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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보쿠아카] 외다리 사랑 下

별골짜기 2016. 6. 11. 20:40

보쿠아카

외다리 사랑

모브 비중 있습니다.

 

 

 

 

언젠가였더라, 학교 신문부 부원들이 조사한 가장 연애를 하고 싶은 운동부 남학생이라는 주제의 설문에서 아카아시는 최상위권을 차지한 적이 있었다. 근거는 평소 그가 여학생들에게 행하는 친절과 선생들에게 보이는 예의범절, 평소에 드러나는 반듯함이 꼽혔다. 그 인기를 방증하듯 수많은 기념일마다 배구부 부원들 중 가장 많은 선물을 껴안고 오는 것도 그였다. 고백도 꽤 자주 받았지만 한 번도 받아준 적이 없었다. 아카아시의 연애라는 건 보쿠토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었지만, 지난 2주 동안 실제로 확인해온 그의 연애는 수많은 여학생들의 환상과는 다르게 불친절’, ‘거절’, ‘무응답으로 축약할 수 있었다. 보쿠토가 몇 번이고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에게는 사랑이라는 게 결여되어 있었다.

 

보쿠토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분명 그의 의지가 담뿍 들어있는 일이었다. 아카아시는 이미 연애법을 들켜버렸고 보쿠토가 그에 대해 부정적인 사감을 내비추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알려주기를 꺼렸다. 아카아시는 여전히 보쿠토가 많은 것을 모른다고 했으면서도 더 이상 알려주지 않으려 하는, 이해 못할 거절을 펼쳤다.

 

[‘말해봤자 달라지는 게 있나요? 저는 그런 기대는 하지 않는 주의라서.’

보쿠토상은 저에 대해 모르시는 게 많네요.’

감당할 수 없다면 신경 끄세요.’]

 

아카아시가 그날 남긴 말은 보쿠토에게 여전히 미스터리였다. 기대? 감당? 아카아시의 화법은 그가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지만 반박하지 못했다. 보쿠토는 아카아시가 한 말은 물론이고 시시때때로 이는 감정과 기분을 제대로 규명하지도 못하는 답답한 상황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답답함이 사라졌다기 보다는 패시브처럼 장착되어 안정기에 들어섰다고는 하지만 그 전까지 보쿠토의 기분은 새롭게 컨디션 저하 정도를 갱신해 다이내믹한 며칠을 보내야 했다. 덕분에 연습에는 차질이 생겼고 고생하는 건 부원들이었다. 보쿠토와 아카아시는 그 원인을 알고 있었지만 고치려고 하지 않아 피해는 더 컸다.

 

아카아시.”

.”

 

하지만 그 이후로도 아카아시는 보쿠토를 평소처럼 대했다. 약속이 있어도 미루거나 취소하고 추가연습 요청을 하면 들어주는 것까지 똑같았다. 보쿠토는 그것 또한 이상했다. 사귀는 사람과의 약속인데, 아카아시는 늘 아무렇지 않게 굴었다. 그걸 더 중요시해야 하는 거 아닌가? 보쿠토는 아카아시에게 사귀는 사람보다 배구부가 더 중요해?’라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건 아카아시의 미묘한 표정뿐이었다. 마치 보쿠토상은 저에 대해 모르시는 게 많네요.’라는 말을 들었던 그때처럼.

 

오늘은 추가연습 하지 말자.”

왜요?”

 

아카아시의 반문에 보쿠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약속 있잖아.”

언제부터 그런 거 배려해주셨다고.”

이럴 땐 고맙다고 해야지!!”

. 고맙습니다.”

 

아카아시는 하나도 안 고마운 얼굴로 감사인사를 했다. 그리고 다른 후배 연습을 지도하기 위해 보쿠토 옆을 떠났다. 고작 몇 분 나란히 앉아있던 게 전부인데 아카아시가 사라진 옆자리에는 허전함이 맴돌았다. 보쿠토는 짜증스럽게 얼굴을 맨손으로 쓸어내렸다. 아마 오늘 약속은 기분 나쁜 노란색 눈동자를 가진 남자와 만나기로 한 것일 테다. 먼 발치에서만 한 번 보았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인상이었다. 특히 아카아시만 만나면 뭘 그렇게 껴안으려고 드는지 아카아시가 제지하지 않았더라도 보쿠토가 끼어들어 훼방을 놓았을 거였다.

