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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단문 연습

별골짜기 2016. 4. 6. 21:36

커플링

진단 / 단문 연습

 

 

 

 

1. 히나타 쇼요씨에게 내려진 초능력은 엄청난 행운입니다. 재물복으로써 어떤 이유에서든지 돈이 굴러들어오게 되있습니다. 부작용으론 수면시간이 약 3배는 늘어납니다.

카게야마 토비오씨에게 내려진 초능력은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찌며 모든 세균에 면역되있는 강철위장입니다. 부작용으론 수면시간이 약 3배는 늘어납니다.

 

카게야마!!! 토스 올려줘!!!”

쉬는시간이 되자마자 날듯이 카게야마의 반으로 쳐들어온 히나타가 외쳤다. 막 지루했던 수업이 끝난 터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시선이 쏠렸다. 그 중에서 자고 있던 원망스러운 눈초리도 따라 붙은 터라 히나타는 미안미안!’이라고 웃으며 사과한 뒤 카게야마의 책상 앞에 섰다. 다른 학생들과 다를 바 없이 마찬가지로 비몽사몽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카게야마가 게슴츠레 뜬 눈으로 히나타를 보자 잠시 주춤거리며 말했다.

, 뭐야왜 무섭게 그렇게 봐?”

너 무진장 시끄럽다고 멍청아.”

나 보고 싶었으면서 왜 그래~? 부끄러우세요?”

카게야마의 얼굴이 더 험악해지자 히나타가 힉, 소리를 내며 재빨리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 농담도 못하냐! 카게야마는 그제야 자리에서 슬렁슬렁 일어났다. 가방에서 커다란 봉투를 꺼내든 카게야마가 오니기리 다섯 개를 꺼내들어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게 고작 쉬는시간에 먹는 양이라니. 언제 봐도 카게야마의 위장은 신기하기만 했다. 하지만 히나타의 기준에서 이 금 같은 쉬는시간을 먹는 것으로 보내는 건 몹시, 아주아주 낭비였다. 어차피 먹어봤자 살도 안 찌면서!! 히나타는 카게야마에게 외쳤다.

토스 올려줘!”

시끄러워.”

어째 눈치를 보니 쉽사리 올려줄 생각이 아니다. 하여, 히나타는 필살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나 오늘 오다가 돈 주웠는데~”

아니나 다를까 카게야마의 귀가 쫑긋, 했다.

자판기에서 뭘 뽑아먹을까나~ . 간만에 쏘려고 했는데 토스 올려줄 사람 찾아서 같이 먹어야겠다. 스가상한테 가볼까?”

카게야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히나타를 끌고 교실 밖으로 나왔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실실 웃는 히나타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잘거렸다.

카게야마 카게야마. 내가 요구르트 뽑아주는 대신에 토스 많이 올려줘야 한다? 너 또 요구르트 하나에 토스 한 번 이러면 안 돼? 아무리 오니기리 먹으면 목이 마르다고 해도 그건 좀 치사하지, 안 그래?! 물론 지난번에 네가 치사했다는 건 아닌데……

히나타가 잠시 말을 멈췄다. 계단 즈음에 이르러 걸음이 느려졌기 때문이었다. 히나타는 경악했다.

카게야마너 설마 지금

.”

카게야마가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계단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나 잔다.”

여기서 자면 어떡해 멍청야마!!”

히나타가 카게야마를 흔들었지만 이 상태에서 일어나는 건 기적이라는 사실을 히나타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아마 최소 5분은 자야 눈 깜빡했다할 수준이었으니까. 오니기리는! 팩요구르트는! 그리고 내 토스는!! 자리에서 방방 뛰며 억울해하던 히나타는 순간 몸 상태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벼락같이 깨달았다. 몸이 괜히 축 쳐지고눈꺼풀이 무겁고정신이 가물가물하고이건 필시

……젠자앙!!

사돈 남말할 처지가 아니었어! 히나타가 카게야마가 벽에 기대 꾸벅꾸벅 잠든 계단 옆에 딱 붙어 앉았다. 근처를 지나가던 학생들이 쟤네 또 아무데서나 자라고 수군거리는 것도 모르는 채 히나타는 카게야마의 어깨에 기대 잠이 들고 말았다.

 

  공미포1152

 

 

2. 44RT 되면 카게히나 리얼물로 슬픈분위기로 눈이 오는 군요.라는 대사가 들어가는 연성을 합니다.

 

카게야마는 홀로 체육관을 나섰다.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체육관을 들어갈 땐 푸른 하늘을 보았는데 나올 때는 하늘이 까맣게 물들어 있다는 차이만으로 충분했다. 연습 중간중간마다 괜찮냐고 물어보는 질문이 평소보다도 많았지만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딱히 틀린 대답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의 토스는 평소처럼 정확하고 날카로웠으며 좋은 방향으로 날아갔다. 오히려 너무 정확해서 기분이 나쁘다는 츠키시마의 익숙한 빈정거림도 들었다.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성큼성큼 걷는 뒤로 발자국을 남기는 와중 카게야마는 사박사박 그의 것이 아닌 발소리를 들었다. 순간 울렁거리는 심장에 그가 뒤를 돌았다. 하지만 잔잔하기만 한 미소를 걸친 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카게야마는 힘겹게 표정 관리를 했다. 스가와라도, 충분히 반갑지만……

괜찮아?”

