 목소리가 밝게 그를 질책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훌쩍 자라긴 했지만 여전히 그보다는 작은 키와 조그만 체구가 네트 앞에서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땡땡이? 내가? 히나타 이 멍청이, 내가 언제……

그게 아니면 빨리 토스 올려달라고~”

땡땡이라고 한 말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카게야마가 으름장을 놓으며 뚜벅뚜벅 걸어가자 히나타가 오히려 그 말이 기쁜 듯 웃었다. 체육관 내부를 감싼 열기보다 더욱 뜨거운 시선이 마주쳤다. 손바닥에서 번져오는 열기가 온몸으로 퍼지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이게 맞는 거지.

카게야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에엑! 진짜 고루한 대답이잖아!”

 

연습이 끝난 직후 엔노시타의 눈치를 보며 카게야마에게 다시 달려든 타나카가 그의 고백에 대한 답을 듣고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카게야마로서는 억울한 말이었다. 그는 거짓말로 여학생들을 달래고 싶지 않아 솔직하게 답했을 뿐이고, 배구가 더 좋다는 건 그의 순수한 진심이었다.

 

나는 타나카 네가 고루라는 단어를 아는 게 더 신기한데.”

 

엔노시타의 순수한 놀람이 묻은 말에 타나카는 발끈했다. 그 사이 츠키시마가 풋 비웃으며 말했다.

 

하긴, 제왕님은 연애를 안 하는 게 차라리 상대를 위한 일이겠지.”

뭐라고, 이 자식!”

츳키

 

야마구치가 츠키시마를 말리는 사이, 니시노야가 아까부터 조용한 히나타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물었다.

 

넌 어때, 히나타? 너도 카게야마 못지않은 배구 바보잖아?”

연애냐, 배구냐, 히나타의 선택은!!”

 

타나카가 냉큼 맞장구를 치자 곧 2학년이 될 1학년들도 다들 초롱초롱 눈을 뜬 채 히나타를 보았다. 츠키시마를 향해 한껏 살의를 보이고 있던 카게야마도 스윽 고개를 내렸다. 한 순간 집중이 된 당사자인 히나타는 배구와 연애 중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에 빠진 듯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카게야마는 잠시 숨이 멎고 당황스러웠다. 그것이 조금 충격적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배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카게야마에게는 단 1초의 고민도 허용하지 않는 너무나 완벽한 답이었다. 그런데 히나타는 그게 아니었다.

 

그래도 저, 아직 연애는 한 번도 안 해봤고……

오오, 그래, 이게 정상이지~!”

 

끝까지 말이 이어지지 않았지만 히나타의 말을 연애를 택하겠다는 것으로 결론내린 타나카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등을 팡팡 내리쳤다. 갸악, 아파요! 에이스의 강력한 풀파워가 장착된 손바닥 찜질을 얻어맞은 히나타가 괴로움에 몸을 비틀자 체육관에 한바탕 웃음이 휩쓸고 지나갔지만, 단 한 사람, 카게야마는 웃을 수 없었다. 나는 배구를 택할 건데, 너는 아닌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서운함이 밀려들었다.

 

 

 

 

 

 

 

 

 

 

 

주장이었던 엔노시타를 비롯한 3학년이 졸업할 때 히나타는 눈물을 두 바가지 쏟았다. 처음 카라스노 배구부에 입부해 만났던 3학년들이 졸업할 때 흘렸던 세 바가지만큼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흘린 눈물은 많았다. 졸업 당사자인 타나카와 니시노야가 펑펑 운 것을 생각하면 히나타도 졸업할 때 한 바가지쯤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울음을 멈출 줄 모르는 히나타 옆에서 함께 눈물을 줄줄 흘리며 카게야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교정에 흐드러지는 벚꽃이 피고 그 향내음이 달달하게 코끝을 묻히는 계절. 미야기현 대표로 8강까지 들었던 덕분인지 입부 희망자는 작년보다 더 늘어나 있었다. 새롭게 카라스노 배구부에 들어온 신입생은 7. 그들 대부분이 중학생 때부터 배구부에서 활동했고, 특히 히나타와 카게야마의 괴짜콤비 플레이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은 바 있다고 했다. 히나타는 대놓고 좋아하는 티를 냈고, 카게야마는 안 그런 척 입가를 간질간질거리며 웃었다.