 

놀라운 건 보쿠토가 처음 봤던, 틈만 나면 차를 타고 아카아시 집 근처에 세우던 남자와는 다른 인물이라는 사실이었다. 보쿠토의 대놓고 하는 탐문수사에 아카아시가 띄엄띄엄 말하는 정보가 기억속의 존재하는 남자와 차이가 있어 물어보니 그 남자와는 바로 다음날 헤어졌다고 했다. 보쿠토가 놀라 이유를 물었을 때는 그를 한 번 쳐다보고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이유보다는 아카아시가 그 남자와 헤어졌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 최근 들어 가장 강력한 스트레이트를 꽂아 넣었지만, 이어지는 깨달음에 다시 시무룩해졌다. 며칠 지나지 않아 아카아시가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는 뜻이 되니까. 보쿠토는 귀신같이 다시 컨디션이 저조해져 성적을 내지 못했다.

 

보쿠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토스 시범을 보이는 아카아시를 보았다. 아카아시는 그가 주장이 되었을 때 꾸릴 팀에 대비해 후배들을 꽤 열성적으로 도와주고 있었다. 플레이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좋은 충고를 해주고, 걱정을 느낀다면 안심시켜주고, 시간표를 까먹으면 전화로 알려주고, 쉬는시간마다 함께 매점을 가고, 매일 한 통화씩은 연락하고, 후배의 연애에 대해 늘 고민하고……?

 

보쿠토는 불현듯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문득 위화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다른 애들도 이렇던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그와 아카아시를 제외한 나머지는 부활동 시간을 제외하고 따로 만나거나 깊은 연락을 나누지는 않았다. 심지어 아카아시가 붙들고 있는 1학년 역시 아카아시와는 부활동을 제외하고 따로 만날 약속을 잡은 적 없었다. 왜냐하면, 거의 대부분의 확률로 그는 보쿠토와 함께 있었으니까. 게다가

 

보쿠토는 최근 아카아시의 비밀스러운 취향까지 알고 있었다. 흘러가는 말을 종합해보면 그건 친한 친구들조차도 모르는 사실이 분명했다. 대놓고 드러내기 어려운 일이기도 했지만.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약점을 쥐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소문이라든가, 질 나쁜 시비를 걸 생각은 없었지만 보쿠토는 미미한 불길이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것을 느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실을 오로지 그만 알고 있었다. 단순히 사회에서 인정받기 어려운 종류라서가 아니었다.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연애에서 빈 공간을 알고 있었다. 그건 책임만이 존재하는 기묘한 균형점의 저울이나 마찬가지였다. 언제 다른 한쪽이 폭삭 주저앉아도 이상할 게 없는 불완전하고 위태로운 연애.

 

보쿠토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원들을 불러 모았다. “오늘 일찍 갈 거니까 다들 연습 계속 하자고!” 네가 웬일이냐는 코노하의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렸지만 보쿠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카아시의 시선이 닿는 것처럼 볼이 따끔따끔했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만 봐도 알 아카아시에게 지금의 생각을 들켜버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카아시는 저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보쿠토는 멀리 떨어져 그 모습을 겨우 식별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천천히 걸었다. 물론 스토킹이라든가 몰래 뒤를 밟는다든가 뒷조사를 한다는 건 아니었다. 보쿠토는 그저 근처에 일이 있을 뿐이었다. 이라는 것이 이곳으로 걸어오며 내내 겨우겨우 떠올린 신발 새로 사기였지만 별로 상관은 없었다. 한두 번 해본 일도 아니었다. 아카아시가 현재 만나는 남자의 눈동자가 노란색임을 아는 것도, 인상이 맘에 안 든다는 것도 이러한 경험이 쌓인 덕분에 아는 사실들이었다. 처음에는 몇 번 들킬 뻔한 적도 많지만 지금은 제법 능숙하게 그를 따라붙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하는 건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용인되기 어려운 지나친 참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카아시는 남자와 만나기로 한 듯한 공원 앞에 멈춰 섰다. 장소가 공원이라는 점에 대해서 보쿠토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아카아시는 늘 이 공원에서 그 남자를 만났기 때문이다. 이 공원은 보쿠토도 잘 알고 있는 곳이라 처음에는 조금 의아하긴 했다. 주변이 뻥 뚫려있는 넓은 곳이라 몰래 연애하는 두 사람이 만날 장소로는 좀 부적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음침하고 좁은 곳으로 간다면 못 견뎠을 것 같지만……

 

……그러니까 내가 왜 못 견디냐고. 보쿠토는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는 사이 저 멀리 벤치에 앉아 있는 아카아시에게 남자가 다가섰다. 반가운 듯 덥석 껴안으려는 것을 아카아시가 뒤로 물러나 피했다. 언제 봐도 기분 나쁜 광경이다. 노란색 눈동자가 그의 것과 비슷해서 그런지 더 기분 나쁘게 느껴졌다. 아카아시는 왜 저런 남자랑 사귀는 거야? 짜증스럽게 투덜거리며 그는 매번 그렇듯 금방이라도 튀어나가고 싶은 손과 발을 필사적으로 참아야 했다. 낮이고 사방이 트여있다 보니 더 낮아진 두 사람의 목소리를 잘 듣기 위해 집중하려 노력하며 보쿠토가 귀를 기울였다. 두 사람의 대화는 간혹 끼어드는 생활소음 때문에 잘 들리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유심히 들으면 전체적인 맥락을 읽지 못하진 않았다.