표정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무척 죄송하게도 스가와라가 따뜻하게 물었다. 체육관에서 들었던 수많은 질문과 다르지 않은 내용 중 하나였지만, 카게야마는 그때와는 달리 쉽사리 대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무리하는 것 같아 보였어.”

저는……

괜찮습니다, 라는 단어가 빠져나오지 못해 카게야마는 고개를 숙였다. 입가에서 빠져나오는 건 단지 공기 중에서 얼어붙은 더운 숨뿐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솔직하게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카게야마의 빈 손이 새빨갛게 얼었다. 바보, 멍청이라고 투덜거리며 제 장갑을 빼 껴주던 얼굴이 떠올라 카게야마는 차라리 눈을 감았다.

카게야마, 굳이 괜찮은 척 하지 않아도 돼.”

카게야마가 얼마나 마음을 앓았는지, 얼마나 부단히 노력했는지, 지금은 얼마나 괴로울지 알고 있기에 스가와라가 말했다.

히나타도 분명……

하지만 완전한 문장이 되지 못하고 끝이 흐려진 말은 겨울바람에 휩쓸려 완전히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희망적인 말을 건네는 것이 과연 좋은 방법일까. 지금까지도 줄곧 그 확신 없는 가망에 매달려 견뎌왔을 텐데, 사정없이 확실하게 산산 조각난 마음이 과연 온전할까…….

카게야마는 고개를 들었다. 앞을 보는 그의 시야에 밤하늘을 타고 하나둘 내려오는 눈송이들이 보였다.

눈이 오는군요.”

카게야마가 중얼거렸다. ‘히나타가 울 때도 그랬어요.’

[‘카게야마 미안해. 나는나는 널 좋아하지 않아’]

카게야마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스가와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공미포 902

 

 

3. 카게히나의 AU: 악마X오컬트 중2병어때요? 아니면 학생회장x불량학생. 네임버스를 곁들여서!

 

악마 소환하는 법……

히나타가 중얼거리며 인터넷을 검색했다. 그가 끼고 있는 두꺼운 안경 렌즈에 모니터 불빛이 비쳤다. 어두침침한 방에서 과하게 빛나는 화면을 오래 보고 있어서인지 눈도 침침한 것 같아 손으로 눈을 비볐다. 시간이 꽤 늦었기도 하지만 그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정이 넘어간 시간이니 악마를 불러내 계약하기에는 딱 좋은 환경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요 며칠 새 인터넷을 이 잡듯 뒤졌지만 악마를 소환하는 방법에 대해 올라온 사이트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대부분이 가짜거나, 사기를 치는 일이 허다했다. 토마토, 종이, 붓 등과 같은 얼토당토치도 않은 재료를 써서 의식을 지내라는 식의 허위정보가 너무 많았다. ‘를 쓰는 거면 몰라도 토마토라니. ‘가죽이라면 몰라도 종이라니. ‘손가락이면 몰라도 붓이라니……! 기본적인 상식도 없는 사기꾼들이라며 히나타가 분개했다.

하지만 그에게 필요한 것은 절차였다. 재료만 가지고는 안 되는 일이었다. 히나타는 그래서 한 사이트에 익명으로 글을 올려 악마를 소환하는 법을 물었다. 이때를 위해 열활을 하며 모은 포인트도 싸그리 긁어모았으니 분명 고수 중의 초고수가 그에게 답변을 달아 주리라 기대했다. 히나타가 해당 사이트로 들어가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답변을 확인했다. 예상대로 근사한 답변이 달려 있었다. 히나타는 기쁜 마음으로 악마를 소환하기 위한 절차를 옮겨 적었다.

답변에 적힌 대로 하나하나 절차를 밟다 보니 남은 것은 단 하나였다. 소환진 가운데에 자신의 피를 한 방울 떨어뜨릴 것. 히나타는 겁이 나는 것과 동시에 기대가 됐다. 이것만 하면 정말 악마를 만나볼 수 있는 건가? 계약을 맺으면 무슨 소원을 빌까? 그는 방 가운데에 대문짝만하게 그려둔 소환진 위에서 떨리는 바늘 끝으로 살짝 손가락을 땄다. , 겨우겨우 낸 피가 소환진 위에 떨어졌다. 그런데 그 순간.

.”

히나타는 당황한 얼굴로 팔목을 부여잡았다. 소환진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할 정도로 팔목이 아팠다. 정확히는 팔목에 난 우둘투둘한 흉터 때문이었다. 아주 옛날부터 있던, 부모님의 말에 위하면 태어날 때부터 달고 나온 흉터. 한 번도 아픈 적 없는 이 흉터에 후끈후끈 인두로 지지는 것 같은 고통이 몰렸다. 히나타는 신음을 삼키며 팔목을 들어올렸다. 부여잡은 손을 떼자 이상한 상형문자로 그려진 듯한 흉터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 이거 왜 갑자기 아프지. 너무 아파. 악마 소환해보겠다고 한 게 잘못이었을까. 소환진의 흔들림이 멈춰들었을 때 쯤 히나타는 끼무룩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뭐야.”