그들의 코앞에 닥친 목표는 인터하이였다. 우카이 코치와 타케다 선생, 매니저 야치, 그리고 주장 츠키시마가 무언가 중요해 보이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1학년 신입생 한 명이 쭈뼛쭈뼛 다가와 괴짜속공을 보여줄 수 있느냐 물었다. 저 뒤에서 열렬히 눈을 빛내는 모습을 보니 가위바위보 같은 게임에서 지는 바람에 대표로 온 듯했다. 히나타와 카게야마는 동시에 시선을 마주쳤다. 그 둥근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쑥스러움이 스치는 바람에 그는 휙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마 히나타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파트너가 되었다는 것. 콤비로 묶여 있다는 것은 햇수로 3년차였지만 카게야마에게는 늘 새롭고도 색다르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파트너. 콤비. 내 토스. 스파이크. 세터. 에이스. 카게야마는 1학년 신입생들의 존경과 동경을 담은 시선이 좋았고 한편으로는 쑥스러웠다. 그들의 시선이 한데 묶는 것은 괴짜 콤비인 카게야마와 히나타였기 때문이다.

그게 싫은 적은 결단코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카게야마는 바닥에서 공을 주워 양손으로 잡았다. 손바닥에서 뜨끈한 열기가 퍼졌다. 불덩이 같이 뜨거운 공을 받아든 히나타가 저 멀리 떨어져 이쪽으로 달려올 준비를 했다. 늘 공을 만지고 집중하는데 쏟던 날카로운 감각이 방향을 바꾸어 히나타를 향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항상 이미지화되는 히나타의 움직임이 현실인 것마냥 생생했다.

히나타가 공을 높이 띄워 카게야마에게 보냈다. 카게야마는 공이 오는 위치를 본능적으로 짚는 동시에 온 몸의 모든 감각을 곤두세웠다. 누구보다 빠르게 그리고 날렵하게 달려오는 히나타가 그의 토스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이 순간이, 카게야마에게는 그 어떤 순간보다도 짜릿하고 흥분되며 세터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

네트 바로 근처 바닥에 수직으로 꽂혀 둔탁한 소리를 낸 공이 퉁퉁 튕겨 저 멀리 굴러갔다. 예스! 아자! 서로 말로 내뱉지 않아도 어떤 종류의 속공을 쓸 것인지 알 수 있었고, 모든 속공의 성공률은 실전경기를 포함해 이젠 85%를 웃돌았다. 카게야마와 히나타의 속공을 가까이서 처음 본 신입생들은 그 대단한 속도와 정확성에 눈을 휘둥그레 뜨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우와…… 이건 선배님들 콤비만 가능한 거겠죠?”

 

갈색 머리카락을 왁스로 잘 세워 바른 신입생이 주먹을 꼭 쥐며 물었다. 히나타는 그럴걸?”이라고 대답하며 멋쩍게 웃었지만 카게야마는 아마.”라고 약간 더 확신을 담아 대답했다.

나랑, 히나타만. 카게야마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 연습을 마치고 교실로 향하는 히나타의 품에는 배구공이 안겨 있었다. 카게야마는 그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정확하게 기억했다. 1학년 여름, 처음으로 두 사람이 부딪혀 싸우고 사적인 말 한 마디 섞지 않은 채 각자 노력을 기울이던 그 때. 카게야마가 히나타의 움직임을 이미지화해 공을 던지는 버릇을 만든 것처럼 히나타는 공을 틈만 나면 만져 손에 익게 하는 버릇을 들였다. 카게야마는 히나타의 손 안에서 쉴 새 없이 굴려지는 공을 보았다.