 

오늘 학교 ……은 어땠어? 특히 ……말이야.”

별로 특별한 건 …….”

그래? 근데 오늘도 서 보자고 했네? 여기가 학교랑 가까워서 그런가?”

아뇨.”

그럼?”

……이 있어서요.”

 

보쿠토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카아시가 자꾸 이곳을 선택하는 이유를 말한 것 같은데 큰 소음을 내며 지나간 화물차 때문에 잘 듣지 못했다. 하지만 언뜻 보니 남자의 표정이 조금 불쾌해진 것 같은 기색을 띠었다. 아카아시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평하게 앞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매만지는 손은 단순히 버릇이었고.

 

나는 다른 데 가고 싶은데.”

그래요?”

지금까지 계속 ……서만 잖아. 오늘은 좀 좋은 곳으로 가자.”

어딜요?”

글쎄. 배고프지 않아? 목마다거나.”

별로요.”

 

남자의 표정은 더욱 나빠졌다. 보쿠토는 여전히 덤덤한 표정의 아카아시를 보았다. 상대를 향한 무조건적인 불친절, 거절, 무응답. 2주 동안의 이것이 보쿠토로 하여금 아카아시의 연애는 비어 있는 것이 있다는 판단을 내리게 했다. 지난번 차를 끌고 찾아오던 남자처럼, 아카아시는 이 남자 역시 좋아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 아카아시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으면서 그저 연애를 하고 싶었던 걸까? 상대가 애걸복걸하는데도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을 정도로 누군가를 사랑하기 어려운 걸까?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보쿠토는 스스로가 불행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유도 모르는 채 그것이 너무 암담해 저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실렸다.

 

그럼 뭐하겠다는 건데? 나랑 하고 싶은 게 있긴 해?”

제가 처음부바라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럼 날 왜 만나냐고!”

 

날카롭게 찢어지는 음성이 나지막하게 실려 왔다. 보쿠토는 남자의 찡그려진 눈매를 보았다. 아카아시가 조용히 말했다.

 

찡그리지 마세요.”

…….”

그게 아니면 …… 이유도 없으니까.”

너 정말!!!”

 

남자가 험악하게 한걸음 튀어나왔다. 보쿠토의 눈이 커졌다. 아카아시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남자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이를 악문 보쿠토는 숨어있던 조각상 뒤에서 튀어나와 다짜고짜 아카아시의 팔을 붙들었다. 남자가 강제로라도 끌고갈 것처럼 보여도 아무 반응이 없던 아카아시에게 처음으로 반응이 생겼다. 보쿠토가 여기서 나타날 줄은 몰랐다는 듯 크게 떠진 눈이 황망하게 몇 번 깜빡거렸다. 보쿠토는 자초지종을 설명할 여유가 없었다. 남자를 한 번 노려보며 보쿠토가 한발 다가가는 순간, 아카아시는 그 사이로 끼어들었다.

 

……!”

 

한 번 더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남자와 보쿠토 사이에서 아카아시가 시야를 가렸다. 이번에도 아카아시는 남자를 등지고 보쿠토와 마주하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방향이었지만, 새삼스럽게 보쿠토는 손끝이 저릿할 정도의 전율을 느꼈다. 그건 충격과도 같았다. 처음 이와 같은 상황을 겪었던 당시에는 당황스러워 미처 눈치 채지 못했지만, 머리를 맞은 듯 두 번째로 겪는 극심한 감정의 줄기에 어렴풋이 눈치 챌 수 있었다.

 

나는 어쩌면아카아시가저 남자를 등지고나를 보는 게 좋은 건가?

 

보쿠토는 새롭게 깨닫게 된 생각의 토대를 이루는 감정의 줄기를 미처 살피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아카아시가 그를 데리고 공원을 빠져나가는 대로 이끌려 갈 뿐이었다. 뒤에서 아카아시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둘 다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뭐하시는 겁니까?”

 

아카아시가 물었다. 공원과 멀리 떨어지는데 급급하다보니 어느새 학교 쪽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와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하교할 인원은 대부분이 하교해 한산한 길거리에서 아카아시가 재차 물었다.