사뿐히 그 위를 밟은 장신의 남자가 까만 눈동자로 바닥에 널브러진 히나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기껏 소환해놓고선 기절해버린 경우는 처음이라 카게야마는 당황했다. 소환진에서 필요한 건 딱 한 방울의 피인데 멍청하게 다 쏟아 붓기라도 한 건가. 카게야마는 발로 히나타를 뒤집었다. 축 늘어진 팔목이 보였다. 붉게 달아올라 있는 흉터를 본 카게야마는 인상을 찌푸렸다.

…? 내 이름이 저기 왜 있지.

 

  공미포 1143

 

 

4. 카게히나의 키워드는 새벽 2, 강의실, 슬라임, 츤데레입니다! 잘 엮어서 연성해보세요! 파이팅!

 

후으

히나타는 도망쳐 들어온 강의실 안에서 허리를 숙였다. 가까운 책걸상에 팔을 대고 침착하게 숨을 고르는데도 눈앞이 핑글핑글 돌아 죽을 맛이었다. 아 여기서 정신 놓으면 안 되는데. 보나마나 과 주점에서는 그를 찾고 있을 것이다. 특히 그를 테이블에 앉히지 못해 안달 난 선배들이 어딨냐고 찾고 있을지도 몰랐다. 후배들 술 취해서 보내기가 취미이자 특기인 그들 테이블에 붙들렸다가 화장실을 핑계로 도망쳐 나오긴 했는데 다시 돌아가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그 때문에 곤욕을 치를 선배들에게는 죄송하게도 일단 살고 봐야 했다.

히나타는 숨을 몰아쉬며 주머니에서 더듬더듬 핸드폰을 꺼냈다.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2시다. 축제라고 과 주점에 쳐들어온 진상 선배들이 눌러 붙은 지는 4시간이 되었다. 신입생들이 하나둘씩 끌려가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신 건 약 2시간. 히나타는 이렇게까지 술을 단시간에 마셔본 적이 없어서 더 괴로웠다.

의자에 앉을 힘도 없었던 터라 강의실 벽에 스르르 미끄러져 주저앉았다. 뜨겁게 달아오른 볼이 차가운 벽에 닿자 좀 기분이 나아졌지만 정신이 온전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나는 화장실 간 걸로 알고 있으니까…… 내가 여기 있는 건 아무도 모르겠지……

. 히나타.”

으악!”

속편한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히나타는 자신의 이름이 불려 깜짝 놀랐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건 항상 그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카게야마였다. 벽에 기대 주저앉아 있는 그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상대가 그 카게야마 토비오라는 것보다도, 히나타는 일도 안하고 여기서 농땡이를 피우고 있었다는 것을 들켜 당황했다.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겨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오는 카게야마는 분명 한소리를 할 것이다. 나름 바락바락 대들기는 했지만 같은 과 동기 츠키시마의 말에 따르면 쨉도 안 되는 싸움이라고 했다. RPG게임에 비유하자면 카게야마는 만렙 용사에 히나타는 쪼렙던전 전용 슬라임 정도. 너무 과한 비유라고 생각했지만, 부정할 수는 없었다. 에이, 생각하니까 억울하다. 이번에 뭐라고 하면 최대한 받아쳐줘야지. 나는 일단 살고 봐야겠다고.

멍청아괜찮냐?”

?”

그런데 예상 못한 질문이 들렸다. 평소보다 분위기나 목소리도 누그러져 있었다. 가뜩이나 술에 절어 잘 굴러가지 않는 뇌가 느리게느리게 회전했다. 시야가 핑글핑글 도는데 카게야마도 빙글빙글 돌고. 멍하니 대답을 하지 못하고 카게야마를 쳐다보자 슬쩍 인상을 찌푸리는 것 같았다. 그가 손을 뻗고, 히나타의 볼을 만졌다. 그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보다 차갑다고 느끼는 게 더 빨랐다. 히나타는 자기도 모르게 카게야마의 손을 잡고 얼굴을 부볐다.

뭐야?? 히나타, , 멍청아!”

카게야마손 차가워서 좋아.”

, 뭐라는 거야

그렇지만 카게야마는 히나타에게서 손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벽에 기대앉은 히나타 옆에 조심스럽게 붙어 앉았다. 다소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행동마저 그렇진 않은 것 같았다. 아까부터 느낀 거지만 분위기도 한결 풀어져 있었다.

그러게 왜 주는 대로 마시냐?”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냐아

? 싫다고 하면 되잖아.”

너 같은 만렙은 몰라이 쪼렙 슬라임의 비애를

카게야마는 상대가 쉽게 볼 수 없을 정도로 인상이 험악한 것도 있지만, 의사 표현에도 스스럼이 없어 진상 선배들에게 딱 잘라 싫다고 거절할 수 있으니 이렇게 하나도 안 취하고 멀쩡한 거겠지. 나는 그게 안 돼서 이 모양이고. 억울하다 억울해. 억울해……. 웅얼거리며 이젠 꾸벅꾸벅 조는 히나타의 볼을 처음으로 마음껏 어루만지며 카게야마는 중얼거렸다.

슬라임?”

생김새라면 대충 알고 있었다. 물렁물렁 말캉말캉하게 생겼지. 슬라임이 이런 느낌인가. 카게야마는 눈을 감고 잠든 히나타를 깜깜한 강의실 안에서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공미포 1425

 

 

5. 리에야쿠 의 연성 키워드::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정제가, 때론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리에프 이 자식! 당장 이리 오지 못해!?”

으아아아 야쿠상, 잘못했어요!”