히나타의 키는 2년 동안 그럭저럭 자랐다. 170cm가 아슬아슬하게 넘은 것을 확인한 졸업식 전날, 카게야마는 그것을 직접 실감할 수 있었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 내 키가 얼마나 자랐는지 보라고 빛내는 눈과의 거리가 조금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어깨 언저리에 닿았던 머리가 그럭저럭 턱까지 닿아 있었다. 비단 히나타만 자란 것이 아니고 카게야마도 자랐기에 평소에는 실감하지 못한 것을, 와 닿는 체취를 맡아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배구 경기를 할 때보다 더한 두근거림이 어째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 순간 느껴졌는지 아직도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여전한 것은 히나타가 아직 한 손으로 공을 잡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키는 자랐어도 손 크기는 별로 자라지 못한 탓에 히나타는 늘 한 손으로 공을 쥐기 위해 끙끙거려야 했다. 여기서 딱 한 마디만 더 자라면 될 것 같은데! 히나타의 칭얼거림을 들으며 카게야마는 무의식중에 손을 들어 올렸다. 히나타와 자신의 손 크기가 딱 한 마디 차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되고 히나타는 되지 않는 한 손으로 공 잡기, 손가락 한 마디 차이의 어느 부근까지 자라서야 가능할 것이다.

. …….

끙끙거리다가 결국 놓쳐버린 공이 복도를 굴렀다. 카게야마는 반사적으로 빠르게 걸으며 히나타를 질책했다.

 

히나타 멍청아. 그건 연습으로 되는 게 아니니까 적어도 내일이나 모레 다시 해 보는 게 낫다고……

 

허리를 숙여 공을 집어 들려고 하는 카게야마보다 더 빠른 손이 보여 그는 말을 멈췄다. 까맣고 긴 머리카락을 한쪽 귀 뒤로 단정하게 넘긴 여학생이 공을 양손으로 들고 카게야마를 지나쳤다. 마치 그 공의 주인을 알고 있는 것처럼 곧바로 히나타를 향해 건넨 작은 얼굴이 해사하게 웃었다. 히나타는 어리둥절하면서도 얼떨떨하게 감사했다. 여학생은 한 번 씩 웃은 뒤 반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바로 옆 반이었다.

카게야마는 고장 난 로봇처럼 기괴하게 목을 틀어 히나타를 보았다. 히나타는 말없이 받아든 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표정을 읽고 싶은데 잘 보이지 않아 애가 탔다. 멱살을 틀어잡아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평소와는 다른 기류가 그를 스쳤다. 부드럽지만 단단한 기류는 그의 목을 얼게 만들었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진 것 같기도 했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기분이 나빠진 건 확실한데 이유도 알 수 없었다.

 

안 들어갈 거냐?”

? 아니! 들어가야지.”

 

새학년이 되는 동시에 처음으로 같은 반이 된 두 사람은 나란히 교실로 들어갔다. 자리는 떨어져 있었지만 점심도 같이 먹게 되었고 체육 활동도 같이 하게 되었다. 혼자가 익숙했던 그가 이만치 누군가와 가까워져 본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일까? 카게야마는 자신의 자리를 향해 멀어지는 히나타의 가방을 저도 모르게 붙잡았다.

 

? ? 뭐 할 말 있어?”

 

히나타가 뒤를 돌았다. 카게야마는 당황했다. 생각이나 계산 없이 멋대로 튀어나간 손이 허공에 멈췄다. 느릿하고 애매하게 쥔 주먹을 뒤로 숨기며 그는 시선을 비스듬하게 내리깔았다.

 

……아니.”

뭐야, 싱겁게!”

 

카게야마는 한동안 보일 일 없었던 무시무시한 표정이 되었다. 히나타가 잘못 날린 서브에 뒤통수를 맞았던 때와 비슷한 표정. 질겁한 히나타가 손을 내저으며 소리쳤다.

 

아냐, 안 싱거워!! ! 짜다고! 이 짠돌이 카게야마!”

…….”

으악, 아니, 욕이 아니라!”