 

보쿠토상이 거기서 왜 나오셨어요? 혹시 절 따라오기라도 한 겁니까?”

신발 사러 갔다가, 우연히

우연이 과하네요.”

 

아직 아카아시의 행동이 준 전율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멍했던 보쿠토는 딱딱한 어조의 말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사과했다.

 

끼어들었다고 생각한다면 미안해. 하지만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그 남자가 아카아시한테 금방이라도 무슨 짓이라도 할 것 같아서만약 그랬다면 패줄 수도 있지만 그럼 경찰이 올 거고 부활동에 지장이 생기니까아무튼 아카아시를 빼내야 한다고 생각했어.”

 

보쿠토의 말에 아카아시는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주신 건 고맙지만 그럴 필요 없었습니다. 폭력은 더더욱요. 제가 왜 공원에서 만나는데요.”

?”

탁 트여 있어서 상대적으로 도움 청하기도 쉽고 바로 앞이 경찰서잖아요.”

 

남자에게 말한 공원을 고집하는이유와는 다른 것 같았지만 지금은 그걸 물어보지 못했다. 순간 가슴께에 답답하게 턱 걸리는 감정을 해소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럼 아카아시는 상대방이 저렇게 나올지도 모르겠다고 미리 생각해놓는 거야?”

 

정곡을 찔린 아카아시가 잠시 말을 잃었다.

 

? 왜 그렇게 하면서까지 그 사람들을 만나는 거야?”

 

보쿠토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카아시는 사귀는 상대에게 지나치게 솔직하고 지나치게 냉담했다. 정말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쓸데없이 책임을 지고, 쓸데없이 왜답답하고 이유 모를 분기가 돌았다. 보쿠토는 그가 2주 동안 그를 관찰하면서 해온 생각을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아카아시는아니, 아카아시가 하는 연애는 중요한 게 빠져있는 것 같아.”

…….”

뭔가 텅 비어서균형이 제대로 맞춰져 있지도 않고완전하지도 않은 것처럼 보여.”

 

아카아시의 연애는 불완전하고 위태롭다. 책임만이 존재하는 기형적인 관계다.

아카아시가 기분 나빠할 거라고 생각해 말을 하는 도중에도 후회했지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 그리고 그가 내놓은 말은 생각지도 못한 종류였다.

 

아무것도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니야?”

 

설마 누굴 진심으로 좋아했다던가? 보쿠토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하지만 아카아시는 그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말을 이었다.

 

텅 비었다는 말은 틀린데요.”

그럼

조그만 조각이라도 조금은 채워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눈을 마주했다. 그의 노란빛 눈동자에 아카아시가 담겼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요. 균형이 안 맞아서 위태롭다거나, 불완전하다는 건 맞는 얘기 같네요.”

잠깐…… 어려워!! 조각?? 조금 채워져 있었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아카아시??”

 

아카아시는 미묘한 표정으로 보쿠토를 보기만 하다가 엉뚱한 말을 했다.

 

배고프고 목마른데 저녁이나 먹고 헤어지죠.”

, 아카아시?!!”

 

아카아시가 뒤를 돌았다. 보쿠토는 그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그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를 캐내려 했지만 그는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 아카아시와는 근처 일식집에 들어가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두 사람이 자주 가던 단골집이었고 아카아시의 태도도 딱히 달라진 점을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보쿠토는 자주 넋을 잃고 아카아시를 볼 때가 늘어났다. 무슨 할 말 있냐는 듯 스윽 고개를 돌려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데이기라도 한 듯 화들짝 놀라서 얼른 고개를 숙여 보이는 아무 거나 입안에 넣었다. 이상하다. 나 진짜 이상하다. 보쿠토는 스스로를 인정했다. 최근, 그러니까 아카아시가 이런 연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근 2주 동안을 통틀어 그는 최고로 이상했다. 더 정확히 범위를 좁혀보자면 전율의 계기를 깨닫게 된 순간 이후였다.

 

그날 아카아시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온 보쿠토는 팔굽혀펴기 한 세트를 하는 데에 무려 열 번 이상이나 멍하니 바닥에 엎드려 있는 일이 생겼다. 정신을 차려보면 머릿속은 왜 그게 기뻤던 걸까?’라는 질문으로 꽉꽉 들어차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이해할 수 없고 느낌상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건 많았다. 처음 아카아시의 기묘한 연애 상대를 알게 되었을 때 느꼈던 복잡하고 불쾌한 감정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것도 모자라 몰래 뒤를 밟으면서까지 왜 자세히 캐내고자 했는지, 아카아시와 보통보다 더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이 미미하게 뿌듯했던 이유는 무엇인지, 결국 이 의문들은 따로 떨어진 조각이 아니라 한데 모아 맞춰 전체적인 그림을 봐야 하는 퍼즐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좋아하는 건데.”