우당탕쿵탕, 책상 의자가 넘어지고 교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난데없는 전투에 쉬는시간을 맞아 잠들었던 학생들은 화들짝 놀라 이 사태의 주범을 쳐다보았다. 교실을 엉망으로 헤집어놓는 것이 필사적으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듯한 리에프라는 사실 때문인지 아니면 그를 잡아먹을 듯이 달려드는 3학년이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고 있어서인지 그들은 아무도 총대를 메고 말리려 나서지 못했다. 결국 책상과 의자들이 성하지 못하게 여러 개 뒤집어져서야 리에프가 귀를 잡히는 것으로 상황이 일단락되었다.

학교 뒤뜰로 나와서야 귀를 놓은 야쿠가 무릎으로 리에프를 콱 찍었다. 얼얼한 귀와 아픈 다리를 동시에 문지르느라 리에프의 양손이 바빴다. 아파요오. 답지 않게 불쌍한 척을 해보았지만 이미 면역 내성 만빵 야쿠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여전히 날카롭게 노려보는 시선을 확인한 리에프는 곧 태도를 바꾸어 말했다.

야쿠상도 참, 뽀뽀하는 사진 찍는 게 뭐 어때서요!”

내가 자고 있을 때 찍은 거잖아!”

자고 있을 때나 깨어 있을 때나 둘 다 귀여운데……

그럼 그걸 혼자만 보고 있을 것이지 왜 메신저에 올려!??”

어차피 본 사람도 없……

야쿠의 얼굴이 일그러진 것을 빠르게 캐치한 리에프가 고분고분해졌다.

죄송해여그건 진짜 잘못했어여

손발이 닳도록 싹싹 빌어도 야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리에프는 방법을 바꾸어 허리를 숙인 뒤 야쿠와 시선을 맞췄다.

아아. 야쿠사앙, 이 사랑스러운 후배가 그동안 야쿠상한테 얼마나 잘했어요! 리시브 연습도 척척 해내지, 등하교길 짐도 들어주지!”

야쿠는 기억을 되짚었다. 근래 들어 리에프가 그의 말을 잘 듣긴 했다. 뭐 언뜻 보면 수긍하고 납득할만했다. 다만 야쿠는 신중하게 굴 생각이었다. 기억 중 아무거나 골라 들어서 살펴보면 정작 약이 아닌 독인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야쿠가 부드럽게 웃었다. 먹힌 건가? 싶어 헤 웃는 리에프에게 그가 말했다.

네가 리시브 연습을 한 이유가 뭐였더라? 내 키 가지고 놀리셔서 그런 거 아니었나?”

순간 리에프가 쩌억 굳었다.

등하교길 짐 들어주면서 맨날 뭐라고 했더라? [‘야쿠상도 들어줄까요? 아님 업어줄까요? 야쿠상 작아서 무지 가벼워요!’]라고 했었지?”

…….”

…….”

…….”

이리 와, 등짝 대!”

으악!”

 

  공미포 1195

 

 

6. 후타쿠치 : 하이엘프 출신 궁수. :H 지력:G 민첩:B 매력:I 망상력:★★ / 모니와 : 왕자를 사랑한 마왕. :D 지력:I 민첩:C 매력:E 장비 제련술:SS

 

한걸음 내딛기만 해도 쏟아지는 시선. 눈길이 스치기만 해도 날아드는 호감. 연극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처럼 그 누구를 배경으로 해도 집중될 정도로 잘생긴 남자가 어깨에 매달린 화살통을 매만지며 짜증스럽게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얼굴을 찡그려도 지나가는 이들이 한 번 더 쳐다볼 정도로 잘생겼으니 웃으면 그 인기는 더할 테지만, 아쉽게도 그가 샤방한 미소를 꽃피울 때는 상대방을 비꼬고 욕할 때뿐이었다.

고귀한 하이엘프라고는 하지만 그게 노블리스 오블리제, 뭐 이런 걸로 연결되는 건 아니었고 그저 높은 자존감과 바닥을 기는 배려심 정도로 나타난다고나 할까. 특히 후타쿠치는 하이엘프들 중에서도 유별나게 성격이 까다롭고 까탈스럽기로 유명한 터라 그를 아는 이들이 지금의 후타쿠치를 보게 된다면 백이면 백 놀랄 것이다. 짜증스럽게 찡그려진 얼굴에 서린 게 초조함이었으니 말이다.

후타쿠치는 다른 한 손으로 쥐고 있는 활대를 꽉 쥐고 초조하게 입술을 짓이겼다. 저 멀리 마왕성이 보였다. 이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는 마왕이 사는 지역이라고는 하지만 어째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어둠이라는 장막으로 가려지지도 않고 특별한 트랩이 숨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군대도, 경비도 없었다. 심지어 이 근처엔 일반인들이 사는 마을까지 있다. 그들은 마왕을 무서워하기는커녕 친근하게 여겨 그의 성에 밥 먹듯 들락날락거리기도 했다. 처음 마왕을 때려잡으러 왔는데 5분 만에 실상을 파악하고 얼마나 기가 차던지. 마왕을 때려잡음으로서 본보기를 세워야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런 주제에 그가 마왕성을 제집 드나들듯 다닌 지는 꽤 되었다.