 

2년이라는 시간을 카라스노 배구부에서 보내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히나타에게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이 표정에서만큼은 히나타가 아직 약한 면모를 보였다. 히나타를 이겨먹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음에도 카게야마는 그냥 뒤를 돌아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히나타가 에엑, 카게야마 삐졌어??”라고 소리쳤지만 곧 종이 울려 얌전해질 수밖에 없었고, 카게야마는 그대로 책상 위에 엎드렸다. 눈동자가 의미 없이 깜빡였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소용돌이치기 시작하는 느낌은 별로 달가운 것이 아니었다. 감정에 인색한 그가 팀에 완전히, 익숙하게 녹아드는 데에 2년이 걸렸다. 하지만 이 회전하기 시작한 소용돌이는 2년 동안 배운 감정들과 비슷하면서도 약간 거리가 있었다. 그의 눈이 어둑하게 가라앉았다. 지금으로도 충분한데. 지금으로도 충분히 배구를 할 수 있는데. 새로운 무언가가 조금 두렵기까지 했다.

별거 아니라고, 카게야마는 잠드는 대신 한교시 내내 생각하며 결론 내렸다. 어쩌면 그러고 싶은 믿음이기도 했다. ‘이것이 과연 배구에 쓸모 있는 것인가?’ 라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성가실지도 모르는 조그만 감정에 신경 쓰는 것보다 도시락을 까먹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나으리라는 판단도 있었다. 히나타가 집에서 싸오는 도시락과 그가 사오는 주먹밥을 사이좋게 나눠먹을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히나타가 오전에 있던 수업에 대해 불평하는 이야기를 말없이 들으며 속으로 맞장구칠 때까지만 해도 그랬는데.

 

히나타군. 나랑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아침에 만났던 검은 머리카락의 여학생이 나타나 히나타를 향해 똑바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때까지만 해도,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 ? 지금?”

.”

 

히나타가 곤란하게 그를 쳐다보고, 뻣뻣하게 몸을 움직여 자리를 피하고, 구석진 학교 건물 코너를 돌아 자리에 멈춰 선 카게야마는 건물 벽에 등을 기댔다. 자리를 피해줘야 한다고, 엿듣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걸 머릿속이 알고 있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회오리치기 시작한 감정 때문이었다. 그 소용돌이가 거세지고 몸집을 부풀려 서서히 카게야마의 마음을 둘러싼 정체모를 벽을 거슬리게 건드리고 있었다. 아직 봄인데 여름처럼 손바닥에 맺히는 땀이, 방금 먹은 점심이 체할 것처럼 얹혀 오는 속이, 자기도 모르게 험악하게 일그러지는 눈가가 그의 의지를 벗어나고 있었다.

 

. 우선 안녕. 나는 시즈네라고 해.”

그래? , 안녕. 시즈네상.”

작년 전국대회 응원단에, 나도 있었거든.”

정말??”

. 계속 지켜봤는데 너희 배구부, 정말 대단하더라구. 마지막엔 조금 울었어.”

고마워.”

특히…… 네가 정말 인상적이더라. 그렇게 큰 키도 아닌데 점프력도 대단하고, 열정도 엄청나고. 사실 내가 응원단에 참가한 이유는…… 작은 거인의 재래라고 불리는 네가 궁금해서였는데……

, !?”

계속 지켜보다 보니까 네가 좋아진 것 같아. 네가 작은 거인이든 아니든…… 관심이 생겼어. 아니, 좋아해.”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심장이 턱 밑까지 차오른 기분이었다. 카게야마는 그가 받은 고백도 아닌데 심장이 울렁거리는 현상이 곤혹스러웠다. 자기도 모르게 힘주어 쥐고 있던 주먹을 펴 교복 바지에 문질렀지만 기분도, 긴장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의 모든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마치 배구를 할 때처럼. 특히 히나타 쇼요의 위치를 거듭해서 파악하던 그 수많은 순간들처럼.

하지만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히나타의 생각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경기장 코트 안에서 히나타의 생각을 읽어내는 건 그 누구의 생각을 읽는 것보다 쉬웠지만 지금만은 달랐다. 까마득한 어둠을 응시하는 것처럼 알 수 없었다. 파트너의 생각을 읽어낼 수 없다면, 괴짜 콤비는, 속공은, 그리고 내 토스는……

아무도 없는 등 뒤로 공이 떨어지는 착각을 받으며, 카게야마는 자리를 벗어났다.

 

 

 

-<(히나타가) 고백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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