 

가볍게 결론내리는 코노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지울 수 없는 도장을 쾅 찍었다. 생각보다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 그래?’라는, 조금 얼떨떨한 정도였다. 간밤에 팔굽혀펴기 세 세트를 겨우겨우 채우면서 하다가 끊기고 하다가 끊긴 생각의 결론과 별로 동떨어지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잠을 설쳐서인지 더욱 까맣게 그늘진 눈 밑의 색 때문인지 그의 표정은 상대적으로 무거워보였다.

 

누구 얘긴데?”

아는사람이라니까?”

누구? 아카아시?”

거기서 아카아시 얘기가 왜 나와!??”

 

그가 내린 결론과 타인이 내릴 결론이 같은지 비교하기 위해 다른 사람 얘기인 척 말했더니 갑자기 아카아시가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거냐고 넘겨짚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보쿠토가’ ‘아카아시에게’ ‘느끼는 감정이었지만 아카아시도 영 관련이 없는 건 아니었으므로 그는 괜히 찔려 버럭 소리쳤다. 코노하는 귀를 후비적거리며 투덜거렸다.

 

아니면 아닌 거지 왜 과민반응이야?”

이건그러니까그래, , 쿠로오 얘기다아!”

쿠로오? 네코마 주장?”

, 그래!!”

 

미안 쿠로오. 졸지에 금단의 사랑을 목격한 이후 이유도 모르고 그 상대방에게 (보쿠토의 설명을 듣다가 분노한 코노하의 표현에 따르면) 스토킹, 참견, 집착 등 과하게 신경을 쓰다가 결국 그게 좋아하는 마음이었다더라 깨닫게 된비운의 사나이로 낙인찍힌 그에게 속으로 심심찮은 사과를 하며 보쿠토는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코노하와 사루쿠이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쿠로오를 떠올리는 것 같아 조금 더 양심이 찔렸다.

 

하긴. 아카아시가 연애하면 되게 담백하게 할 것 같지 않아? 스토킹, 참견, 집착 다 안 할 것 같은데.”

스토킹 참견 집착 아니라니까!?”

보쿠토 넌 객관적인 눈을 잃었어. 그게 스토킹 참견 집착이 아니면 뭐야?”

 

……내가 아카아시에게 정말 심했던 건가!? 보쿠토는 억울한 와중에도 약간 흔들렸다.

 

아니야, 나는 아카아시가 생각보다 뜨겁게 사랑할 스타일이라고 봐.”

에에, 여자애들한테 고백 받아도 그냥 깍듯하게 감사인사 하는 녀석이?”

다 마음에 안 들어 해서 그렇지, 마음에 드는 애 나타나면 싹 바뀌지 않을까?”

 

아카아시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보쿠토는 두 번의 예를 떠올리며 우울하게 고개를 떨궜다.

 

그러고 보니까 아카아시는 고백도 많이 받는데 왜 연애를 안 하지?”

이상형도 모르지?”

혹시 우리 몰래 연애라도 하고 있는 거 아닐까?”

무슨 연애야!”

 

보쿠토가 당황한 목소리로 버럭 소리쳤다. 코노하와 사루쿠이는 눈을 꿈뻑거렸다. 너무 과민하게 반응한 것 같았지만 아카아시가 연애를, 그것도 남자와 하고 있다는 추측이라도 나오면 안 될 것 같아 그는 서둘러 변명에 가까운 말을 쏟아냈다.

 

아카아시 연애 안 해! 나랑 맨날 연습 하느라 바쁜데어떻게 연애를 하겠어!?”

그건 그래.”

뭐야, 아카아시가 연애 못하는 건 너 때문인데 왜 예민하게 굴어?”

하긴. 부주장이 주장이 할 일까지 도맡고 있으니 시간이 있나.”

보쿠토가 책임져야겠네.”

 

킬킬 웃으며 코노하가 농담을 던졌지만 보쿠토의 어깨는 우울하게 처졌다.

책임이라. 그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무슨 얘기 하십니까?”

 

그때 대화의 주제이던 아카아시가 나타났다. 코노하와 사루쿠이는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보쿠토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준 뒤 빠르게 사라졌다. 체육관 비품실에 남은 것은 보쿠토와 아카아시뿐이었다. 보쿠토는 혹시 이야기를 다 들은 건가 싶어 식은땀이 삐질 났다.

 

제 연애 얘기는 왜 나온 겁니까?”

 

허억!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다 들었어!??”