후타쿠치가 성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연무장이 보였다. 거기서 팔을 걷어붙이고 열심히 무기들을 낑낑거리며 옮기고 있는 무려 마왕이 보였다. 후타쿠치가 이곳으로 오는 내내 초조했던 이유인 왕자를 생각하면서 훌쩍훌쩍 울고 있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지금 보이는 모습도 가관이었다. 슬쩍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후타쿠치는 마왕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사르르 웃는 얼굴로 탈바꿈했다.

? 후타쿠치.”

모니와상, 또 뭐하고 있는 거예요.”

아아. 마을 사람들이 제련을 좀 부탁해서.”

마왕에게 제련을 부탁하는 간 큰 마을 사람들이나, 그렇다고 덥썩 부탁을 받아드는 마왕이나 그게 그거였지만 후타쿠치의 마음이 쓰이는 건 명백히 후자였다. 세간에 퍼져 있는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의 마왕을 처음 실체를 마주하고 얼마나 어이가 없었던가. 힘도 약하고 둔하지, 거기에 뭐? 왕자를 사랑해서 자길 죽이러 온 왕자 무기 제련해주고 내보내? 후타쿠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아마 모니와는 왕자가 오면 언제든 자리를 박차고 달려갈 것이다. 자기 사랑을 받아주겠다고 선언하면 뭐 품에 안겨서 애교라도 부리려나? 제길, 그것 참 상상하기도 싫은 광경인데. 근처에 일반인이 마을을 꾸리는 것까지 허락할 정도이니 그 마음이 어마무시하겠지. 아마 억지로 사랑에 빠지게 하는 약까지 만들어서 왕자에게 마시게 한 다음 달려들지도 모른다.

……젠장.”

끝없이 펼쳐나가는 안 좋은 시나리오에 후타쿠치가 중얼거렸다. 용케 들은 모니와가 의아하게 물었다.

?”

. 아니에요. 힘들지 않아요? 전 목마른데, 차라도 좀 주세요.”

아 참. 내 정신 좀 봐. 들어갈까?”

그럴까요?”

웃으며 휙 고개를 돌린 뒤, 왕자를 어떻게 막을까 왕자만 골라 차단하는 마법 부적이라도 공수해봐야 하나 고심하는 후타쿠치는, 그를 보며 잠시 얼굴을 붉힌 모니와를 보지 못했다.

 

  공미포 1300

 

 

7. 리에야쿠 의 연성 문장은 '우리 이제 그만 비참해지기로 해요.' '한 번쯤은 내가 너의 손을 잡고 싶었다.' 입니다.

 

밤바람이 찼다. 봄이라곤 하지만 일교차가 커 밤에는 겉옷을 걸쳐야 할 정도였다. 야쿠는 터덜터덜 걸어 공원의 벤치에 앉았다. 약속 시간까지는 약 4분이 남았다. 조금 일찍 왔나 싶기도 했지만 어디서 봐도 눈에 띄는 커다란 키의 리에프가 나타나자 그 생각을 수정했다. 이 시간에 나오길 잘했네. 아마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1시간 기다렸어여!’ 같은 실없는 농담을 들어야 했을 것이다. 야쿠는 잠자코 리에프를 바라보았다. 러시아인 혼혈이라 그런가 역시 밤에 봐도 눈에 띌만한 체격과 포션이었다.

리에프는 고개를 푹 숙이고 이쪽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근처에 사람이 없는 시간이라 망정이지 사람이 많은 길바닥이었다면 분명 이리저리 치였을 터였다. 하도 체격이 커 험한 소리는 듣지 않았을 테지만 이 시간에 온 연락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큰 충격이었겠지. . 그렇겠지. 곧 고개를 든 리에프가 야쿠를 발견하곤 초록색 눈동자를 빛내며 조금 걸음을 빨리 했다. 망설임 없이 야쿠의 옆자리에 앉는 다리가 길었다.

야쿠상.”

.”

들으셨죠.”

야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도 근육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이렇게 찌르르 쑤실 수가 없었다. 야쿠는 리에프와 약속을 잡게 된 결정적인 연락을 떠올렸다. 쿠로오의 기쁘고 들뜬 목소리. [‘나 켄마랑 드디어 잘 됐어.’] 그의 고민 상담을 도맡아 해주던 야쿠에게 아마 가장 처음으로 말한 거겠지. 중요한 건 그에게 마음을 털어놓은 게 쿠로오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비밀스러운 마음을 또 한 명에게 본의 아니게 받아버렸다. 쿠로오와 켄마의 사이를 알게 되면 분명 상처받을 마음을 말이다.

괜찮아?”

야쿠가 물었다. 리에프는 침묵으로 답을 대신하며 되물었다.

야쿠상은 괜찮아요?”

글쎄.”

야쿠가 쓰게 웃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리에프가 후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안 괜찮은 것 같아요.”

리에프의 눈이 까만 밤하늘을 살폈다.

그래도 우리 둘 다 예상하긴 했잖아요. 그게 좀 빨라서 당황스럽긴 하지만. 안 그래요? 켄마상은 어차피 쿠로상밖에 없었고그건 쿠로상도 마찬가지

리에프가 무심결에 말하다가 금기어를 꺼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는지 입을 다물고 야쿠를 보았다. 야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죄송해여.”

아니야.”

순순하고 차분하게 사과를 해오는 모습은 처음 리에프의 마음을 알게 되었을 때와는 다른 의연한 반응이었다.

[‘저 켄마상이 너무 좋아요어떡해여? 저는켄마상이 절 그냥 후배로 보는 게 싫어요야쿠상저는’]

리에프는 야쿠가 처음 그 마음을 알았을 때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아마 갓 태어나 거칠거칠 울퉁불퉁하던 마음이 수없이 현실과 부딪치며 마모된 것일지도 몰랐다. 야쿠도 그랬다. 이 감정이 너무 오래 되어 웬만한 것으로는 아프지 않았다.

[‘나도쿠로오를 좋아한지 꽤 됐어.’]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마음을 숨기고속일 수 있었는지 모른다.

. 진짜 그만해야지.”

리에프가 맥없이 중얼거렸다.

우리 이제 그만 비참해지기로 해요.”

그래. 그래야지.”

리에프가 벤치에서 일어섰다. 아무것도 들지 않은 그의 커다란 손이 보였다. 많이 힘들겠지. 마음이 향하는 상대가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것만큼 힘든 것도 없겠지. 야쿠는 리에프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의 초록색 눈동자가 켄마를 향할 때마다 새록새록 느끼게 되는 아픔이 그러했으니까. 야쿠는 리에프의 손을 한참 보다가 용기를 짜내어 그의 손을 잡았다. 리에프가 흠칫하며 야쿠를 돌아보았다.

……힘내.”

리에프가 물끄러미 야쿠를 보았다. 야쿠는 손을 뗐다. 떨어진 온기가 아쉬웠다. 네가 마음을 정리하게 되면 이제 우리 둘만이 가지는 비밀도 공유하는 추억도 더 이상 없겠지. 한 번쯤은 그가 리에프의 손을 잡고 싶었다. 야쿠가 중얼거렸다.

조심히 들어가.”

우두커니 선 리에프를 뒤로 한 채 야쿠는 눈을 감았다.

 

  공미포 1439

 

 

8. 후타모니의 세 문장 : '네가 날 그렇게 생각할 리가 없지.', '뻔한 수작이었다.', '잘못했어요.'

 

모니와상.”

모니와는 후타쿠치의 갈색 눈동자를 마주했다. 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는데 태풍에 휩쓸리기라도 한 듯 그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모니와는 확신할 수도 없는 광경보다는 객관적으로 보이는 광경에 집중했다. 한 이름 모를 여학생의 어깨에 얹힌 손과 후타쿠치의 팔을 잡은 여학생의 손. 모니와가 이 문을 열기 전까지는 두 사람만이 있던 공간이라는 사실과, 지나치게 가까운 간격을 보면 무순 상황이었는지 눈에 훤히 그려졌다.

미안. 방해를 했나보네. 오늘 체육관 수리라 연습 없다고 말해주려고 했어.”

모니와는 문을 닫기 전 여학생을 한 번 보았다. 몇 학년인지, 몇 반인지도 모르겠지만 예쁜 얼굴이었다. 모니와의 눈에도 그토록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인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오죽할까. 문을 닫은 뒤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해서 모니와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두드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대신 그는 걸음을 더 빨리해 아무도 없는 빈 3학년 교실로 돌아가 가방을 챙겼다. 체육관으로 가 공을 만지면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았지만 체육관이 수리 중이라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집이라도 가고 싶었다.

가방을 챙겨든 모니와가 뒤를 돌았다. 그리고 그는 열린 교실 뒷문에 고요히 서 있는 후타쿠치를 발견했다. 손끝이 차갑게 식는 느낌이었다. 말아 쥔 주먹을 더욱 세게 쥐며 그는 후타쿠치를 지나치려 했다. 하지만 스쳐가려는 모니와의 팔을 잡아챈 후타쿠치가 그를 다시 교실 안으로 밀어 넣었다. 드르륵. . 교실 문이 닫혔다. 교실 안에는 후타쿠치와 모니와만이 남았다.

모니와상, 얘기 좀 해요.”

할 말 없는데.”

모니와의 까만 눈동자가 후타쿠치를 빤히 보았다. 후타쿠치의 갈색 눈동자가 다시 흔들리는 것 같았다. 이상하다, 바람도 안 부는데. 후타쿠치가 모니와에게 손을 뻗어 턱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모니와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뿌리쳐져 허공에 애매하게 뜬 손을 보며 입술을 깨무는 모습이 보였다. 당혹스러워하고 또 상처받은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뻔한 수작이었다. 지금까지 모니와가 속아 넘어갔듯이.

변명할 필요 없어.”

왜요? 모니와상, 왜 변명도 안 들으려고 해요?”

후타쿠치의 물음에 모니와는 간단히 대답했다.

별로 놀랍지 않으니까. 이해해. 애초에네가 날 그렇게 생각할 리가 없지.”

후타쿠치의 눈이 커지더니 곧 싸늘하게 얼굴을 굳혔다.

그럼제가 지금까지 한 말전부 믿지 않았다는 거예요?”

방금 전부터 그렇게 됐어.”

모니와가 솔직하게 말했다. 후타쿠치가 다급하게 그의 양어깨를 붙잡았다.

모니와상, 제 말을 일단 들어보세요. 아까 그 여자애는!”

괜찮다고 했잖아.”

모니와의 말에 후타쿠치의 말이 뚝 끊겼다. 싸늘한 얼굴과는 달리 눈에는 열기가 가득했다. 눈에 가득한 열기와는 달리 그의 손은 애절했다. 모니와의 얼굴에 스치는 후타쿠치의 숨결에는 진득한 후회와 애원이 묻어나 있었다.