처음부터 들었으면 인과를 묻지 않았겠죠. ‘그러고 보니까 아카아시는 고백도 많이 받는데 왜 연애를 안 하지?’부터 들었습니다.”

 

그럼 중간 즈음부터 들은 건가. 처음부터는 듣지 못한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냥어쩌다 보니까 그랬어. 아카아시 험담한 건 아냐.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보단 보쿠토상이 책임을 져야 할 대화 같았으니까요.”

 

, 책임? 보쿠토가 침을 꼴깍 삼켰다. 금방이라도 말하고 싶었다. 아카아시 네가 들은 책임, 나는 진심으로 받아줄 생각이 있다고. 하지만 아카아시가 먼저였다.

 

제 얘기 숨겨주시려고 애쓰시는 모습 잘 봤습니다.”

, .”

감사해요.”

아카아시?”

책임은 안 지셔도 되니까 우울해하지 마시고요.”

 

아카아시가 조금 눈을 내리깔며 뒤를 돌았다. 책임 안 져도 되니까 우울해하지 말라고? 내가 우울해한 건 맞지만 책임지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닌데뭔가 아카아시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아카아시!!”

 

보쿠토가 서둘러 그를 따라나섰지만 비품실 밖으로 나선 순간 연습 재개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 그에게 말을 걸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아카아시는 연습 내내 평소와 다른 모습이 없었지만 보쿠토는 그의 분위기를 이상하게 느꼈다. 뭔가 힘이 없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 우울해 보이기도 했다. 다른 부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오직 그의 눈에만 보이는 건지 다른 이들은 그저 희희낙락 웃고만 있었지만 보쿠토는 영 신경을 떼어낼 수 없어 힐끗힐끗 자꾸 아카아시의 눈치만을 봤다. 그가 뚜렷한 근거를 가지게 된 것은, ‘왜 자꾸 쳐다보십니까?’라고 할 법한 아카아시가 묘하게 그의 시선을 모르는 척 하고 있다는 사실 덕분이었다.

 

그게 새삼스럽게 서운하고 마음이 좋지 않을 것을 보면 그가 가진 감정이 단순 선후배 사이의 좋아한다라는 종류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스스로가 한심하기까지 했다. 아마좋은 후배, 좋은 세터, 좋은 부주장이라는 허울 좋은 벽에 가로막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팔굽혀펴기를 하다가 무심코 좋아한다는 생각을 떠올려낸 직후 바닥에 쾅 주저앉아버리긴 했지만 회복은 빨랐다. 달라질 게 없었기 때문이다. 자각하지 못했을 뿐 그는 어쩌면 꽤 오래 전부터 아카아시를 마음에 담아 이 떨림이, 이 서러움이, 이 불안함이, 이 설렘이 오래되어 익숙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보쿠토는 아카아시와 함께 하교를 하는 동안 별나게 치솟는 감정들을 억누르느라 고생해야 했다. 완벽하게 이 감정들을 아우를 수 있는 이름을 붙이게 되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불쑥불쑥 충동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그를 우울하게 만드는 한 가지 사실이 그러지 못하게 하는 한 가닥 정지선을 만들었다.

 

아카아시. 오늘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전 같았으면 아무렇지 않게 물어볼 수 있었을 주제를 어쩐지 망설이고 주저하며 묻는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내가 물어도 되는 범위인가, 내가 행동해도 되는 범위인가, 아카아시가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지 괜히 조심스러워졌다. 전에도 이렇게 물었던가? 긴가민가하며 묻자 여상한 대답이 들렸다.

 

아니요.”

 

딱 잘라 아니라고 대답하는데 표정은 그게 아닌 것 같아서 보쿠토는 더 캐물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며 눈을 굴렸다. 그 이전에는, 계속 신경 쓰였던 책임이라는 말도 해명하고 싶었고.

 

그럼 아까 있잖아, 책임 안 져도 된다고 했던 거 말이야.”

사실입니다. 안 지셔도 됩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선배들이 장난으로 한 말일 테고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 없습니다. 표정 푸세요.”

 

이게 아닌데? 보쿠토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카아시는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저는 이만. 약속이 있어서 가봐야 할 것 같네요.”

 

자리를 떠나려는 아카아시가 보여 보쿠토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팔을 잡았다. 뒤를 돌아본 아카아시는 곤혹스러워 보였다. 그 모든 행동이 어쩐지 이 자리를 절실하게 도망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그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얘기 더 하고 가.”

시간 없습니다. 약속 있다니까요.”

무슨 약속인데?”

그 사람 만나러 갑니다.”

 

보쿠토는 그 사람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왕창 구겨졌다. 자각하지 못했을 때도 기분 나쁜 얼굴이었지만 자각하고 나니 더 기분이 나빠졌다.