저는모니와상 저는

후타쿠치가 고개를 숙였다. 모니와는 얼어붙었다. 이 후배에게 들을 수 있으리라 한순간도 생각해본 적 없는 말이 들렸다.

잘못했어요.”

…….”

잘못했어요, 모니와상.”

겨우겨우 보이지 않게 숨겨 넣었던 마음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속아 넘어가면 안 되는데. 다시 믿어서는 안 되는데. 결국 상처를 받는 건 나일 텐데. 처량하게 힘없이 숙인 고개를 보지 않기 위해 모니와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흐느끼듯 속삭이는 사과가 흘러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공미포 1310

 

9. 보쿠아카 단어: 청소기 / 문장: 나는 길을 잃고 헤멘다. / 분위기: 절로 불안해지게 만드는

 

위이잉- 위이잉- 고요한 집안에 낮게 으릉거리는 소음이 들렸다. 나는 가만가만 걸었다. 손에 든 청소기가 바닥에서 굴렀다. 드륵 마루바닥이 긁히는 소리가 났다. 천이 부드럽게 쓸리는 소리도 공존했다. 돌아가는 청소기 소리를 듣고 있으면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먼지 한 톨 머리카락 한 가닥도 남아 있지 않아 공기만이 안에서 헛돌았다. 그렇지만 이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디기 힘들었다. 위이잉- 위이잉- 코너를 도는데 선이 걸렸다. 얼마 전에는 무선 청소기를 썼던 것 같은데. 갑자기 선이 왜 생겼지? 인상을 찌푸렸다. 코드를 바꿔 끼기 위해 이어진 선을 따라갔다. 하지만 기묘하게 구부러진 선을 따라가다 보면 끝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아까 이 지점을 지나친 것 같은데. 두껍고 까만 선을 따라 빙글빙글 집안을 돌았다. 어디서 끝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선을 따라 의자 밑을 기어 들어갔다. 다시 빠져나와 옷장을 밀었다. 숨어 있던 선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천장에 대롱대롱 붙어있는 선이 주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냉장고 뒤쪽으로 연결된 선이 보여 냉장고를 힘겹게 빼냈다. 냉장고 아래에서 빠져나온 선이 다시 방으로 향했다. 슬슬 초조해졌다. 이 선의 끝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빙글빙글 방 안을 돌고 있었다. 커다란 박스 안에 있는 팽이가 된 기분이었다. 천장이 어지럽게 돈다. 나는 길을 잃고 헤맨다. 보쿠토상. 보쿠토상. 내게 유일한 이름을 불러 봐도 귓가에 청소기가 웅웅대는 소리만이 들렸다. 띵동. 띵동. 경고음이 청소기 소리와 섞였다. 머릿속이 새빨개졌다. 안 돼. 나가면 안 돼.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벌벌 떨었다. 최대한 몸을 숨기기 위해 웅크리고 앉아 다리를 모았다. 누구십니까? 의심 없이 묻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 돼. 그러면 안 돼. 당장이라도 그 누군가의 다리를 잡아 부둥켜안고 싶었다. 택배요? 시킨 게 없을 텐데잠시만요. 활짝 열리는 문소리. 우당탕 내동댕이쳐져 넘어지는 소리. 쾅 닫혀 완전히 박스가 되어버린 집. 세상이 돌았다. 팽이처럼 세상이 움직였다. 발소리가 들렸다. 더욱 몸을 움츠렸다. 커다란 손이 어깨를 잡아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아카아시. 아카아시. 정신 차려. 나 봐, 아카아시. 아카아시아카아시, 나야. 나야, 아카아시. 숨 제대로 쉬고. 안심해. 나야. 나 왔어, 아카아시.’

끊임없이 귓가에 속삭여지는 목소리들이 환영을 지웠다. 숨이 잦아들고 시야에 보쿠토상의 얼굴이 보이는 순간 세상이 제자리를 찾았다. 흔들리지도 빙글 돌지도 않는 안전한 품이라는 것을 깨닫자 풀썩 몸이 기울어졌다. 보쿠토상의 단단한 팔에 안겨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죄송합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죄송합니다 보쿠토상.

 

  공미포 1015

 

 

10. 88RT 되면 오이이와 뱀파이어물로 뒤틀린분위기로 사랑하는 그대여, 전 다시, 수천 번이라도 다시 그랬을 겁니다!라는 대사가 들어가는 연성을 합니다.

 

이와이즈미는 눈을 떴다. 갈증이 일었다. 폐부가 짓눌려 숨이 막히는 것 같기도 했다. 눈에 보이는 천장은 처음 보는 종류의 낯선 것이었다. 얼룩덜룩 둥그렇게 얼룩이 진 모양은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고, 천장 가운데에 난 전등은 아예 등을 빼버린 듯 빈 뚜껑뿐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여행 중 불시에 습격을 받았다. 신종 범죄인가. 지금쯤 그는 뉴스에서 실종자로 보도가 되고 있을지 몰랐다. 이와이즈미는 황급히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갑자기 몸을 일으킨 탓인지 눈앞이 아찔했다.

잠깐, 아찔? 이와이즈미는 빈혈이라는 걸 모르고 살아온 건장한 남자였다. 고등학교 때는 배구부의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을 정도였다. 그런데 아찔? 그 정도로 오래 잠들어 있었던 건가? 이와이즈미는 주머니를 뒤졌다. 핸드폰을 찾기 위해서였다. 지금이 몇 신지보다 며칠인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분명 늘 바지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핸드폰이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없었다. 정말 범죄에 휩쓸린 건가? 강도? 그게 아니라면 납치? 너무 자유롭게 풀어둔 팔다리를 보며 의아해 할 즈음, 그의 눈을 크게 뜨게 만들 목소리가 들렸다.

이거 찾는 거야, 이와쨩?”

이외이즈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방문을 열고 소리없이 나타난 얼굴이 이와이즈미의 것이 분명한 핸드폰을 들고 빙긋이 웃고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잠시 할말을 잃고 입을 벌렸다. 그가 뚜벅뚜벅 걸어 침대에 걸터앉을 때까지, 이와이즈미는 목이라도 막힌 듯 꺽꺽대다가 겨우겨우 소리를 냈다.

오이오이카와

10년 전 졸업과 동시에 실종된 친구가, 지나치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아무렇지 않은 태도로, 마치 어젯밤에도 같이 자다가 일어난 것처럼 태연스레 굴고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꿈을 꾸고 있는 건가 했다. 아니, 꿈이라도 좋았다. 10년 동안 죽지 못해 찾아다녔던 녀석이다. 부모님도 알 수 없이 몸만 홀랑 사라진 녀석이다. 이렇게 멀쩡하면서, 이렇게 잘 살고 있었으면서 그동안 대체 왜……!

반가움, 분노, 서운함, 걱정 등등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이 격정 안에서 휘몰아치는 것을 느끼며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의 멱살을 잡았다.

, 망할망할카와!!!!”

이와쨩환영이 격하다구. 잘 지냈어? 이와쨩은 여전히 못생겼네.”

그걸 말이라고 해!!! 너 그동안 어디 있었어!! 너희 부모님이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몇날며칠을 쓰러져 계셨다고!! 이렇게 잘 있으면서 어떻게 연락 한 번을 안 해, 망할 자식이!!”

미안해. 사정이 있었어.”

오이카와가 웃었다. 예전과 똑같은 얄미운 얼굴이었다. 이와이즈미는 입술을 깨물며 오이카와의 멱살을 틀어쥔 손을 내렸다. 대신 그는 오이카와의 몸 이곳저곳을 살피며 말했다.

몸은 괜찮냐? 어디 상한 덴 없고? 10년 동안 뭐하고 지냈어? 여긴 혼자 살고 있는 거냐? 어디 갔던 건데? 그 돌아오지 못할 거창한 이유라는 건 뭐고!”

오이카와는 멀쩡해도 너무 멀쩡했다. 튼실한 몸도 예전 그대로였고, 기생오라비같이 맨들맨들한 얼굴도 그대로였다.

이와쨩. 아프지 않아?”

갑자기 웬 엉뚱한 소리야? 대답이나 , ……!”

마이페이스인 오이카와의 말에 화를 내려던 이와이즈미는 순간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고통에 배를 움켜쥐었다. . 쾅쾅 부서져라 때려대는 충격이 이와이즈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눈앞이 벌개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오길 반복했다. 고통과 충격으로 다물어지지 못하는 입에서 꺽꺽거리는 소리만 났다. , 이게 대체 무슨.. 이와이즈미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오이카와를 보았다. 오이카와는 어느새 허리를 숙인 이와이즈미의 볼을 쥐고 있었다.

미안해 이와쨩. 내가 10년 동안 사라져 있던 건 참아야하기 때문이었어.”

다물리지 못하는 이와이즈미의 입에서 흘러내린 타액을 오이카와가 손가락으로 닦아내며 말했다.

그러지 않았다면좀 더 빨리 이러고 싶었겠지. 난 나름대로 이와쨩을 위한 거였는데,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어.”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10, 고통, 날 위한 것, 만남, 어지러운 키워드가 자리를 찾지 못하고 날뛰었지만 그 모든 것이 오이카와의 한마디 말에 굳은 듯 멈춰져버렸다.

이와쨩. 난 있지뱀파이어가 됐어.”

오이카와는 10년 전처럼 여전히 다정한 말투였다.

졸업식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물렸지그땐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는데이와쨩은 어때? 이와쨩도 그래?”

그가 10년에 비해 단 1년도 늙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 후윽

동의 없이 이런 짓을 저질러버려서 미안해. 하지만 네가 다시 내 눈에 띈 이상……

오이카와가 다정하게 이와이즈미의 쇄골을 짚었다. 후끈거리는 열기가 쏠리는 곳이었다. 고통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와중에도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손가락이 닿은 부분을 보았다. 날카로운 무언가로 뚫린, 아니물린 자국이 보였다. 다시금 눈앞이 아찔해져 이와이즈미는 기우뚱 중심을 잃었다.

사랑하는 그대여, 전 다시, 수천 번이라도 다시 그랬을 겁니다.”

쓰러지는 이와이즈미를 받아내며, 오이카와가 부드럽게 속삭였다.

 

  공미포 1906

 

 

 

 

커플별로 고르게 쓰고 싶었는데 진단 결과가 애매해서 ㅠㅠ 뭔가 진단을 하면 자캐 쓰는 느낌이 든다... , 연습이니까! (파워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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