 

어제 그렇게 헤어져놓고는 또 만나겠다고??”

걱정할 일 없습니다. 다들 어느 정도 안정된 직장이 있기 때문에 허튼 짓은 안 합니다.”

그래도, 그렇지만!”

보쿠토상.”

 

아카아시가 묘한 얼굴로 그를 불렀다.

 

저는 보쿠토상이 왜 자꾸 참견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카아시.”

이건 제 문젭니다. 저는 분명신경 쓰지 말라고도 했고요. 제 말 기억하시죠.”

 

보쿠토는 처음 아카아시에게 그가 알게 된 것을 내어보였을 때 들었던 말을 똑똑히 기억했다.

 

[‘감당할 수 없으면 신경 끄세요.’]

 

보쿠토는 주먹을 꽉 쥐었다.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말. 지금은 어렴풋이라도 해석할 수 있는 말. 감당이라는 것이 그가 생각하고 있는 책임과 같은 말이라면.

 

가보겠습니다.”

 

아카아시가 다시 그의 손을 뿌리치고 뒤를 보였다. 아무도 없는 골목. 보쿠토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말했다.

 

가지마.”

 

아카아시가 잠시 흠칫했다. 보쿠토는 아카아시에게 다가가 그를 억지로 돌려세웠다. 마주한 그의 얼굴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카아시는 조용히, 또박또박 말했다.

 

그 말,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몰라. 그렇지만 아카아시가 안 갔으면 좋겠어. 가지마.”

 

모른다는 말에 아카아시가 미간을 미미하게 찌푸렸다. 입술을 잘근 깨물었던 아카아시는 곧 조금 억울한 투로 말했다.

 

자꾸 왜 이러십니까?”

…….”

제가 분명히 그랬잖아요. 감당할 수 없으면 신경 끄시라고. 그런데 왜 자꾸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쓰고자꾸 이러시면 제 좋을 대로 해석하게 된단 말입니다.”

 

보쿠토는 그제야 아카아시의 말을 조금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감당할 수 없으면 신경 끄라고 했다. 그런데 보쿠토는 여지없이 꾸준히 신경을 썼다. 보쿠토도 제대로 몰랐던 것을 아카아시는 벌써부터 가정하고, 고민했던 모양이었다.

 

감당할 수 있다면? 계속, 계속 신경 써도 되는 거야?”

뭐라구요?”

아카아시 네가 사귀게 되어도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거 알아.”

 

보쿠토가 눈 밑이 퀭하고 어둑해질 정도로 밤잠을 설친 이유는 그가 아카아시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 이상하다거나, 무섭다거나, 싫어서가 아니었다.

 

그게 좀 슬프긴 해. 그렇지만……

 

그냥 걱정이 되고 막막해졌기 때문이었다. 만난 사람들 모두 최소 한 방면에서 잘나 보였더라도 아카아시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다. 하물며 같은 배구부, 매일 추가연습을 해달라고 떼를 쓰는 어린아이 같은 주장을 좋아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쿠토는 간밤의 걱정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뭉개고 짓밟았다. 감당. 책임. 할 수만 있다면 지고 싶었다. 설령 아카아시가 평생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아카아시가 만나온 사람들보다 훨씬 더 아껴주고 싶었다.

 

보쿠토는 갑작스러운 말에 너무도 놀라 얼음처럼 굳어져버린 아카아시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언제 이렇게 뛰어본 적이 있으려나 싶을 정도로 심장이 쾅쾅 뛰었다. 손끝까지 뛰는 피가 너무 무거워 팔을 드는 것도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지만, 보쿠토는 기어코 해냈다.

 

나도 아카아시 머리카락 이렇게 넘겨주고 싶고

 

보쿠토의 손가락이 귀 뒤를 거쳐 아카아시의 볼에 닿았다. 손바닥이 볼을 완전히 감싸고 엄지는 그의 눈 밑을 쓸었다. 아카아시의 눈꺼풀이 빠르게 깜빡거렸다.

 

볼 이렇게 만져도 보고 싶고눈가도 쓸어주고 싶어.”

 

아카아시의 볼이 뜨겁다고 느껴진 순간 보쿠토는 화들짝 놀라며 손을 떼어냈다. 꼼지락 꼼지락, 아카아시의 온기를 느꼈던 손바닥을 저도 모르게 다른 손으로 붙잡아 만지작거렸다. 아카아시가 늘 행하는 습관이라도 옮은 것 같았다. 보쿠토는 도통 말이 없는 아카아시에게 횡설수설 말을 이었다.

 

나는! 솔직히 말하면 아카아시한테 이런 거 저런 거 다 하고 싶어! 사실 아카아시가 말하는 감당이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아니 그것보다, 나는 아까 애들이랑 한 얘기 중에서, 책임지기 싫었던 게 아니라나는 오히려 책임지고 싶은데 아카아시가 좋을지 모르겠어서그러니까 나는 책임지고 싶고감당도 하고 싶고아카아시가 만난 사람들 말고 내가 그렇게 하고 싶으니까! 아카아시는 어차피 아무도 좋아하지 않겠지만 나는 상관없고

 

멍하니 보쿠토를 바라보던 아카아시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얼떨떨한 감이 있었다.

 

제가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구요.”

지금까지 아무도아니야?”

 

설마 정말로 진심으로 만난 사람이 있었다던가!? 보쿠토가 다른 의미로 충격을 받았을 때 아카아시는 어느새 침착함을 되찾고 말했다.

 

보쿠토상은여전히 저에 대해 잘 모르시는군요.”

?”

제 연애가 불완전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던 건 아닙니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아카아시의 말에 보쿠토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끼며 당황했다.

 

보쿠토상을 조금이라도 골라내서어떻게든 완전하게 만들어보려고 아둥바둥했는데그럴 필요가 없었네요.”

 

나를 골라내? 완전하게?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려던 보쿠토의 얼굴을 아카아시가 끌어당겼다. 보쿠토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아카아시의 갑작스러운 행동으로 지나치게 얼굴이 가까워진 것도 있었지만, 그가 환하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얼굴에 넋을 잃고 있는 사이 아카아시가 말했다.

 

제가 얼마나 보쿠토상을 신경 썼는지는 아마 평생 가도 모르실 겁니다.”

쉽게 말해줘.”

 

아카아시는 웃고 있었다. 그의 말은 어려웠지만 표정에 모든 걸 걸어보기로 했다. 보쿠토는 마른침을 삼키고 말했다.

 

아카아시도, 나를 좋아한다는 소리야?”

 

물어봐놓고는 애가 닳아, 보쿠토는 제대로 대답을 듣기도 전 아카아시의 입술에 한 번 입을 맞췄다.

 

아카아시 나 좋아해?”

 

눈을 크게 뜬 아카아시가 너무 좋아서, 닿았던 뜨거운 입술의 감각이 너무 기뻐서, 참지 못하고 다시 한 번 입술을 길게 머금었다가 떼어냈다. 그제야 아카아시는 입을 가리고 한발짝 뒤로 물러났다. 붉어진 얼굴이 보였다.

 

이미 알고 계신 것 같은데요.”

아닌데? 모르겠는데?”

 

난 말 안 해주면 몰라. 보쿠토가 중얼거렸다.

 

…….”

 

아카아시는 조금 망설이더니 그새 습관적으로 매만지던 양손을 떼어내 멀어졌던 그를 다시 바짝 끌어당겨 말했다.

 

평생 불완전하게 살아갈 각오가 되어 있었을 정도로, 저는

 

아카아시는 뒷말을 보쿠토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귀에 가깝게 속삭이고 물러났다. 보쿠토의 얼굴에 함지막하게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아카아시는 붉어진 귀끝만을 보이며 휙 뒤를 돌아 먼저 빠르게 골목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보쿠토는 그 뒤를 냉큼 따라가며 이리 따라붙었다가 저리 따라붙었다가 앞을 가로막기도 했다가 폴짝폴짝 뛰기도 했다. 아카아시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빤히 쳐다보지 마세요. , 난 아카아시 보고 싶은데, 안 돼?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럼 괜찮은 거지?! 그러네요. 기분이 한껏 좋아져 방방 뛰는 보쿠토는 최근 들어 저조했던 컨디션이 저 하늘 꼭대기만큼 회복된 것을 느꼈다.

 

헤이헤이 아카아시~! 이대로 집 가기는 아깝지 않아? 맛있는 거 먹고 가자, 맛있는 거!”

 

[‘평생 불완전하게 살아갈 각오가 되어 있었을 정도로, 저는 보쿠토상을’]

 

네가 불완전하든 완전하든 내가 같이 있을 수 있게 되어서 좋아.

보쿠토는 그렇게 생각하며 당황한 아카아시의 손목을 붙잡고 와다다 달려갔다. 잠시 한숨소리가 스쳤지만 이내 손목을 빼고 손을 슬며시 잡아오는 손이 있어 보쿠토는 더욱 행복하게 웃었다.

 

 

 

 

 

아카아시 쪽의 이야기는 일부러 적게 넣었습니다.

다만... 상편에서 등장하는 모브 말투는 최대한 보쿠토랑 비슷하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편에서 등장하는 모브도 눈동자 색이 노랑입니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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